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의 음악 저널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판도의 변화는 영국 음악계 전체의추세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이 중 가장 주목되는 현상은 전통의 아성 [NME(New Musical Express)]가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다. 1960년대 전성기에 주당 23만여부의 판매고를 자랑하기도 했던 [NME]는 지난 2001년 통계에 의하면 주당 7만여부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5년 전인 1996년과 대비해도 약 4만 7천부가 감소된 수치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기록이 전통적 라이벌 [멜로디 메이커(Melody Maker)]가 사라지고 난 뒤에 수립된 것이라는 점에 있다. [NME]의 몰락은 단순한 잡지 하나의 몰락 이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영국 음악 저널리즘 전체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이며 나아가 영국 록 음악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의 음악 저널 중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는 잡지는 거의 없다. 이들 대부분은 인터넷과 패션 잡지들에 독자층을 잠식당하면서 사상 유례없는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음악 저널은 스타의 후광을 먹고 산다. 스타가 존재하지 않으면 음악 저널도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음악 저널이 없으면 스타도 만들어질 수 없다. 스타와 음악 저널과의 이러한 공생관계가 선순환 할 때 대중음악의 판도는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영국의 록계는 라디오헤드(Radiohead)와 오아시스(Oasis) 이후 이렇다 할 스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동안 등장한 고만고만한 ‘도토리’들은 결코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음악 저널들이 될 성싶은 신인 띄워주기에 목숨 걸고 나서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들로서는 그것이 문자 그대로 사활을 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러한 노력이 과연 소기의 성과를 거뒀는지는 앞서 언급한 통계치가 잘 입증해준다. 2001년 한 해를 떠들썩하게 했던 스트록스(The Strokes)와 화이트 스트라이프스(The White Stripes)의 열풍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소수 인디 록 팬들 사이의 일이었을 뿐이다. 지금 런던의 저자거리에 나가 이들의 이름을 대면서 물으면 들어봤다고 대답할 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창 음악에 몰두할 청소년들조차도 에이원(A-1)이나 블루(Blue)를 들으며 기획사 오디션에 응모하려 하지 스트록스나 화이트 스트라이프스를 들으며 기타를 배우려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 모든 책임을 음악 저널에만 전가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다. 브리티쉬 록의 쇠퇴는 한 두 가지 요인으로만 환원할 수 없는 복잡한 사회문화적 요인들이 중첩된 결과이다. 그러나 음악 저널에도 분명히 책임의 일단은 있다. 최근 몇 년 간의 [NME] 기사를 보면 기자들의 수준을 의심할 만큼 저열한 글들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들은 뮤지션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옷을 입었는지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고 음반 리뷰들은 가사 몇 줄을 놓고 장광설을 풀거나 공식화된 아티스트 이름을 줄줄이 나열하는 것에서 그친다. [NME](와 유사 잡지들)는 이제 더 이상 음악 저널이기를 포기하고 스타일 & 패션 잡지가 되기로 작심한 듯 하다. 과거 [NME]의 강점은 새로운 스타와 트렌드를 발굴하는데 탁월한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현재의 [NME] 역시 이러한 전통을 이으려 부단한 노력을 하고는 있으나 더 이상 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것 같다. 이들이 놀리는 펜 끝에서 진정으로 가능성 있는 밴드들이 처참히 부숴지고 겉만 번드르한 이들이 극찬을 받는 것을 보면 속상함을 넘어서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영국의 음악 저널들이 전반적으로 죽을 쑤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울상을 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는 음악 잡지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모조(Mojo)]와 [케랑!(Kerrang!)]이다. 이들은 [NME]류의 음악지들이 간과한 틈새 시장을 개척해서 현재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레코드 콜렉터들의 경전 [모조]는 30대 이상의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을 꾸준히 발굴해서 알찬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케랑!]은 영국에서 전통적으로 부진하던 메탈과 스케이트 펑크에 특화해서 10대 청소년들의 꿈과 환상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케랑!]은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NME]의 판매부수를 앞질러 세계 최대의 음악 주간지에 등극하는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다. 이 두 잡지의 선전은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있는 브리티쉬 록이 아직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들 잡지가 구체적으로 표방하는 음악적 방향은 여기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아직도 음악을 사랑하며 그것에 목말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록 음악에 싫증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NME]로 대표되는 정형화되고 천편일률적인 음악에 염증을 느끼는 것이지 결코 음악 자체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보다 참신하고 파격적이면서도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음악들이 많이 소개되고 보다 새로운 관점에서 스타의 발굴과 육성이 이루어진다면 현재의 난국은 삽시간에 타개될 수도 있다. 지금도 능력과 자질을 겸비한 밴드는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지금 요구되는 것은 이들을 정당하게 대우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겸비한 저널이다. 20020221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관련 사이트 [NME] 온라인 사이트 http://www.nme.com/ [Mojo] 온라인 사이트 http://www.mojo4music.com/ [Kerrang!] 온라인 사이트 http://www.kerr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