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315054454-040605Lambchop – Is A Woman – Merge Records, 2002

 

 

나락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혹의 목소리

목소리란 악기 중에서도 가장 근원이 되는 악기다. 다양한 색채를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악기가 바로 목소리 아닌가. 하염없이 나락으로 빠져드는 듯한, 건조하면서도 따뜻한 중저음의 목소리는 또 어떤가. 내시빌(Nashville) 출신 램찹(Lambchop)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미니 앨범 제외) [Is A Woman]에는 이런 목소리가 강조되어 있다. 밴드를 조율하고 곡을 쓰는 프론트맨 커트 왜그너(Kurt Wagner)에 의해서. 그의 ‘말하듯 노래하기'(루 리드(Lou Reed) 같은?), 이상한 내러티브를 가진 다소 수수께끼 같은 노래 가사야 있었던 일이지만 이번 앨범은 그의 한가지 톤의 목소리를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한 다스도 넘는 대식구를 거느린 대형 밴드의 전형이랄 수 있는, 수많은 악기들로 꽉찬 사운드를 표출하지 않고서.

사실 이들의 출신지로 인해 ‘얼트 컨트리’라는, 오인 아닌 오인의 수식어가 밴드에게 부여되었다. 단지 오해였을까. 컨트리적인 느낌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니까([How I Quit Smoking](1996)에서 “We Never Argue”, “The Man Who Loved Beer” 등). 2000년 사실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배경으로 한, 많은 평자에게 오르내리곤 했던 [Nixon]도 역시 그런 오인을 받을 만한 앨범이었다. 한편으로 그들은 관현악 오케스트레이션이 수식하는 다층적 사운드 때문에 체임버 팝 밴드로도 분류된다. 경제성을 선언서로 채택한 로파이 인디 록의 빈약한 사운드를 거부한다는 것이 체임버 팝의 광의의 강령이라면 그렇다는 말이다. 어쨌거나 램찹은 블루스, 컨트리, 포크, 펑크, 재즈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분사해왔다.

그러나 이번 앨범을 두고도 ‘얼트 컨트리’ 앨범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예전에 화려했던 악기 사용도 이 앨범에서는 지극히 조심스럽다. 전작 [Nixon]에서 가슴을 휘두르는 가성(“You Masculine You”, “What Else Could It Be” 등)도 없고, 나름대로 빠르고 거친 (포스트 펑크적?) 사운드(“Butcher Boy”, “The Petrified Florist” 등)도 없다. 현란한 관악기나 현악기의 사용도 이번 앨범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컨트리적 색채도 많이 사라졌다. 단지 고요히 반추하는 듯한 목소리와 새 멤버(지만 때때로 램찹의 연주를 돕곤 했던) 토니 크로우(Tony Crow)의 피아노와, 섬세하게 터치되는 기타만의 협업의 산물로 들린다.

이는 행간의 생략과 비약, 은유로 가득한 가사를, 깊고 농밀하지만 가볍고 섬세한 슬로 템포 무드로 인도한다. “노래는 목소리를 의미하고, 목소리는 가사를 재현하며, 피아노가 그 노래의 기초를 공급한다”, “이 레코드는 비슷한 무드로 시작하고 끝난다. 그 무드는 레코드 전체를 관통하며 지속되었다”는 그의 의도를 굳이 끄집어 내지 않더라도, ‘피아노 한 대의 고독한 사운드’ 속에 같은 유형의 느낌을 삽입하면서 이를 미세하게 변화시킨다. 이와 같은 피아노 위주의, 우아하고 정제된 성긴 텍스트에, 비감하게 혹은 건조하게 혹은 쓸쓸하게 교차하는 바리톤의 목소리가 일관되게 거주한다. 이 앨범을 들으면 누구나 먼저 이야기하게 되는 그 목소리. 때때로 경미하게 갈라지며 읊조리듯 노래하는. 때로는 낭만적이고 고즈넉한. 그래서 이 앨범을 들으면 특히나 혹자는 마크 알몬드(Mark Almond)의 “What I Am Living For” “Home To You” 같은 노래 속의 목소리를 연상할지도 모른다. 혹은 성긴 텍스처 위로 바리톤 목소리를 구사하는 닉 케이브(Nick Cave)를 떠올릴 수도 있다. 그의 목소리는 틴더스틱스(Tindersticks)의 스튜어트 스테이플스(Stuart Staples) 및 레너드 코엔(Leonard Cohen)의 음유시인(그보다는 덜 ‘진한’) 계보와, 닉 케이브의 구도자적 목소리(그보다는 덜 ‘철학적인’) 계보의 그 어딘가에 속할 것이다.

가사는 왜그너 자신(주변)의 경험에서 비롯되곤 한다. “친한 친구의 자살 시도, 친구 부모의 죽음, 사랑과 존경, 자아 및 우리에게 친밀한 것에 대한 추구와 이해, 친구의 이혼,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메타포”까지. 이를 노래하는 목소리를 부각시키려는 듯 관악기, 실로폰, 트라이앵글, 비브라폰, 봉고 등 다양한 악기들이 곳곳에 숨었다가 고요히 공명한다. “The New Cobweb Summer”나, 죽음을 말하는 어조가 비감한 “My Blue Wave”의 건반악기와 관악기는 기세 등등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명멸한다. 신비롭게 반향하는 여성 배킹 보컬도 있지만 그것도 일순간 등장했다가 사라질 뿐이다(“I Can Hardly Spell My Name” 등). 봉고나 비브라폰이 간간히 삽입되는 다소 경쾌한 리듬 속에 펼쳐지는 재즈적 어프로치(“D. Scott Parsley”)조차. 뒷뜰 나무 아래 앉아 휴대용 컴퓨터로 곡을 썼다는 작업환경에서 비롯된 듯, 곤충이 등장하기도 한다. 모충이라는 제목을 건 “Caterpillar”나, 벌레 우는 소리로 시작하고 끝나면서 신비한 음향이 몽환적으로 둘러싸이는 “Bugs”처럼.

혹자가 표현하듯 “수수께끼 같은 심상이 충만하며 통찰력있는 소품”인 덕에 굳이 가사를 듣지 않아도 그의 목소리와 이를 둘러싼 사운드가 노래의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센티멘털하고 신실한 관조적 목소리 그 자체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가 노래하고 싶어하는 바를 느낄 수 있다. 20020311 | 최지선 fust@nownuri.net

8/10

수록곡
1. The Daily Growl
2. The New Cobweb Summer
3. My Blue Wave
4. I Can Hardly Spell My Name
5. Autumn’s Vicar
6. Flick
7. Caterpillar
8. D. Scott Parsley
9. Bugs
10. The Old Matchbook Trick
11. Is a Woman

관련 사이트
램찹 공식 사이트
http://lambchop.net/
커트 왜그너의 부인 메리에 의해 운영되는 사이트

머지 레코드 사이트
http://www.mergerecords.com/bands/lambchop/bio.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