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228095011-creedCreed – Weathered – Wind Up, 2001

 

 

진부함에 갇혀버린 과장된 성실함

포스트 그런지(post-grunge)의 약발마저 유효 기간이 끝나가던 시기에 등장한 크리드(Creed)는, 예상외의 성공을 거두며 대중의 머리 속에 자신들의 이름을 각인 시켰다. 그리고 비단 스콧 스탭(Scott Stapp)의 보컬 스타일뿐만이 아닌 그 요란한 성공 신화의 모양새에 대해 사람들은 이들의 비교항에 펄 잼(Pearl Jam)을 올려두기에 주저하지 않았고, 또한 대대적인 성공에 따르는 당연한 수순으로 프레드 더스트(Fred Durst, 모두가 알고 있을 림프 비스킷(Limp Bizkit)의 프론트맨)와의 이런저런 다툼이 오갈 때도, 매체는 시시콜콜 이 모습을 보도하는 투철한 직업 정신을 과시했다. 이 가십 기사들 중 절정은 베이시스트 브라이언 마샬(Brian Marshall)이 내뱉은 문제의 펄 잼 발언이었으며, 더 이상의 소동을 원하지 않던 밴드는 끝내 그를 ‘방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났고 2001년 11월 발매된 3집 앨범 [Weathered]는, 록 밴드로서는 이례적인 인기 몰이 속에 다시 한번 이들의 명성을 확인시켜 주었다(참고로 훨씬 전에 발매된 앤씽크(N’ Sync)의 3집 앨범보다도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확실히 요즘처럼 밴드의 수명이 짧아진 시점에서 이들의 존재는 매우 특이하다. 무엇보다도 (본인들은 극구 부인하겠지만) 새로운 사운드로써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향수를 동반하는 음악으로 이런 엄청난 대중적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은 주의 깊게 지켜볼 만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1990년대의 록 씬이 마감되는 시점에 등장하여, 새로운 10년대의 가장 인기 있는 밴드로 거듭난 이들의 존재는, 빌보드 차트에서 발매 1년이 다 되도록 내려올 줄 모르는 링킨 파크(Linkin Park)의 [Hybrid Theory]와 함께 현재 미국 메인스트림 록이 처한 문제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들 사이의 유사점은 강력한 사운드를 구사하면서도 팝적인 훅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찾아보기가 쉽지 않지만, 두 밴드 모두 독창성의 부재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음에도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아직 신보 소식이 들리지 않는 링킨 파크는 제외하고, 새 앨범을 발표한 크리드는 진정 이들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에 처한 것이다.

첫 곡 “Bullets”는 요즘의 얼터너티브 메탈 밴드들과 비교해도 무색하지 않을 강력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얼핏 들으면 툴(Tool)의 그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크리드의 사운드가 훨씬 단편적이다. 이어지는 “Freedom Fighter”도 크게 다를 것 없이 ‘잘 프로듀싱된’ 하드 록이라는 느낌 이상의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몸을 들썩이게 하는 재주는 여전하지만 [Human Clay]에서의 “What If”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 느낌이라고 할까?

8분이 훌쩍 넘지만 역시 지난 앨범([Human Clay])의 최대 히트곡 “With Arms Wide Open”의 확대 해석 이상의 평가는 주기 힘든 “Who’s Got My Back?”과 이후로도 이어지는 “One Last Breath”, “My Sacrifice”, “Don’t Stop Dancing” 등의 고만고만한 차트용 발라드의 행진은 도대체 이들의 진심이 음반 전반부의 하드함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후반부의 차분함에 있는 것인지를 혼동하게 만든다. 오히려 지글대는 그런지 기타음이 넘실대는 “Signs” 같은 곡들로 좀 더 어필해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는 얘기다(이 곡은 아직 사운드가든(Soundgarden)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위로곡 같은 인상을 준다).

전체적으로 앨범은 과도한 미드/슬로우 템포 곡들로 인해 구심점을 잃고 표류하고 있으며, 스콧 스탭의 보컬 역시 에디 베더의 아류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실망스러운 점은 이들이 전작 [Human Clay]로부터의 변화나 발전을 모색하지 않고, 그 지글대는 그런지 사운드에 안주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다는 사실이다. 다이아몬드 레코드(미국내 천만 장 이상 판매를 올린 레코드)의 매력을 차마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판매 상황으로 보아 이들의 선택은 틀리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그런지라는 장르 자체도 과거의 음악적 유산들에 근거를 두고 있었음을 인정해야겠지만, 지금과의 시기적 차이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당시는 그 음악적 소스들의 ‘재활용’이 음악적 진보(탈피?)를 위한 재료들로 사용된 것에 반해, 오늘날 크리드의 그런지 사운드는 ‘답습’이라는 평가 이상의 것을 얻어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얘기이다.

여전히 이들은 멜로디를 간과하지 않고 다소 억지 춘향 식일지라도 청자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재능을 잃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연스레 표출되는 것이 아닌, 하나의 강박증으로서 다른 요소들을 무시한 채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앞으로 계속될 이들의 행보를 결코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비슷한 스타덤과 그에 따른 비난을 겪었고, 오늘날 예전만한 명성은 포기했지만, ‘시대의 목소리’란 평가를 얻어낸 펄 잼의 스토리를 생각해 볼 때 스콧 스탭이 했던 ‘우리도 그들과 같은 밴드가 되기를 바란다’란 말은 이들의 음악만큼이나 그 진심을 믿어주기 힘들다.

어쨌든, 크리드는 [Weathered]로 다시 한 번 히트를 기록했고, 점점 더 업계의 생리에 들어맞는 밴드로서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이룩했다. 그런 이유로, 미안한 얘기지만 그들을 ‘풍화/마모(weathered)’하게 만든 요인은 외부의 곱지 못한 시각이 아니라 자신들의 안이함이었음을 지적해야만 하겠다. 20020223 | 김태서 uralalah@paran.com

4/10

수록곡
1. Bullets
2. Freedom Fighter
3. Who’s Got My Back?
4. Signs
5. One Last Breath
6. My Sacrifice
7. Stand Here With Me
8. Weathered
9. Hide
10. Don’t Stop Dancing
11. Lullaby

관련 사이트
크리드 공식 사이트
http://www.creed.com/
팬 사이트
http://www.geocities.com/totallycreed/
http://www.creedzone.com/
http://creeduniverse.tripo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