[Tubular Bells](1973)는 영국의 멀티 인스투르멘틀리스트 마이크 올드필드(Mike Oldfield)가 거의 혼자의 힘으로 수천 번을 오버더빙하여 만든 데뷔작이자 역작입니다. LP를 기준으로 양면에 한 곡씩 수록되어 있는 대작 구성의 이 음반은, 영화 [엑소시스트(The Excorcist)](1973)에 일부가 사용되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음산하면서 무엇인가 있을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가, [엑소시스트]가 표방하는 ‘오컬트’ 정신에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던 것입니다. [엑소시스트]가 ‘역사 상 가장 무서운 호러 무비’로 명성을 날리는 것과 동반 상승하여, [Tubular Bells]도 ‘전설적인’ 음반으로 영미 대중음악사에 각인되었습니다. 그렇지만 [Tubular Bells]가 얻은 이러한 영광이, 이 음반을 창조해 낸 천재 마이크 올드필드의 인생 전체까지 밝혀주지는 않았던 듯 싶습니다. 활동 초반부에 엄청난 작품을 내놓은 예술가의 여생이 대개 그러하듯, 마이크 올드필드도 [Tubular Bells]의 강력한 후광으로부터 평생 못 벗어났던 것 같군요. 물론 이 앨범 이후 [Hergest Ridge](1974), [Ommadawn](1975), [Five Miles Out](1981), [Crisis](1983) 등 아주 들을 만한 작품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마이크 올드필드 본인도 [Tubular Bells]의 후광에서 구태여 벗어나려 발버둥 친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The Orchestral Tubular Bells](1975), [Tubular Bells II](1992), [Tubular Bells III](1998), [Orchestral Tubular Bells Box](1999), [Best Of Tubular Bells](2001) 등, 계속해서 “Tubular Bells”의 타이틀을 단 음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현상은 특히 1998년 이후 현재에 이르는 시점에서 특히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할텐데요. 즉 1980년대나 1990년대 전반까지는 그래도 나름대로 자신의 예술 활동을 적극적인 자세로 펼쳤던 마이크 올드필드가, 40대 중반을 넘기면서 ‘밑천’도 다 떨어지고 창작 활동은 계속 해야겠고, 궁여지책으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졌고 또한 확고한 명성을 누리고 있는 [Tubular Bells]를 단물이 빠질 때까지 우려먹으려는 게 아닐까요? 뭐… 본인의 창작물을 본인의 의지로 마음껏 ‘재창작’하려는 것에 대해 무기력한 감상자의 입장에서 불평을 가질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워낙 비슷비슷한, “Tubular Bells” 이름이 붙어있는 (유사?) 음반들이 매장에 난무하다 보니, 1973년도 오리지널을 잊지 못하고 있는 저로서는 상당히 헷갈리면서 짜증도 납니다. 저는 이 오리지널 [Tubular Bells]를 세 차례에 걸쳐 구입한 바 있습니다. 처음 구한 때는 1984년. 당시 예음 레코드사에서 나온 LP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레코드판에 잡음이 너무 많이 끼어 ‘빽판’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튀는 부분도 있었구요. 하지만 둔한데다 게으른 편이기까지 했던 당시의 저는, 음반점에서 교환할 생각은 하지 않고 물을 수건에 가득 묻혀 닦아가며 들었습니다. 아주 열심히 들은 결과 LP 상태도 양호해졌고, 더불어 저도 [Tubular Bells] 음반 자체에 푹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전개되다가도 어느 순간 변화무쌍한 임팩트를 주는 이 음반의 사운드를, 그 당시엔 “프로그레시브 록의 최고봉”으로 여겼지요.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 사운드는, 브리티쉬 포크(아이리쉬 포크? 혹은 켈트족 민속 음악)에 기본 바탕을 둔 뉴 에이지(엠비언트는 결코 아님)라 불러야 맞겠군요. 두번째로 이 음반을 구했던 때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온 국민은 올림픽의 열기에 휩싸여 있었지만 고3 수험생이었던 저는 미처 그러한 환희를 느낄 틈이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Tubular Bells] LP를 돈 주고 다시 구했는데… 상태는 다행히도 매우 양호했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오 마치 CD처럼 깨끗하군!” 당시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는 CD라는 매체가 막 대중화 되기 시작했던 때였으며, ‘놀라운 음질’과 ‘잡음 하나 없는 맑고 깨끗함’이 LP와의 비교 우위 포인트로 막강하게 선전되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흘러 2001년. [엑소시스트]가 십여 분이 추가되어 극장에서 재개봉되었을 때, 예나 지금이나 이 영화의 광팬인 저는 울렁이는 마음으로 스크린을 응시하다가(극장에서만 두 번을 보았고, 나중에 DVD도 샀습니다), 돌연 울려 퍼지는 “Tubular Bells”를 듣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추억이 확 되살아 나오더군요. “그럼 한번 CD를 사봐?”하는 마음에 주요 음반 매장을 몇 번이고 가보았지만, 도저히 오리지널 [Tubular Bells]를 구할 수가 없었어요. 뭐 [The Orchestral Tubular Bells], [Tubular Bells II], [Best Of Tubular Bells]… 이런 것들만 있었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싶다가도 “뭐 이럴 수가 있는거야?” 싶기도 하고… 마음이 오락가락 하더군요. 그렇다고 구입을 포기할 수는 없는 심적 상태에 이미 들어갔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인터넷 해외 음반 사이트에서 주문을 하고 말았습니다. 물건은 도착했고, CD 플레이어를 작동시켜 들어보았습니다. 상당히 반갑고 즐거웠고 좋았지만, 어렸을 때 딱 부러지게 느낀 ‘감흥’은 생각보다 덜 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들은 뒤로 이 CD는 지금까지 책장 속에 갇혀 지내고 있는 실정이랍니다(자주 듣는 CD들은 대개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 접한 대중 문화 전부에 대해 황홀경을 빠짐없이 느낀다면 그것도 꽤 곤란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변명(?)을 품고 있답니다. 20020311 | 오공훈 aura508@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