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라 쿠티(Fela Kuti)의 음악적 유산이 미국 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된 곳은 역시 뉴욕이다. 물론 십여 년 전에 브루클린 출신의 랩 그룹 엑스 클랜(X-Clan)이 데뷔 앨범 [To The East, Blackwards](1990)를 통해 펠라 쿠티의 “Sorrow Tears And Blood”를 샘플링한 “Grand Verbalizer, What Time Is It?”을 내놓을 때만 해도 아프로비트(Afro-beat)는 여전히 뉴욕인들에겐 낯선 존재였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아프로비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뉴욕 곳곳에서 소리 소문 없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국적 취향에 경도된 맨해튼 트라이베카(Tribeca) 지역의 백인 여피들이 펠라 쿠티의 음반들을 수소문해서 구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한편으로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나이지리아와 인근 아프리카 국가의 이민들이 급증하면서 아프로비트에 대한 수요 또한 팽창하게 되었다. 월드 뮤직, 재즈 등을 연주하는 흑인 음악 전문 클럽이나 카페를 중심으로 아프리카 출신의, 그리고 그들의 2세대 아프로비트 뮤지션들의 연주를 거의 매일 들을 수 있고, 정기적으로 페미 쿠티(Femi Kuti)와 같은 상징적 거물들이 인사치레를 하고 있는 맨해튼에서 아프로비트는 이제 더 이상 낯설 수가 없다. 물론 장르를 막론한 뉴욕 아프로-아메리칸 흑인 뮤지션들의 아프로비트 수용 또한 근래 들어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띤다. 즉 재즈 뮤지션부터 턴테이블리스트와 라이머들에 이르기까지 아프로-아메리칸 흑인들은 아프로비트를 ‘범아프리카주의(pan-Africanism)’와 ‘아프리카 중심주의(Afro-centrism)’의 문화적 실천을 위한 가장 유용한 매개물 중 하나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펠라 쿠티 사후에 그의 유작들이 재발매되고 뉴욕 내의 대형 레코드 가게에서 대대적 홍보가 진행되었던 것은, 세상을 떠난 위대한 아프리카 뮤지션에 대한 단순한 경배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엑스 클랜 같은 급진적 아프리카 중심주의자들의 후견 없이도 아프로비트는, 뉴욕에만 국한시킨다면, 지극히 안정된 생산자와 소비자 집단을 거느리고 있는 셈이다. 뉴욕을 대표하는, 따라서 현재 미국에서 가장 지명도가 높은 아프로비트 뮤지션은 단연 안티발라스(Antibalas)다. 이들은 뉴욕 내에서 활동하는 다수의 아프로비트 뮤지션들 중에서 닌자 튠(Ninja Tune)과 같은 국제적 지명도를 지닌 레이블과 계약을 맺은 몇 안 되는 그룹 중 하나이며, 맨해튼에서 정기적으로 행하는 이들의 라이브는 펠라 쿠티의 그것에 가장 근접한, 정열적이고 화려한 공연으로 정평이 나있다. 경이로운 혹은 이색적인 것은 무려 15명 안팎에 이르는 안티발라스 대가족 내에 흑인은 한 명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뉴욕 아프로비트의 호황을 염두에 두더라도, 대부분의 멤버들이 라틴 계열 이민들이고 부분적으로 백인들과 동양계 이민이 섞여 있는 안티발라스가 미국 내 아프로비트의 선두주자라는 사실은 꽤나 흥미롭다. 하지만, 아프로비트가 지금껏 전개되어온 역사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당대 뉴욕에서 아프로비트의 또 한 차례의 변신 혹은 변용 또한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특히 아프리카 뿐 아니라 다양한 제3세계 출신 이민집단들이 득실거리는 뉴욕에서 음악의 생산자와 수용자를 특정 정체성으로 경계짓고 범주화시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재즈와 힙합을 연주하는 백인, 록을 줄기는 흑인의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록과 힙합으로 무장한 중남미 심지어 아시아 출신 뮤지션들의 모습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와 전혀 무관한 듯한 뮤지션들이 모여 아프로비트를 연주하는 것도 이제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Antibalas in Justice League 주로 뉴욕과 미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공연활동을 벌여온 안티발라스는 지난 2월 중순과 하순에 미 전국 투어의 일환으로 캘리포니아를 찾아왔다. 호평을 받았던 정규 데뷔 앨범 [Liberation Afrobeat Vol.1](2001)에 이어 3월 중순의 두 번째 정규 앨범 발매를 눈앞에 두고, 아무래도 대륙의 반대쪽도 신경이 쓰였나보다. LA를 거쳐 샌프란시스코로 올라온 안티발라스가 이곳에서 선택한 공연장은 유명한 저스티스 리그(Justice League)였다. (베이 에리어 턴테이블리즘의 발원지로 국내에도 익히 알려져 있는 저스티스 리그는 사실 힙합 뿐 아니라 레게, 소울, 훵크 등 다양한 흑인 음악 공연의 메카로 베이 에리어에서 정평이 나있다.) Slaptones, “A Master’s Influence”(live) 슬랩톤스(Slaptones)의 오프닝 공연. 저녁 8시 30분부터 관객들의 입장이 시작되었지만, 오프닝 밴드인 슬랩톤스(Slaptones)의 공연이 시작된 9시 30분까지도 저스티스 리그의 허름한 홀은 여전히 한산했다. 불과 100여명도 채 안 되는 관객들 앞에서 베이 에리어 출신의 이 ‘아프로-퓨전’ 밴드는 매우 흥미로운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세 명의 관악주자, 드럼과 퍼커션, 기타와 베이스 주자가 각 한 명씩 포함된 것은 늘상 보는 아프로비트 밴드의 외양과 별반 차이 없었지만, 이들 외에 한 명의 디제이와 두 명의 래퍼가 가세하면서 슬랩톤스는 기존 아프로비트 사운드의 새로운 변용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 같았다. 디제이의 스크래치와 래퍼들의 래핑, 관악주자들의 진득한 연주 그리고 훵키한 리듬 기타는 각각의 색깔을 드러내면서도 묘한 조화를 이뤘다. 힙합과 기존 아프로비트의 융합이라는 면에서 이들을 그루브 콜렉티브(Groove Collective)의 아류라고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루브 콜렉티브의 음악이 애시드 재즈에 지나치게 경도된 것이라면, 슬랩톤스는 재즈의 냄새를 가능한 거세하면서 아프로비트를 보다 맛깔스럽게 힙합 속에 녹여냈다. 어느새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 슬랩톤스의 한시간여 공연은 끝이 났고, 다시 한시간의 뜸을 들인 후 11시 30분에 드디어 안티발라스가 무대에 등장했다. 다섯 명의 관악주자가 무대 전면의 오른 편에, 다섯 명의 퍼커션 주자가 그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기타, 베이스, 건반, 드럼 연주자가 후방에 배치되자 무대는 꽉 차 버렸다. 안티발라스는 평균 15분 여에 이르는 여덟 곡을 1부와 2부로 나누어 네 곡씩 연주를 하였다. 예상대로 막강한 관악 사운드와 훵키한 리듬 섹션이 귀를 찌르고 때리면서 시종일관 관객들을 압도하였는데, 백인, 동양인, 라티노, 흑인들로 뒤섞인 관객들 대부분은 새벽 2시까지 쉬지 않고 춤을 추면서 공연을 즐겼다. 간간이 그룹의 유일한 흑인 멤버인 듀크 아마요(Duke Amayo)가 무대 전면에 나서 특유의 아프리카 챤트(chant)로 관객들을 자극하려 하고 리더인 마틴 페르나(Martin Perna)가 간혹 노골적인 정치적 선동 문구들을 읊조리긴 했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사운드 자체에 빠져 몸을 뒤흔드는데 몰입하였다. Antibalas, “Water No Get Enemy”(live) 안티발라스의 1부 공연. 특히 “El Machete”, “Uprising” 같은 1집 앨범의 수록곡과 신보에 수록된 곡들을 번갈아 연주하는 도중에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펠라 쿠티의 클래식 “Water No Get Enemy”를 재현하자 관객들의 흥분은 극에 달했다. 듀크 아마요의 보컬이 다소 중량감이 없고 관악 연주가 때론 엉기고 정돈되지 않긴 했지만, 안티발라스의 그루브 넘치는 연주와 무대매너는 그러한 단점들을 극복하기에 충분하였다. 관객들의 열광적 환호 속에 30여분의 앙코르 연주가 이어지고 새벽 2시 30분에서야 공연은 끝이 났는데, 상당수의 특히 흑인 관객들은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홀에 남아서 여전히 서로 엉겨서 춤을 즐기고 있었다. 브루클린에서 거듭난 ‘급진적’ 아프로비트 [weiv]의 ‘아프로비트 시리즈’에서도 수 차례 언급되었지만 이제 아프로비트는 더 이상 펠라 쿠티와 그의 동료, 가족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자리를 잡은 아프로비트는 음악적 내용과 형식에 내재된 특유의 정체성을 견지하되, 이제 새로운 변화를 위한 실험도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안티발라스는 아프로비트의 음악적, 정치적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이 음악이 그 경계를 확장하여 보다 급진적인 사운드로 거듭나기를 원한다. 물론 많은 이들이 안티발라스를 여전히 펠라 쿠티의 ‘카피 밴드’로 오해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안티발라스의 음악은 아프로비트의 폴리리듬을 보다 미세하게 해체하고 미국식 소울-훵크의 유산을 보다 직접적인 형태로 결합하고 관악 연주에서 재즈의 즉흥적 요소들 또한 기존 아프로비트 음악들에 비해 한층 강화한다. 덕분에 그들이 닌자 튠의 뮤지션이라는 점이 무색하게, 안티발라스의 음반과 라이브는 막강한 그루브와 생동감을 청자들에게 부여한다. Antibalas, “Uprising”(live) 안티발라스의 2부 공연. 펠라 쿠티의 다소 국지적인 정치성 또한 안티발라스를 통해 제 3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정치적 모토로 확장된다. 애초에 뉴욕에서 아프로비트가 범아프리카주의와 아프리카중심주의를 위한 매개물의 역할을 했다면, 지금 안티발라스의 아프로비트는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온갖 제 3세계 출신 이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를 자처한다. 나아가, 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미국 바깥의 모든 제 3세계 민중들이 아프로비트를 매개로 결집하고 봉기하기를 강권한다. 이날 공연에서도 그룹의 리더인 마틴 페르나는 부시 정권의 최근 정책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규탄했는데, 미국 내 소수인종에 대한 정부 정책 비판 뿐 아니라 심지어 한국의 첨예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부시의 무책임한 언행에 대해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기도 하였다. 브루클린의 가난한 멕시코 출신 이민 가정에서 자란 마틴 페르나는 안티발라스를 결성하기 이전에 애시드 재즈 전문 레이블인 데스코(Desco)의 프로젝트 닥타리스(Daktaris)에 참여하면서 아프로비트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는 그 과정에서 데스코와 같은 레이블들이 아프로비트를 미국 내에 소개하면서 동시에 ‘탈정치화’하는 데 큰 불만을 품은 듯하다. 결국 그는 다양한 출신 배경의, 동시에 급진적인 정치적 성향을 지닌 브루클린의 뮤지션들을 결집시켜 안티발라스를 결성하고 아프로비트 음악을 통한 정치적 실천에 헌신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으로, 안티발라스에 의해 주도되어온 미국 내 아프로비트의 음악적 변용 가능성은 슬랩톤스와 같은 새로운 세대 아프로비트 뮤지션들에 의해 확대일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루브 콜렉티브와 같은 재즈 뮤지션에 의한 부분적 차용을 넘어, 이제 아프로비트는 힙합과 같은 당대의 주류 흑인음악과 보다 직접적이고 능숙한 결합의 단계에 이르렀다. 동시에 슬랩톤스를 비롯한 일군의 웨스트코스트 뮤지션들은 아프로비트의 지역적 확산에도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아프로비트의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는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단계로 올라서고 있는 듯한데, 닌자 튠과 같은 ‘추상(abstract) 힙합’ 레이블이 아프로비트의 음악적, 상업적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려 애쓰는 것도 아마 이런 연유일 것이다. 사실 이날 공연을 보러온 백인 여피와 대학생들, 아프리카 출신 흑인 이민과 라틴계 심지어 동양계 이민에 이르는 다양한 관객들을 보면서, 나는 점진적으로 탈영토화되는 아프로비트의 음악적, 정치적 여정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몹시 궁금해졌다. 물론 미국 내에서 거듭나고 있는 아프로비트가 장차 어떤 수용자층을 적극적으로 흡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3월 19일에 발매될 안티발라스의 새로운 앨범 [Talkatif]가 적으나마 그러한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020314 | 양재영 cocto@hotmail.com 관련 글 Afro-beat Never Stands Still (1) – 나이지리아의 대중음악 – vol.2/no.6 [20000316] Afro-beat Never Stands Still (2) – 펠라 쿠티 & 아프로비트 – vol.2/no.7 [20000401] Afro-beat Never Stands Still (3) – 다시 아프리카로 – vol.2/no.8 [20000416] Afro-beat Never Stands Still (4) – 아프로비트의 국제화(1) – vol.4/no.2 [20020116] Afro-beat Never Stands Still (5) – 아프로비트의 국제화(2) – vol.4/no.3 [20020201] Daktaris [Soul Explosion] 리뷰 – vol.4/no.3 [20020201] Various Artists [Afrobeat… No Go Die!] 리뷰 – vol.4/no.3 [20020201] 관련 사이트 Slaptones의 공식 사이트 http://www.slaptones.com Antibalas의 공식 사이트 http://www.antibalas.com Antibalas가 소속된 레이블 Ninja Tune의 공식 사이트 http://www.ninjatu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