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215112206-0404chemicalbrothersChemical Brothers – Come With Us – Astralwerks, 2002

 

 

한계효용 체감의 ‘마들렌’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la recherche du temps perdu)]의 한 대목. 주인공은 어느 날 커피와 함께 마들렌이라는 과자를 먹다가 상당한 희열을 느끼고, 이러한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커피와 마들렌을 곁들이는 행위를 반복한다. 하지만 처음 느꼈던 희열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반복의 과정에서 점차 반감되는 것만을 느낀다. 주인공은 한참 후에야 그때 느낀 감정들이 자신의 유년 시절의 추억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마들렌은 일종의 매개물이었음을 깨닫는다.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의 신보를 듣는 행위는 기대감에 충만한 것인 동시에 근심으로 가득한 것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들의 팬일수록 근심의 강도가 증폭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이는 1990년대 중후반 언론의 호들갑을 통해 록 음악의 대체물로 선전되었던 다수의 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들이 공유하고 있는 일종의 부채가 된 것이 아닐까. 특히 그 중심에 있었던, 록 음악과 전자 음악의 결합 혹은 절충을 시도했던 케미컬 브라더스나 프로디지(Prodigy)에게는 더더욱.

리엄 하울렛(Liam Howlett)이 주도한 리믹스 앨범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별다른 활동을 재개하지 않고 있는 프로디지와 달리, 케미컬 브라더스는 비교적 꾸준히 활동을 이어 왔다. 자신들은 오프스프링(Offspring)의 대안(혹은 대체품)의 역할을 할 의사가 없다고 이미 에드 시몬즈(Ed Simons)가 밝힌 바 있듯,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방향성을 록과 댄스뮤직의 결합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9년작 [Surrender]는 양면적인 앨범이었다. 한편으로는 브레이크비트 제왕이라는 칭호에 대한 부담감이었는지 혹은 새 것에 대한 강박 떨치기였는지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디트로이트 테크노와 하우스, 심지어 1980년대 신쓰팝 등의 복고적인 사운드를 끌어들인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Out Of Control”, “Let Forever Be” 같은 곡에서는 전작들보다 좀더 록에 친화적인 접근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Let Forever Be”는 오아시스(Oasis)의 리믹스 버전처럼 들릴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4년만에 귀환한 케미컬 브라더스의 신작의 제목은 ‘Come With Us’이다. 이 앨범은 도발적인 제목과는 반대로 이들의 음악적 방향성에 대한 의문부호를 먼저 던진다. 급격히 몰아치는 정신없는 바이올린의 리프와 드럼비트의 폭발로 시작되는 타이틀 트랙은 그들의 ‘여전한 솜씨’를 보여주지만 어딘가 낯선 느낌을 준다. 이는 트랙들을 넘어가면서 오히려 심화되는 듯하다. 단조로운 시퀀스의 미니멀한 반복 사이에 다양한 사운드 인서트들이 겹겹이 쌓이며 이내 이러한 재료들을 충돌시키며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이들 사운드의 특징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솜씨가 좋아서 미묘한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너무 익숙해진 방식이 된 것일까. 그보다는 순간적인 계기에 의한 폭발을 통한 변화에 의존하는 느낌이다. 에쓰닉(ethnic)한 비트가 두드러진 첫 싱글 “It Began In Afrika” 등 몇 곡을 제외하면 [Loops Of Fury]에서 보여준 탁월한 비트 감각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앨범 제목과는 달리 이들은 댄스 플로어와는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Come With Us]에서 연상되는 많은 부분들은 또한 1990년대에 이들 스스로 혹은 동료들이 보여주었던 것들이다. “Star Guitar”에서는 언더월드(Underworld) 풍의 신서사이저와 비트가 결합하면서 점차 드림팝 스타일의 우주적인 사운드가 펼쳐진다. 하지만 훵키한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 “Denmark”나 싸이키델릭 포크 “The State We’re In”(베쓰 오튼(Beth Orton)이 또다시 참여한), 레프트필드(Leftfield)의 에쓰닉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Hoops”나, 리처드 애쉬크로프트(Richard Ashcroft)에 의해 주도된 모던 록 “The Test” 등에서 이들은 기존의 것을 반복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The Test”에서 이들은 리처드 애쉬크로프트의 백 밴드 역할처럼 느껴질 정도다(이쯤 되면 [Surrender]라는 전작의 타이틀을, 전자 음악의 록 음악에 대한 투항쯤으로 해석하는 비아냥도 나오지 않을까).

물론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은 만드는 사람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도 존재하고, 케미컬 브라더스라는 이름을 제쳐놓고 본다면 이 음반은 잘 만들어진(말 그대로 well-made) 빈틈없는 사운드를 담고 있다. 하지만 빈틈없는 사운드라는 말은 그만큼의 숙련과 동시에 일정한 틀의 구속을 의미할 수 있다. 게스트의 참여방식이나 수록곡들의 분위기, 사운드를 구조화시키는 방식 등은 분명 답습되고 있다. 신질서(New Order)가 이제 낡은 질서가 된 것처럼 이들의 화학 반응도 이제 물리적 변화 이상이 되기는 힘든 것일까. 혹시 이들은 새로운 탈출구를 이 안에 내포시켜 놓고 있는데 글쓴이가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이는 ‘기대감’ 가득한 근심이지만. 20020212 | 김성균 niuuy@unitel.co.kr

6/10

수록곡
1. Come With Us
2. It Began In Afrika
3. Galazy Bounce
4. Star Guitar
5. Hoops
6. My Elastic Eye
7. The State We’re In
8. Denmark
9. Pioneer Skies
10. The Test

관련 글
The Chemical Brothers [Surrender] 리뷰 – vol.1/no.2 [19990901]

관련 사이트
레이블 Astralwerks 내에 있는 The Chemical Brothers 공식 사이트
http://www.astralwerks.com/chemic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