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ykah Badu – Baduizm – Kedar/Universal, 1997 복고의 차용의 모범을 제시한 앨범 처음부터 다수의 대중을 겨냥한 상업적 팝이 아니라면 어떤 음악이든 자신의 분야가 아닌 곳까지 영향력을 미치기란 어렵다. R&B/소울 분야는 특히 그러한데, 그것은 마치 블루스 음악이 그러하듯 어느 음악보다도 형식적인 틀이 갖는 힘이 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려면 내적 긴장감이 보다 지배하는 음악이라고 해도 좋다. 어쨌든 그렇기에 여간 뛰어난 개성과 창조성을 갖지 않고서는 R&B에서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의 기억에 각인시키기가 어렵다. 그래서 19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에리카 바두(Erykah Badu)와 로린 힐(Lauryn Hill)이 단순히 R&B/소울 씬을 넘어 대중 음악의 전반적인 지형에서도 의미를 갖는 것은 극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교대상으로 올리는 이들 두 사람은 특히 차이점이 한결 두드러진다. 레게와 힙합에서 많은 것을 가져온 로린 힐이 강인한 생명력을 뿜어낸다면, 에리카 바두는 고전적인 재즈와 소울의 향취를 느끼게 하는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다. 뭔가 다른 세상에서 내려온 듯 주술적인 에네르기로 충만해 있는 에리카 바두의 목소리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청중을 압도하는 식이 아니라 나긋나긋하면서 변화무쌍한 목소리로 청중을 가볍게 마취시키는 식이다. 자연히 그녀의 목소리는 대도시의 뒷골목보다 영성으로 충만한 아프리카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녀 역시 “Certainly”와 특히 “Drama”에서 동시대의 문제에 대해 노래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리얼리티보다는 시적인 표현에 무게가 놓인다. 그녀의 데뷔 앨범 [Baduizm]은 무엇보다 그녀의 목소리를 조망하는 데 초점을 둔다. 드럼 소리는 스스로를 전면에 드러내는 적이 거의 없으며, 기타와 건반 악기들은 유심히 듣지 않으면 언제 연주되었는지 모를 정도다. 곡에 쉽게 특징적인 색채를 부여해주는 관악기 또한 드물게 사용되었지만 배경에 머물러있다. 단 하나, 모던 재즈 전성기의 거장 론 카터(Ron Carter)의 더블베이스 소리만이 진한 울림을 안겨줄 뿐이다. 한편으로 앨범은 차트에서 선전한 히트곡(“On & On” 등)이 있긴 하지만 두드러진 몇 곡보다 유기적으로 통합된 구성에 초점을 둔다. 물 흐르듯 일관된 호흡으로 구성된 앨범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이 정도 되면 앨범이 꽤나 지루할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이것이 그대로 이 앨범의 장점이 된다는 것이다. 일관된 분위기 속에 아기자기한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둔 것, 그리고 그에 따라 목소리 또한 다채로운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 말이다. 처음으로 만나는 그녀의 목소리는 바이브레이션이 거의 없는 담백한 톤에 미묘한 변화를 주어 가볍게 날아오르는 듯한 상쾌함을 준다. 이는 무엇보다 “Appletree”에서 돋보이는데, 베이스가 만들어주는 그루브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선율을 따라 저음과 고음을 오가며 실로 다양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부서질 듯 여리면서 따뜻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Next Lifetime”을 지나면 앨범에서 가장 재즈에 가까운 스타일의 곡들이 이어진다. “Afro”에 이은 “Certainly”는 피아노, 트럼펫, 베이스, 드럼이라는 모던 재즈 전형의 구성으로 워킹베이스의 스윙이 주도하는 곡으로, 여기서 그녀는 제법 유혹적이고 끈적거리는 목소리를 선사한다. 한편 “Ye yo ye yo”하는 여흥구로 시작하는 “Sometimes”에서는 힙합 비트와 무거운 베이스 연주 위로 제법 기교적인 멋을 부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 앨범으로 에리카 바두는 과거 흑인 음악의 풍부한 전통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복고적 소울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그녀만큼 복고적인 멋을 살리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스타일로 발전시킨 예도 드문데, 이렇게 복고의 차용의 성공적인 모범을 제시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그녀의 장점이다. 더구나 앨범의 거의 모든 곡을 작곡하고, 프로듀싱과 비디오 디렉팅까지 손대는 그녀의 재능 또한 남다른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근심이 하나 생긴다. R&B/소울이 목소리에 무게를 두는 음악이고 에리카 바두 역시 여전히 이런 전통을 충실히 따른다는 점이 그녀의 롱런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과연 이것은 R&B/소울이 갖는 장점일까, 단점일까. 20020226 | 장호연 bubbler@naver.com 9/10 수록곡 1. Rimshot (Intro) 2. On & On 3. Appletree 4. Other Side of the Game 5. Sometimes (Mix #9) 6. Next Lifetime 7. Afro 8. Certainly 9. 4 Leaf Clover 10. No Love 11. Drama 12. Sometimes 13. Certainly (Flipped It) 14. Rimshot (Outro) 관련 글 D’Angelo [Brown Sugar] 리뷰 – vol.3/no.18 [20010916] Maxwell [Now] 리뷰 – vol.3/no.18 [20010916] Mary J. Blige [My Life] 리뷰 – vol.3/no.18 [20010916] Mary J. Blige [Mary] 리뷰 – vol.1/no.8 [19991201] Mary J. Blige [No More Drama] 리뷰 – vol.3/no.19 [20011101] Me’Shell Ndegeocello [Peace Beyond Passion] 리뷰 – vol.4/no.5 [20020301] Lauryn Hill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리뷰 – vol.3/no.18 [20010916] Erykah Badu [Mama’s Gun] 리뷰 – vol.3/no.3 [20010201] Macy Gray [On How Life Is] 리뷰 – vol.3/no.1 [20010101] Macy Gray [The Id] 리뷰 – vol.3/no.19 [20011001] Angie Stone [Black Diamond] 리뷰 – vol.4/no.5 [20020301] Angie Stone [Mahogany Soul] 리뷰 – vol.4/no.5 [20020301] Jill Scott [Who Is Jill Scott? : Worlds and Songs, Vol.1] 리뷰 – vol.4/no.5 [20020301] Jill Scott [Experience : Jill Scott 826+] 리뷰 – vol.4/no.5 [20020301] Jill Scott in Bay Area : 흑인 여성들을 위한 축가 – vol.3/no.19 [20011101] 관련 사이트 Erykah Badu 공식 웹사이트 (모타운, not updated lately) http://www.erykahbadu.com/ 비공식 팬 사이트 ‘Baduteria’ http://www.liquid2k.com/badute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