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 – …그리고 김현철 – 동아뮤직, 2002 자신에게 바치는 헌정앨범? 기억을 더듬어 보자. 김현철의 데뷔 앨범을 구입했던 때가 스무 살 무렵이었으니까 얼추 8년쯤 전의 일이다. 그가 데뷔한 것이 1989년, 나는 적어도 5년여만에 그를 제대로 만난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춘천 가는 기차”, “오랜만에” 같은 곡들이 귀에 익숙했던 것은 당연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현철의 데뷔앨범 [오랜만에]는 1986년 이후 어떤 날의 감수성과 이어졌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음반이 아닐까 한다(1980년대의 말미를 장식한 앨범중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그의 수줍은 듯 서정적인 감수성이 1990년 교통사고 이후 발표한 [달의 몰락]부터 급선회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후 그의 음악과 멀어진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 탓이려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데뷔 앨범에서의 그 가능성들은 다 어디로 갔나하는 아쉬움이 미련처럼 남기도 한다. 어떤 가능성? 이 자리에서 주절주절 설명해놓으면 음악을 머리로만 듣는다느니 하는 야단을 들을 테니, 한마디만 하자. 열쇠는 “형”에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이렇게 김현철의 음악에 대해서는 묘한 감정이 생겨버리고 만다. 그리고 이제 여덟 번째 정규앨범, 제목은 […그리고 김현철]이다. 앨범의 구성은 첫 곡 “Loving You”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른 뮤지션들이 부른 노래들인데, 등장하는 이름 중에는 애즈 원(As One)과 박효신, 롤러 코스터와 불독 맨션, 윤상과 봄여름가을겨울, 김광진과 핑클의 옥주현도 있으니 이것은 김현철’표’ 발라드의 범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인 동시에 그의 폭넓은(?) 인간관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김현철 리스트’이기도 하다. 트랙들은 모두 그의 스타일(적당한 그루브와 적당한 싱코페이션, 적당한 악기 선택, 이런 특징들이 어느 곡에서나 남용되므로 적절함보다는 적당함이라는 수식이 어울린다)에 꼭 들어맞는데, 첫 곡 “Loving You”의 어쿠스틱 피아노 연주 사이에 삽입되는 신서사이저 이펙트와 혼성 코러스는 한없이 낭만적이기만 한 사랑이야기의 지겨운 방법론에 다름 아니고, 다른 곡들도 김현철 스타일에 다른 가수들이 목소리만 빌려준 것일 뿐이라는 느낌이다. 그나마 롤러 코스터(“봄이 와”)와 불독 맨션(“We All Need A Lifetime”),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Caribbean Cruise”)이 다소 지루한 느낌의 이 앨범을 맛깔스럽게 만드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현철의 곡을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듣는 재미에 흡족해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앨범의 다른 재미를 굳이 찾자면 제이(J)의 1집 [Blue]에 수록된 “사랑이란”을 애즈 원의 목소리(“Is It Love”)로 들을 수 있다는 것과 색서폰 연주자 대니 정(Danny Jung)의 앨범 [Make A Wish]의 수록곡 “괜찮아요”를 이소정의 목소리(“Why Can’t We”)로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곡들을 포함하여 다른 곡들도 보사 노바 리듬(“You Know Why”)이 가미되거나 슬로 템포의 슬라이드 기타 연주 등이 삽입되어 감미로운 사랑 노래(가요 발라드)로서 손색이 없는데, 앨범의 판매량도 그리 나쁜 편이 아니어서 김현철의 여덟 번째 정규앨범(이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바치는 헌정앨범처럼 보이는 이 음반)은 새 학기에 알맞을 사랑노래 컬렉션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래서? 이 앨범은 김현철이 “그대 안의 블루” 이후 스스로 구축한 나르시시즘적 매너리즘에서 빠져 나올 생각이 전혀 없음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연관해서 하나마나한 얘길 더 하자면, […그리고 김현철]이라는 제목은 은근히 한국 대중음악계에서의 그의 위치를 과시하는 말로 읽힌다. 이 제목은 김현철이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교수라는 직함과 각종 음악제 심사위원을 맡은 경력, 라디오 디제이로서의 능력과 작곡가로서의 음악성도 인정받는, (한국에서) 드물게 존경받는 ‘현역 아티스트’라는 뉘앙스를 풍긴다(당연히 이런 뉘앙스는 불편하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색안경을 끼고 본다거나, 애초부터 작정하고 쓰는 리뷰는 뭐 하러 쓰느냐는 반응도 나오겠지만, 글쎄, 이런 사족은 그냥 ‘취향 차이’라고 간과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물론 취향이란 말이 모든 차이를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20020326 | 차우진 djcat@orgio.net 4/10 수록곡 1. Loving You 2. Is It Love (Feat. As One) 3. 그보다 더 (Feat. 박효신) 4. 봄이 와 (Feat. 롤러코스터) 5. 봄이 와(Reprise) 6. 어부의 아들 (Feat. 박완규) 7. Going To Paradise (Feat. 지영선) 8. Believe What I Say (Feat. 옥주현) 9. We All Need A Lifetime (Feat. 불독맨션) 10. Why Can’t We (Feat. 이소정) 11. 사랑하오 (Feat. 윤상) 12. You Know Why (Feat. 김광진) 13. Caribbean Cruise (Feat. 봄여름가을겨울) 관련 사이트 김현철 공식 사이트 http://www.kimhyunchul.com 동아뮤직 공식 사이트 http://www.idongamus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