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301015350-nothingCui Jian(崔健) – Nothing To My Name(一無所有) – CRC/EMI, 1988

 

 

중국 록의 새로운 대장정의 시작

먼저 밝혀둘 것은 이 음반은 1988년 중국에서 발매된 [新長征路上的搖滾(The New Long March of Rock’n’roll)]을 EMI 홍콩에서 재발매하여 국제적으로 배급한 것이라는 점이다. 재발매하는 과정에서 앨범의 타이틀과 수록곡의 순서가 바뀌었는데 이는 뒤의 수록곡 리스트를 참고하라. 어쨌든 이 음반은 중국 내에서만 1,000만장이 판매되었다는 기록을 남겼고, 국제적으로는 ‘중국에도 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물론 그 중 800만장은 불법 복제에 의한 것이라는 비공식 집계도 함께 따라 다니는 기록이다.

따라서 추이 잰의 ‘영웅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 이 음반을 듣는 것과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어쩌다가 이 음반을 듣는 것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추이 잰과 중국 록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一無所有(일무소유)”를 듣고 어떤 감흥을 받을 것이다. 만약 그 사람에게 1989년 8월 천안문 광장에 서 있던 경험이 있다면 이런 감흥은 ‘벅찬’ 수준으로까지 고양될 것이다. 그렇지만 일단 전자의 입장을 취해 보자.

“一無所有”는 이 곡은 I도와 IV도 두 개의 화성의 코드 진행 위에 여덟 마디의 버스(verse)가 두 번 반복된 다음 여덟 마디의 코러스(chorus)가 등장하는 단순한 악곡 형식이다. ‘음악적으로 그리 뛰어나지 않아도 대중적으로 애창되는 곡’이라는 유형에 들어갈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뉴웨이브 풍의 신시사이저 인트로에 이어 등장하는 다양한 분위기의 프레이즈가 단조로움을 없애고 중반부터는 업템포의 하드 록으로 페이스가 고양된다. 거기에 드문드문 들어가는 중국의 전통 악기는 이 곡이 ‘Made in China’임을 확인시켜 준다. 이어 등장하는 “假行僧”은 스팅(Sting)의 “Russians”의 번안곡이다. 뒤에 등장하는 곡들 중에서 피아노가 주도하는 단조의 “出走”나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하는 장조의 “花房姑娘”도 이른바 ‘록 발라드’라고 부를 수 있는 스타일의 곡들이다. 가사를 알아들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난리인가’라는 의문도 나올 법하다.

그렇지만 이 앨범의 진수는 이런 곡들에 있지 않다. 또한 “新長征路上的搖滾”처럼 직선적이면서도 흥겨운 로큰롤 넘버라든가 “從頭再來” 같이 레게 리듬을 기본으로 하고 재즈의 워킹 베이스를 뒤섞은 넘버도 ‘서양의 문화를 잘 수용한’ 가치는 있을지라도 국제적 가치는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不再掩飾”나 “讓我睡個好覺” 같은 곡은 ‘중국의 브루스 스프링스틴(혹은 스팅)’이라는 평을 들을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게다가 가끔씩 삽입되는 신시사이저의 음색이나 전체적인 프로듀싱은 현 시점에서는 ‘cheesy’하다는 표현을 입에서 맴돌게 할 정도라서 혹시 자신의 취향이 ‘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귀에 거슬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로큰롤을 음차한 ‘搖滾(야오군)’으로 ‘長征(장정)’을 떠나는 이의 시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건 “一無所有’에서 맛배기로만 보여준 새로운 리듬의 실험에서 드러난다. 그 절정은 “不是我不明白”으로 보인다. 마치 아프로 팝(afro-pop)을 연상할 정도로 리드믹한 베이스와 핸드 퍼커션의 향연 위에 랩에 가까운 보컬이 펼쳐지는 이 곡은 마치 한차례 질펀한 굿판을 벌이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래서 이 곡과 “一無所有”만으로도 이 앨범은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다른 곡들을 들으면서도 그가 정말 음악을 신실하게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1988년이라면 선진국의 주류 록 음악계라도 뭐 별 게 있던 때인가. 얼터너티브 록이 주류 돌파에 성공하기 전 ‘양심적 주류 록’이라는 트렌드가 지배적이었다면 오히려 이 앨범은 이런 트렌드보다 한발 더 앞선 셈이다. 그리고 이 앨범이 ‘1980년대 중국’에서 탄생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러니까 음악감상자가 문화적으로 개방된 자세를 가졌다면 이 모든 평가는 대폭 상향조정되어야만 한다. 20020228 | 신현준 homey@orgio.net

8/10

수록곡
1. 一無所有(Nothing To My Name)
2. 假行僧(Fake Monk)
3. 從頭再來(Starting All Over)
4. 不再掩飾(No More Hiding)
5. 不是我不明白(It’s Not That I Don’t Understand)
6. 花房姑娘(Bondoir Lady)
7. 讓我睡個好覺(Let Me Sleep)
8. 出走(Stepping Out)
9. 新長征路上的搖滾(The New Long March of Rock’n’roll)

* 위 트랙 리스트는 1990년에 EMI 홍콩에서 제작·배급한 한국반에 따른다. 1988년 중국에서 발매된 [新長征路上的搖滾(The New Long March of Rock’n’roll)]의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1. 新長征路上的搖滾(The New Long March of Rock’n’roll)
2. 不再掩飾(No More Hiding)
3. 讓我睡個好覺(Let Me Sleep)
4. 花房姑娘(Bondoir Lady)
5. 假行僧(Fake Monk)
6. 從頭再來(Starting All Over)
7. 出走(Stepping Out)
8. 一無所有(Nothing To My Name)
9. 不是我不明白(It’s Not That I Don’t Un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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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추이 잰 공식 사이트
http://www.cuijian.com
추이 잰에 관한 간명한 해설
http://www.smipp.com/cuijian.htm
중국 록의 역사에 대한 간명한 해설
http://www.sat.dundee.ac.uk/~arb/music/chinario.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