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325083358-natalieNatalie Imbruglia – White Lilies Island – BMG, 2001

 

 

Wrong Impression!

1997년 작은 화제 속에 등장했던 나탈리 임브룰리아(Natalie Imbruglia)의 [Left Of The Middle]은, “Torn”, “Big Mistake”, “Smoke”, “Wishing I Was There” 등 무려 네 곡의 싱글 커트와 함께 200만장 판매라는, 신인으로서는 꽤나 흡족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TV 스타로 시작한 그녀의 갑작스런 커리어 변경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혹에 찬 시선을 받았고, 이미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팝과 록의 절충적인 결합 역시 ‘또 하나의 상품’이라는 평가 이상은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나탈리 임브룰리아의 보컬에 대해 앨러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본인은 아무래도 리사 롭(Lisa Loeb)의 간명하고 산뜻한 목소리 쪽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하여튼 여러 의견들을 떠나서 ‘1998년 문제의 싱글’ 중 하나였던 “Torn”이 그 선명한 멜로디 라인만큼 매력적인 곡이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Left Of The Middle]의 성공 이후, 나탈리 임브룰리아는 술과 마약 문제로 많이 고생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에선지 2집 [White Lilies Island]는 상당한 공백기간(4년) 끝에 발매되었고, 재킷 사진의 이미지나 곡의 분위기도 데뷔시의 청순함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성숙한 여인’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 있다.

첫 곡이자 첫 싱글인 “That Day”는 이런 이미지 변신에 박차를 가하기라도 하듯 음울하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읊조리듯 풀어나가는 보컬의 변화가 인상적이긴 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느낌을 솔직히 지울 수 없는데, 이런 문제점은 앨범을 듣는 동안 꽤나 지속적으로 청자를 괴롭힌다. 특히 이러한 ‘침잠’의 정서가 일관적이지 않고, 그 역시 가끔씩 끼어 드는 ‘밝고 명랑한’ 예전의 나탈리 임브룰리아식 곡들에 의해 방해받는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Beauty on the Fire”나 “Do You Love”가 각각 [Ray Of Light] 시기의 마돈나(Madonna)와 돌로레스 오리어던(Dolores O’Riordan, 크랜베리스(Cranberries)의 프론트 우먼)을 슬쩍 갖다놓은 것 같다면, “Goodbye”는 뷰욕(Bjork)의 노래를 ‘다시 불렀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속 편하게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했다’라고 하면 할말 다한 거지만, 이런 우왕좌왕하는 스타일의 난립 속에 자신의 매력을 가장 잘 살렸다고 할 “Satellite”나 “Wrong Impression”(두 번째 싱글) 같은 곡이 빛을 잃는다는 점은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골치 아픈 얘기들을 떠나서 [White Lilies Island]가 듣기 편한 팝 앨범이란 사실에 대해선 부정하고 싶지 않다. ‘듣기 편하다’란 말이 요즘 같은 때에 결코 칭찬이 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 말보다 더 좋은 음반선전용 문구가 없는 것 또한 사실 아닌가(‘잘 만들어진 상품’으로서의 음악이 죄 될 일도 아니고). 이 점은 [White Lilies Island]의 분명한 미덕이다. 그러나, 이미 진부한 말일는지 모르지만 이 앨범엔 ‘나탈리 임브룰리아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일년에도 수백, 수천 장씩 발매되는 앨범들을, 전부 시대상황에 맞춰 해석/감상한다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다. 개중엔 ‘도대체 어떻게’ 시대상황에 맞춰 평가할지 모를 앨범들도 섞여 있는데, 이런 경우엔 그 피곤함의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 나탈리 임브룰리아의 [White Lilies Island]는 언제, 어디에서나 있어왔고 또, 누구나 만들고 부를 수 있는 노래들로 채워진, ‘시대상황’과는 거리가 먼 앨범이다(이런 음반은 누가 불렀는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저것 괜찮아 보이는 스타일을 섞어서 돈도 좀 벌고, 약간의 팬 층도 확보해 보자’는 식의 안이한 자세로 만들어지는 가수/앨범들은, 앞으로도 돈 맛 훤한 음악계에서 절대 빠지지 않을 단골메뉴가 될 것이다. 이런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White Lilies Island]의 의미를 찾는다면 너무 가혹한 얘기일까(결과로 봐서는 참혹한 실패인 듯 하지만)? 20020322 | 김태서 uralalah@paran.com

5/10

* 사족 : 3월 23일자 빌보드 앨범차트를 보면 [White Lilies Island]가 35위로 올라와 있다. 앨범 발매 후, 무려 4개월만의 차트 데뷔다. 역시 어중간했던 “That Day”보다는 “Wrong Impression”이 나탈리 임브룰리아를 설명하는데 적절한 곡이었나 보다.

수록곡
1. That Day
2. Beauty on the Fire
3. Satellite
4. Do You Love
5. Wrong Impression
6. Goodbye
7. Everything Goes
8. Hurricane
9. Sunlight
10. Talk in Tongues
11. Butterflies
12. Come September

관련 사이트
나탈리 임브룰리아 공식 사이트
http://www.natalie-imbruglia.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