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후레자식들(北京雜種)]이란 1993년 추이 잰이 주연한 영화의 제목이다. 이 영화는 베이징의 언더그라운드 록 씬과 추이 잰 자신에 대한 자전적인 영화이다. 이 무렵 추이 잰이 제작한 뮤직 비디오 “Wild in the Snow”는 MTV에서 ‘국제 시청자 상(International Viewer’s Choice)을 받았다. 그는 중국 출신으로는 최초로 국제적 록 스타가 되었다. 아마도 그는 자메이카의 밥 말리(Bob Marley), 나이지리아의 펠라 쿠티(Fela Kuti)에 이어 ‘제 3세계’ 출신 음악인으로서 서양 음악도 월드 뮤직도 아닌 대중음악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군악대 출신의 아버지와 가무단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학교 졸업 후에는 베이징 오케스트라 단원의 트럼펫 주자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록 뮤지션 추이 잰의 ‘전사(前史)’다. 틈틈이 비틀스(The Beatles), 폴리스(The Police), 토킹 헤즈(The Talking Heads) 등을 듣던 그는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이내 ‘철밥그릇(iron rice bowl)’을 걷어차고 “무로부터 새로이 시작”했다. 1985년에 나온 비정규 솔로 앨범은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라이오넬 리치(Lionel Ritchie) 등의 팝송 번안곡(예를 들어 “Say, Say, Say”, “Hello” 등등)을 담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1984년에는 칠합판(七合板), 1987년에는 아도(Ado) 등의 밴드를 결성한 사실을 보면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020228114230-bio01-kid사진설명: 어린 시절의 추이 잰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의 대중음악은 ‘혁명가요’ 아니면 대만이나 홍콩으로부터 유입된 달콤한 팝송(일른바 칸토팝(cabto-pop: 칸토란 광동(廣東)이다), 그리고 ‘국민체조’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된 디스코가 있었을 뿐이다. 서양의 대중음악이 전달된 것은 1980년대 이후 경제성장이 가속화되면서부터고, 베이징의 대학가에서는 담배 연기 자욱한 지저분한 자취방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록 음악이라는 ‘새로운 계시’를 듣는 후레자식들이 탄생했다. 거기에 시베이펭(西北風)이라고 불리는 중국 서북부의 ‘포크 음악’이 결합되어 마침내 중국의 록 음악이 ‘창작’되기 시작했다.

1986년 그해 열린 [세계 평화의 해]를 기념하는 개막공연에 추이 잰이 “一無所有(Nothing to My Name)”를 부르면서 중국의 록 음악은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카키색의 인민해방군의 복장으로 나와 목석같이 앉아있는 관중들의 ‘몸을 흔들게 했던’ 추이 잰은 공연 이후 레코딩과 TV 출연을 ‘자제’당했지만, 그 대가로 전국민적 스타로 부상했다. 또 그의 뒤를 이어 코브라, 헤이 바오(黑豹), 메이 데이, 탕 차오(唐朝) 등의 록 밴드가 결성되고, 이들은 베이징의 대학생들의 컬트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 중국의 록 음악에는 ‘rock’n’roll’로부터 음차(音差)된 ‘야오군(搖滾)’라는 새로운 이름이 부여되었다. 그 출발은 1988년 추이 잰이 카세트로 발표한 앨범 [新長征路上的搖滾(The New Long March of Rock’n’roll)]였고, 이 앨범 제목처럼 중국의 록 음악은 ‘대장정(!)’을 시작했다. 싸구려 카세트 녹음기로 복제된 테이프가 여기저기 떠돌았는데 이들을 모두 합하면 1,000만장에 이른다는 것이 통설이다. 1989년 3월 다시 베이징에서 세 차례 공연을 가진 추이 잰은 “一無所有”, “新長征路上的搖滾” 등과 더불어 정부의 권력남용을 비판한 “一塊紅布(A Piece of Red Cloth)”을 연주했다. 그리고 세 달 뒤 천안문 광장에서 대학생들이 “一無所有”를 합창하면서 시위를 벌이자 중국 정부는 진짜로 ‘권력 남용’을 자행했다. 이른바 ‘6월의 대학살’이다.

20020228114230-newlongmarch사진설명: [新長征路上的搖滾(The New Long March of Rock’n’roll)]의 커버
1989년 [新長征路上的搖滾]를 재편집한 [一無所有]가 홍콩 EMI에 의해 국제적으로 배급되면서 추이 잰과 중국 록에 관한 소식은 국제적으로 파급되었다. 이어 1991년 2집 [解決]과 1994년 [紅旗下的蛋(Balls under the Red Flag)]은 국제 무대에 추이 잰의 이름을 확고히 새겼다. 특히 중국의 전통악기인 수오나, 구 젱, 타즈 등을 드럼, 색소폰, 트럼펫 등의 서양 관악기와 결합시키고, 거기에 중국의 토속 리듬과 록, 훵크, 레게, 힙합 등의 리듬이 어루어진 음악은 영미 등 선진국의 평론가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중국 비적단’ 같은 밴드를 이끌고 나와 한바탕 굿판을 연상시키는 공연을 전개하는 모습은 신명나는 제의를 치르는 듯하다. 1992년에는 일본에서 5만 명을 앞에 두고 공연을 가졌고, 1995년에는 미국과 스위스에서도 성황리에 공연을 가졌다.

그런데 1995년 이후 중국 록(정확히 말하면 베이징의 록)은 서서히 쇠잔해지고 있다. ‘후레자식들’은 천안문 사태 이후에도 “이제 ‘워먼궈지아(我們國家)’가 아니라 ‘워먼쯔지(我們自己)’를 노래하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었다. 나라가 아니라 개인에 대해 노래하겠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수백명이 모일 지도 모르는 공연’을 불허하는 당국,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추이 잰을 제외하곤) 음반 제작을 거부하는 국영음반사, TV로 음악을 듣는 데 익숙한 대중들 앞에서는 용빼는 재주 없나보다. 홍콩과 대만의 음반사(예를 들어 록 레코드(Rock Record))를 두드려 본 이들이 있었지만, 한때 국제적 주목을 받은 헤비 메탈 밴드 탕차오(唐朝), 메이 데이 출신의 펑크 로커 헤용(何用)은 음반 한 장만을 낸 채 감감무소식이다. 두 웨이는 홍콩으로 건너가 왕비(王菲=王靖文)를 왕비(王妃)로 맞이한 뒤 내면으로 침잠하고 있다(둘은 2년 전쯤 헤어졌다).

20020228114230-bio03-US사진설명: 1999년 미국 공연에서 밴드와 함께
이미 높은 곳에 올라와 있는 추이 잰은 자신이 무력하다는 느낌을 갖나보다. 그래서 [無能的力量(The Power of the Powerless)의 마지막 트랙 “時代的晩上”을 듣고 있으면 ‘중국 록’도 이제 만가(輓歌)가 필요한 새로운 단계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밀려든다. 일렉트로니카의 드럼 루프 위에서 특유의 씩씩한 목소리로 부르는 음악이 왜 이리 슬프게 들릴까. 그 해에 혹시 그 무렵이 H.O.T와 NRG가 중국에 가서 철없는 소녀들을 미치게 만들던 때였기 때문일까.

* 이 글은 웹진 [호미 아줌마의 금지된 고독가들의 클럽 (http://homey.wo.to)]에 수록된 글을 확대 수정한 것입니다.

* 추이 잰의 간추린 연보

1961년 베이징에서 조선족 아버지 밑에서 탄생
1984년 베이징 오케스트라를 나와 록 밴드 칠합판(七合版) 결성.
1986년 [세계 평화의 해] 개막 공연에서 아도(Ado)의 전신이 되는 밴드 멤버들 이끌고 “一無所有” 연주.
1988년 첫 앨범 [新長征路上的搖滾] 발표.
1989년 [新長征路上的搖滾]이 [一無所有]라는 이름으로 EMI 홍콩에 의해 국제적으로 배급됨.
1990년 아시아의 10개 도시에서 베이징 아시안 게임 자선 공연 개최.
1991년 두 번째 앨범 [解決] 발표. MTV 뮤직 어워드에서 “快讓我在這雪地上撒点兒野(Let Me Be Crazy On This Snow Field)”가 ‘국제 시청자 상’ 수상.
1993년 영화 [北京雜種(The Beijing Batards)]에 주연으로 출연.
1994년 세 번째 앨범 [紅旗下的蛋(Balls Under the Red Flag)] 발표.
1992-1995년 일본, 미국, 스위스 등의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가짐.
1997년 한국을 방문하여 KBS의 [빅 쇼]에서 강산에와 합동 공연.
1998년 네 번째 앨범 [無能的力量(The Power of the Powerless)] 발표.
1999년 뉴욕 센트럴 파크의 서머 스테이지(summer stage)에서 공연.

관련 글
추이 잰과의 인터뷰: “나는 다음 세대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뿐입니다” – vol.4/no.5 [20020301]
崔健(Cui Jian), [一無所有(Nothing To My Name)] 리뷰 – vol.4/no.5 [20020301]
崔健(Cui Jian), [解決(Solution)] 리뷰 – vol.4/no.5 [20020301]
崔健(Cui Jian), [紅旗下的蛋(Balls under the Red Flag)] 리뷰 – vol.4/no.5 [20020301]
崔健(Cui Jian), [無能的力量(The Power of the Powerless)] 리뷰 – vol.4/no.5 [20020301]

관련 사이트
추이 잰 공식 사이트
http://www.cuijian.com
추이 잰에 관한 간명한 해설
http://www.smipp.com/cuijian.htm
중국 록의 역사에 대한 간명한 해설
http://www.sat.dundee.ac.uk/~arb/music/chinario.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