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령 – 태양륜 – Ssamzie Sound, 2001 경계의, 혹은 모서리에서 만들어지는 음악 15살에 미국으로 이민, 뉴욕에서 현대미술을 전공으로 대학교육을 받고있던 황보령이 한국에서 ‘가수’로 데뷔한 것이 1994년이었으니 그녀의 노래 경력은 올해로 8년째다. 물론 그녀는 재능 있는 화가로 주목받았(고 현재도 그러하)다. 또한 황보령의 1집 [귀가 세 개 달린 곤양이]는 일정한 컨셉트 없이 펑크, 테크노, 트립합, 하드록 등의 스타일이 혼합되거나 혼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황보령의 개성이 잘 드러난, 독특한 앨범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았던 이인(유앤미 블루(You&Me Blue) 출신의 방준석)의 역할이 컸는데 그는 여기에서 황보령의 작사/작곡 능력을 보완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2001년, 그녀의 두 번째 앨범 [태양륜]에는 1집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음악 스타일이 섞여있다. 이 앨범에는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의 베이스 연주자인 장영규와 하드코어 밴드 삼청교육대, 이스크라와 윤도현 밴드 등에서 활동했던 키보디스트 고경천이 각각 참여했는데 이들이 몇 개의 곡을 나누어 프로듀싱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앨범은 이렇게 상이한 느낌의 곡들을 순서대로 배치했는데 시작을 알리는 곡은 “오랜 시간”이다. 서정적인 멜로디가 흐르는 가운데 그녀의 메마르고 아득한 목소리가 낮게 내려앉는 이 곡은 앨범에서 가장 매력적인 곡으로 단조롭게 반복되는 기타 리프가 황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도시 중심지를 횡단하는 뮤직비디오에 표현된 서울은 마치 사막처럼 느껴진다). 이어지는 “Love Song”은 단조의 기타 멜로디가 나른하게 진행되는 평이한 곡이고, “Shine in the Dark”는 드럼과 베이스를 중심으로 어두운 풍경을 만든다. 다음 곡 “우주”는 디스토션 이펙트를 사용한 기타 소리가 변칙적으로 연주되는 가운데 황보령의 보컬이 ‘옹알이’처럼 진행되어 앨범 중에서 가장 낯선 느낌의 곡이고 “공간이동”은 시퀀싱과 베이스를 중심으로 묘한 공간감이 형성되는 곡이다. 여기까지가 장영규가 프로듀싱한 곡들이라면, 곧 등장하는 “손목시계”와 “선악과”는 삼청교육대가 프로듀싱한 곡이다. 이러한 구성은 앞의 몽롱한 분위기를 순간적으로 뒤집는데, 두 곡이 지나고 다시 이펙트가 어둡게 삽입되는 “Whatever”로 돌아오는 구성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고경천의 연주와 프로듀싱이 돋보이는 “도무지(Wonder)”와 “파란 구슬(Blue Marble)”은 프로그래밍된 리듬에 맞춰 적절하게 삽입된 시퀀싱이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곡이고, 곱창전골 출신의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오헤이가 프로듀싱한 “Flying So High”는 슬라이드 기타 연주가 돋보이는, 앨범에서 가장 경쾌한 곡이다. 마지막으로 이 앨범은 황보령이 속한 밴드(그녀에게도 밴드가 있다!)인 스맥소프트(Smacksoft)의 곡 “Sunshine”으로 마무리된다. 이렇게 모두 12곡이 수록된 이 앨범의 전체적인 인상은 앞서도 말했듯 상이한 스타일이 한데 뒤섞여있다는 느낌인데, 그 가장 큰 이유는 각 곡들의 배치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개별 곡들에 대한 느낌과 앨범 안에서 함께 들을 때의 느낌이 다르다는 말이다(이 경우엔 다소 실망스럽다). 하지만 황보령(의 음악)에 대해서는 조금 더 천천히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사실 그녀를 설명하기 위한 단어들은 매우 다층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뉴욕 예술학교의 감수성(아방가르드 성향의 아티스트?)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페미니스트로 이해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그녀의 중성적인 외모나 주로 활동하는 공간, 혹은 모호하거나 중의적인 의미의 노래(가사)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기도 한데, 그렇게 보자면 황보령은 어떤 경계에 존재하는 것 같다. 성별, 국적, 스타일 등 그녀의 정체성을 설명할 근거들은 모두 중첩되어 있거나 무의미하다. 그녀의 스타일이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까닭은 그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녀(와 그녀의 음악)는 조금 더 자세하게 읽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미 황보령은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김윤아, 혹은 리채(Leetzsche, 이상은)와는 다른 지점에서 자신만의 아우라를 형성하고 있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인 까닭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경계란 곧 탈주를 의미하는 곳이고 그녀의 음악은 그러한 경계, 혹은 모서리에서 생산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여성 아티스트들에 대한 연구/비평 작업들이 함께 이루어지면 더없이 좋겠지만(그건 개인적으로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므로 내 일은 여기까지). 20020307 | 차우진 djcat@orgio.net 6/10 수록곡 1. 오랜시간 2. Love Song 3. Shines in the Dark 4. 우주 5. 공간이동 6. 손목시계 7. 선악과 8. Whatever 9. 도무지(Wonder) 10. 파란구슬(Blue Marble) 11. Flying So High 12. Sunshine 관련 글 [반칙왕] OST 리뷰 – vol.2/no.4 [20000216] 관련 사이트 황보령 공식 사이트 http://www.bow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