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호선 버터플라이 – Oh! Silence – Numb, 2002 베테랑 인디 밴드의 ‘짠한’ 정처없는 발길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없는 이 발길”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곡을 아는지? “나그네 설움”이라는 ‘고려성 작사 / 이재호 작곡 / 백년설 노래’라는 기록이 남아있는 한국 대중가요의 고전이다. 술 취한 노인들이 거리에서 부르기에 딱인 곡으로 100년의 생명력을 자랑하는 노래다. 혹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멤버가 그때 태어났더라면 이런 곡을 만들고 연주했을까. 마지막 트랙인 “여행은 어땠니”라는 곡을 듣고 있으면 이런 엉뚱한 생각이 마치 사실인 것 같다. 앞서의 비교가 좀 오버였다면 이 곡 후반부에서 ‘신중현식 코드 진행이 나온다’는 말로 바꾸자. 게다가 “맥주”에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실래요”라고 노래하는 남상아의 목소리는 늦은 밤 카페에서 만취한 마담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15년 전쯤 “거기 누구 없소”라고 절규하던 한영애의 목소리도 떠오른다. 이렇게 ‘한국 대중음악사’를 들이대서 이 음반을 평하는 것은 [weiv] 독자의 취향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뮤지션 본인들은 황당하다고 펄쩍 뛸 것이다. 그렇지만 상호관계라고는 하나도 없을 듯한 음악들의 지역성(locality)이 다름 아닌 한국이라는 곳이라면 시대에 따라 옷은 다르게 입었어도 그 옷 속에 있는 몸체의 느낌은 ‘어떤 여전함’을 갖기 때문이다. 여전한 정서는 모 지역의 방언으로 표현하면 ‘짠한’ 정서다. 멤버들의 출신 지역이 그곳은 아니지만 다른 형용사로는 잘 표현이 안 된다. 그를 위해 동원한 음악 스타일이 무엇이고, 악기들이 무엇이고, 믹싱 방법이 무엇인가는 그를 통해 표현하려는 느낌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다. 예컨대 “식민지”, “빛나는 K”는 뉴욕에 가면 들을 수 있는 노이즈 록이고, “광합성”과 “Oh! Silence”는 영국이나 미국의 소도시에 가면 널려 있는 ‘기타 팝’이고, “엄마 우린 왜 어지러워요”나 “여행은 어땠니”는 앰비언트나 트립합의 텍스처를 도입했다는 등의 해설은 보도자료에나 쓸 내용이지 여기에 써서 지면 낭비할 내용은 아니다. “엄마 우린 왜 어지러워요”나 “오리엔탈 걸” 등에서 ‘어쿠스틱 악기와 전자음향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도 사운드 감식가 동네에서나 중요한 내용일 것이다. “엄마 우린 왜 어지러워요”와 “여행은 어땠니”에서 전통악기 해금을 사용했다고 ‘록과 국악의 퓨전’이라고 오버하는 일은 신문기자들에게나 맡겨놓을 일이다. 밴드가 표현하려는 정서는 “아주 귀여운 내 마음은 니 넓은 땅덩이의 식민지”라는 한 곡의 가사에서 잘 드러난다. 이는 ‘그냥 좋아서 한다’는 말이 이제 더 이상 미덕이 아니라는 점을 선언하는 것 같다. 이런 정서가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그걸 ‘자의식을 가지고 표현했다’는 점은 새삼스럽다. 왜, 하필 이 때? 그런데 혹시 이런 자의식이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닌가. 그 점은 “엄마 우린 왜 어지러워요”나 “여행은 어땠니”를 끝까지 들어내는 각자의 인내심의 정도에 달려있을 것 같다. 이런 말은 이 두 곡이 밴드의 오리지낼리티가 가장 잘 드러난 곡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들의 음악에서는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바로 이거다’라는 긍정적 제시를 발견하기 힘들다는 불평이 있을 듯하다. 이럴 경우 ‘다음 앨범에서 발전된 모습을 기대한다’는 식의 변증법으로 마무리하면 그만이지만 변증법을 신뢰하지 않게 된 나로서는 그렇게 말하기 곤란하다. 오히려 어떤 스타일을 ‘포지티브’하게 선보였던 1집에 비해 ‘네거티브’하게만 자신의 의도를 드러낸 이번 2집 앨범이 더 기억에 많이 남는다. 왜일까? 이유는 알 수 없어도 앨범을 듣는 동안 ‘어떤 생각’에 잠기게 했던 효과는 앨범을 다 들은 뒤에도 오랫동안 남는다. 특히 프로그래밍된 드럼 루프 위에서 D – Bb – A 의 코드 진행으로 시종일관 개기면서 질척한 멜로디를 읊다가 다음 가사로 끝나는 “맥주”가. “헤이 유, 생각보다는 퍽 빨리 떠나셨네요.” 20020215 | 신현준 homey@orgio.net 8/10 수록곡 1. 광합성 2, 식민지 3. 맥주 4. 빛나는 K 5. 초능력 6. 엄마 우린 왜 어지러워요 7. 달콤쌉싸름 8. 43호러 9. 오리엔탈 걸 10. Oh! Silence 11. 여행은 어땠니 12. 맥주(radio edit) 13. 미친 슈만/영등포 시장 관련 글 ‘식민지 록 음악인’의 정처없음의 자의식: 3호선 버터플라이의 성기완과의 인터뷰 – vol.4/no.4 [20020216] 3호선 버터플라이 [Self-titled Obssession] 리뷰 – vol.2/no.24 [20001216] 관련 사이트 3호선 버터플라이 공식 사이트 http://www.3rdlinebutterf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