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330011941-04077lesnubiansLes Nubians – Princesses Nubiennes – Virgin, 1998

 

 

관능적이면서도 격조 있는 프랑스산(産) R&B

어쩌다가 생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동네 유선방송’ 채널을 돌리다 보면 프랑스의 음악전문 케이블 채널인 MCM을 보게 된다. “R.E.M. 마르세이으 공연”이 나오다가 “청호 활어회집”이나 “볏집 삼겸살” 등의 광고가 나오는 ‘엽기적’인 포맷을 가지고 있어서 ‘깨는’ 경험을 안겨줄 때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팝 음악계의 주류 미디어나 배급망으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악들이 나올 때가 많아 가끔은 눈길을 돌리게 된다. MCM을 보고 있으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지의 대중음악에도 ‘흑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흑인’이라는 인종주의적 단어는 삼가는 게 좋겠지만(사족이지만 이때 ‘흑인’이라는 범주도 이주민들을 뭉뚱그려 지칭하기 때문에 반드시 ‘검은 피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경우 인디아/파키스탄계, 프랑스의 경우 아랍/터키계 등도 모두 ‘흑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참 부당한 일로 보이지만 이는 글로벌 시대에 극복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되는 현실이다).

서설이 길었지만 이 채널을 보고 있으면 프랑스가 ‘흑인 음악’의 강국이라는 사실을 알기는 어렵지 않다. 이는 프랑스가 영국과 더불어 아프리카를 양분하다시피 한 ‘식민종주국’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현대에도 부단히 이주민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뮤지션들이 런던을 무대로 ‘잉글리시 드림’을 꾸고 있다면, 북아프라카나 중앙아프리카의 출신의 뮤지션들은 파리를 무대로 ‘프렌치 드림’을 꿈꾸는 셈이다. 이들 아프리카계 프랑스인, 이른바 아프로-프렌치(Afro-french) 중에서 나이든 뮤지션들은 대체로 ‘월드 뮤직’으로, 젊은 뮤지션들은 ‘힙합’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 소개할 레 뉘비앙은 이런 범주화에서 벗어난다. 왜냐하면 이들은 월드 뮤직으로 분류하기에는 현대적이고 도회적이며, 힙합으로 분류하기에는 멜로딕하고 부드럽기 때문이다. 이들의 가사가 프랑스어이기 때문에 R&B라는 ‘미국적’ 이름을 붙이기도 찜찜하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카메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엘렌 포싸르(Helene Faussart)와 쎌리아 포싸르(Celia Faussart) 자매로 구성된 듀오인 뉘비엉은 프랑스 보르도(Bordeaux)에서 태어나 차드(Chad)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잡종(hybrid)이나 이주민(diaspora)이라는 규정에 들어맞는 예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들의 음악이 국지적 전통(local tradition)에 뿌리박힌 스타일이 아니라 국제적 트렌드에 민감한 것도 이런 특징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음반을 듣고 있으면 ‘영국 흑인’의 음악인 샤데이(Sade)와 소울 투 소울(Soul II Soul)이 떠오른다. 부드러운 보컬 멜로디는 샤데이, 무거운 베이스의 비트는 소울 투 소울의 영향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일반적 평가로 보인다. 특히 단조의 “Tabou”란 곡은 샤데이의 “Sweetest Taboo”를 개작한 것으로 ‘존경의 염’을 볼 수 있는 곡이다.

이렇게 부드러운 멜로디와 무거운 리듬에 때로는 피아노, 색서폰 등의 악기가 추가되어 재즈의 느낌을 자아내든가 때로는 랩핑과 스크래칭이 들어가서 힙합의 도회적 느낌을 추가하는 것이 뉘비엉의 음악적 트레이드마크다. 리듬은 그리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루브를 느끼게 하기는 충분하고, 멜로디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귀에 잘 감긴다. 타이틀곡 “Princesse Nubienne”과 첫 트랙 “Demain” – 이 곡은 마지막 트랙은 “Desolee”이 끝나고 나서 마치 히든 트랙처럼 상이한 버전으로 다시 등장한다 – ,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 앨범의 대표곡이라고 할 만한 “Makeda”, “Embrasse-Moi”, “Desolee” 등이 이런 공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스타일은 관능적이면서도 품격을 잃지는 않고, 이 점이 레 뉘비앙의 지배적 이미지다. 이런 품격은 앞에서 두 번째 트랙인 “Les Portes Du Souvenir”은 현악기의 아름다운 선율을 통해, 끝에서 두 번째인 “Voyager”는 뜻밖에도 ‘어쿠스틱 기타가 이끄는 얼터너티브 록 스타일(이 용어는 그냥 각자 알아서 해석하기 바란다)’을 통해 더욱 고결해진다.

대부분의 트랙들은 노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중간에 포진되어 짧은 길이의 트랙들이 탄력을 부여한다. “Abbeylude”에서는 가사의 나레이션과 더불어 전자음향과 퍼커션이 교대로 등장하고, “Mystic”에서는 악기음 없이 아카펠라 중창만 나오고, “Hymne Nubien”에서는 반복되는 코러스와 함께 퍼커션의 주술적 연주가 등장한다. 여기서 콩고 출신의 잡 마마(Zap Mama)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미리엄 마케바(Miriam Makeba) 등 아프리카 출신의 뮤지션들이 이들의 또하나의 전범이라는 사실을 지적해 두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뭐랄까 음반을 다 듣고 나면 도회적이고 세련된 언니들(lady)의 멋진 삶을 훔쳐본 느낌이다. 언어장벽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지명도를 누리면서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 루츠(The Roots), 구루(Guru) 등 힙합 대가들의 레코딩 작업에 참여하면서 사는 삶이 어찌 멋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20020325 | 신현준 homey@orgio.net

8/10

수록곡
1. Demain (Jazz)
2. Les Portes Du Souvenir
3. Abbeylude
4. Makeda
5. Sourire
6. Princesse Nubienne
7. Tabou
8. Mystic
9. Embrasse Moi
10. Sugar Cane
11. Bebela
12. Si Je T’avais Ecoute
13. Hymne Nubien
14. Voyager
15. Deso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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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Les Nubians 공식 사이트
http://www.lesnubians.com
http://www.geocities.com/SunsetStrip/Exhibit/7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