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톨릭 – Windproof(防風) – Rawmantic/Nine4u, 2001 한국 힙합에 대한 기대와 불만 한국에서 힙합을 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지극히 혼란스러운 문화적 실천의 운명을 지닌다. 발원지로부터 공간적으로 분리되고 시간적으로 지체된 채 유입된 이 독특한 음악과 문화는 일종의 접변을 통해 격렬한 변신의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힙합 뮤지션과 팬들은 필연적으로 ‘힙합 음악과 문화’의 실천을 둘러싼 나름의 고민들을 다양한 수준에서 짊어지고 부담스런 행보를 진행해야만 했다. 지금에야 하는 말이지만, ‘정통 힙합’이니 ‘토종 힙합’이니 하는 억지스런 표현들을 둘러싼 1990년대 후반의 어설픈 논쟁들은 이런 치열한 고민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배설된 것이리라 생각된다. “변기 속 세상”을 통해 처음으로 그들의 이름을 알리고 우리 귀를 사로잡은 게 지금으로부터 무려 5년 전인 1997년이니, 갱톨릭(Gangtholic)은 아마 누구보다 먼저 ‘한국에서 힙합을 한다는 것’에 대해 치열한 문제의식과 부담을 안고 자신들의 음악 경력을 시작했을 것이다. 더욱이 공중파 방송의 ‘랩 댄스’가 힙합인양 간주되던 시대에 이미 인디 레이블을 통해 [A.R.I.G](1998)라는 최초의, 다소 거칠지만 실험적인 한국식 ‘언더그라운드 힙합’ 앨범을 제작, 발매했다는 점만으로도, 갱톨릭은 분명 한국 인디 힙합의 선발주자라는 큼지막한 이정표를 남긴 셈이다. 이런 저런 개인사정을 뒤로 하고 갱톨릭은 새로운 레이블을 통해 와신상담 두 번째 앨범 [Windproof(防風)](2001)를 세상에 내놓았다. 기존의 임태형(Tyung)과 김도영(Doboi) 외에 상대적으로 경력이 일천한 오현탁(Taq)과 김희정(Miz. Kim)이 새로 가세했고, 미국 웨스트코스트 스타일의 힙합 사운드에 능숙하면서 주류 대중가요에 대한 감각도 남다른 듯한 얀스타(Yarnstar)가 프로듀서로서 갱톨릭의 멤버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목소리의 톤이 다소 높은 오현탁과 여성 래퍼 김희정의 가세가 기존 갱톨릭의 랩 스타일에 큰 변화를 준 것 같지는 않다. 이들의 랩은 상대적으로 ‘피처링’의 느낌이 강한 편이고 아무래도 임태형과 김도영 특유의 ‘저음’ 래핑이 대부분의 트랙을 주도한다. 덕분에 고음의, 특히 김희정의 간헐적인 래핑은 때론 겉돌거나 때론 거슬리는 면이 있다. 가령 “취두리2001″이나 “Let’s Get High” 같은 곡에서 그러하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1집 때와 마찬가지로 기계적인 라임이나 강박적으로 끊어 치는 플로우를 거세한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래핑은 여전히 돋보인다. 다른 한국의 래퍼들과 변별되는 갱톨릭의 자연스러운 래핑은 현학적이지 않고 직선적인 가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기계적인 라임의 지양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드러내는데 아마도 보다 많은 자유를 부여하지 않았나 싶다. 한국의 힙합 혹은 한국에서 힙합을 한다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긴 “H.I.P.H.O.P.”이나 “Exodus”, 적당한 욕설과 함께 세상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토로하는 “Hate” 같은 곡에서 그들 특유의 세상에 대한 분명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면, 한편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일상에 대한 고통과 고민(“Time”, “Wanderer”), 그리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 삶(“One Fine Day”, “Gangtholpia)에 대해서도 능숙하게 표현한다. 아쉬운 것은 때론 갱톨릭의 래핑이 끊어치는 강약의 맛이 부족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1집에 비해 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고 물 흐르는 듯한 랩 스타일은 비트보다는 선율을 강조한 사운드 프로덕션과 은근한 조화를 이루는데 유리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샘플링을 가능한 지양하고 훵키한 기타, 지 훵크(G-Funk) 스타일의 신쓰, 재지한 관악, 가요 스타일의 백 보컬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선율 중심의 사운드는 멤버들의 래핑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특히 친근한 멜로디의 느긋한 신쓰와 엇박의 힙합 비트 위로 네 멤버가 자신들의 래퍼로서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Time”이나, 훵키한 와와(wah-wah) 기타와 신쓰 리프 위로 플로우의 변화가 의외로 심한 래핑이 날아다니는 흥겨운 파티 곡 “One Fine Day”는 방송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물론 시종일관하는 여성 코러스와 신윤철의 기타가 돋보이는 “Gangtholpia”, 힘찬 피아노 반주 하에 김도영과 임태형의 주고받는 랩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Wanderer”, 훵키한 비트 위로 리듬을 타는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래핑이 돋보이는 “Spinning World” 등도 나무랄 데 없는 수작들이다. 샘플링을 지양한 자연스럽고 유기적인 사운드와 유연한 래핑의 성공적인 접목 혹은 조화를 통해 국내 힙합 프로덕션 방법론을 보다 다양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Windproof(防風)]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하지만 한가지 못마땅한 점은, 시종일관하는 웨스트코스트 지 훵크 스타일의 신쓰 선율이 더 이상 신선하지 않고 오히려 다소 구태의연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어차피 한국 힙합 음악이 여전히 미국 힙합 음악의 직접적인 영향력 하에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젠 보다 새로운 미국내 힙합의 다양한 흐름들을 수용하고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노력들이 필요할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이는 갱톨릭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아니다. 그보다는, ‘쇠락하는’ 미국 ‘주류’ 웨스트코스트 스타일 사운드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약진하는’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 음악 전반의 역설적 상황에 대한 새삼스러운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더욱이 ‘한국 힙합’에 대한 과거의 어설픈 고민들이 어느 정도 정리된 지금이라면, 이제 우리 힙합 사운드의 정교한 진보와 진화를 위한 보다 집중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20020224 | 양재영 cocto@hotmail.com 8/10 수록곡 1. Intro 2. Gangtholpia 3. Hate 4. H.I.P.H.O.P. 5. Time 6. 취두리2001 7. One Fine Day 8. Exodus 9. g-Love 10. Let’s Get High 11. Wanderer 12. Spinning World 13. Interlude 14. 나른한 오후 – We Luv Ya – 관련 글 배리어스 아티스트 [MP Hip Hop Project 2000 超] 리뷰 – vol.2/no.12 [20000616] 배리어스 아티스트 [The Green Night] – vol.1/no.4 [1999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