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228094645-grandaddyGrandaddy – Concrete Dunes – Lakeshore, 2002

 

 

조용하지만 야심찬, 수줍지만 당당한

그랜대디(Grandaddy)의 [Concrete Dunes]는 정규 음반이라기보다는, 그 전에 나온 바 있는 다양한 초기 비사이드(B-Side) 곡들에 두 곡의 미발표 곡을 첨부한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이들의 음반 중에 특히 2000년 작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The Sophtware Slump]의 경우 꽤 즐기긴 했지만,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았다. 여기엔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이래저래 뒤로 미뤄두고 있다가 때를 놓쳤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이들의 사운드([The Sophtware Slump] 시절)를 거칠게나마 정의내려 보자면, 실험적인 측면보다는 정서적인 면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정돈된’ 노이즈와 불안정한 음정 속에서도 섬세한 감정을 전할 줄 아는 보컬 등에서 볼 때, 어떻게 보면 신경증이거세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을 연상할 수도, ‘대중친화적’인 소닉 유스(Sonic Youth)을 끌어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어느 정도 식상한 정의를 내리면서 [Concrete Dunes]를 듣는 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조금 전과 같은 구분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가를. 친숙하지만 이상하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는 “Why Would I Want To Die”의 내성적인 고백(실제 얼굴을 본다면 이런 말하기 좀 그렇지만), “My Small Love”의 짧은 고통, 최대한 여린 목소리로 불안정하게 속삭이는 “12-Pak-599″까지, ‘관성’으로라도 듣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런지의 음악적 유산이 묻어나는 “Wretched Songs”와 그런지보다 조금 앞섰던 밴드 픽시스(Pixies)에 대한 참조라 볼 수 있을 “Kim You Bore Me To Death” 같은 곡들조차도 직접적인 자극을 피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이 수많은 음향 효과들에 대해 얼마나 치밀하게 파악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Fentry”의 은근한 음향의 유혹이나 “Pre Merced”의 슈게이징 사운드까지, 다양한 소리의 스펙트럼 속에 펼쳐지는 부유하는 음향은 현실과 환상,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이들 스타일의 다양성을 잘 보여준다.

마지막 노래이자 연주곡인 “Egg Hit And Jack Too”는 이들답지 않은 하드한 연주를 바탕으로 약간은 튀는 듯한 ‘잡탕’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지만 그 이질감 속에도 어딘가 발붙일 곳이 있다는 사실은, 이들의 지향점이 결코 소수의 추종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많은 인디 밴드들이 친숙함 속에 다가가기 힘든 요소들을 배치해 두는 것과는 달리, 이들은 낯설음 속에서도 여전히 듣는 이에게 우호적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Concrete Dunes]를 설명하면서,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을 떨쳐낼 수가 없다. 그것은 이 음반이 정규작이 아니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하나의 일관적인 흐름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다. 하지만 이 점은 그리 크게 신경쓸 일이 아닌 듯하다. 이들의 사운드는 응집력을 요구하기보다는, 각각이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는 가운데 듣는 이에게 그 시선을 하나로 모아주기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곡들은 독립적인 가운데서도 이상한 유기 작용 내에 놓여있다. 언뜻 보기에 서로 상이한 스타일의 “My Small Love”와 “Fentry”가 한 앨범 안에 무리 없이 공존할 수 있는 까닭도 애초부터 그러한 통일성의 욕구를 거세해 버렸기 때문이다.

수록곡들 안에 녹아있는 갖가지 음악적 소스들을 논하자면 밤을 새더라도 모자라겠지만, 요즘의 많은 인디 밴드(더 구분을 짓자면 포스트 록 밴드)들이 그러하듯, 이들은 영리하게도 그러한 부분적인 요소를 현학적인 열거에 그치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에 대해 알고있는 듯 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다른 누구도 아닌 이들을 인디 씬의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어준 요소라 하겠다.

그런 이유에서, 새로운 노래는 단 한 곡도 수록되지 않은 이 ‘뻔뻔한’ 편집음반은, 이미 예전부터 그들이 이룩해 온 음악적 성과에 대한 과시 아닌 과시이며, 영리한 수줍음 속에 숨어있는 자신감인 것이다. 아무 야심도 없어 보이지만, 섣부르게 다가가는 동안 어느덧 귀를 뗄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며 놀라지 말기를. 이것이 바로 이 마이너리그의 ‘대가(Grandaddy)’들의 당찬 계획이었을 테니까. 20020224 | 김태서 uralalah@paran.com

7/10

수록곡
1. Why Would I Want To Die
2. My Small Love
3. 12-PAK-599
4. Wretched Songs
5. Levitz
6. For The Dishwasher
7. Sikh in a Baja VW Bug
8. Lava Kiss
9. Fentry
10. Gentle Spike Resort
11. Away Birdies With Special Sounds
12. Kim You Bore Me To Death
13. Pre Merced
14. Taster
15. Egg Hit and Jack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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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addy [The Sophtware Slump] 리뷰 – vol.2/no.18 [20000916]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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