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215111144-0404buffmedwaysBuff Medways – This Is This – Vinyl Japan, 2001

 

 

아마추어리즘 전사가 보내는 지미 헨드릭스 헌사

음악 경력 25년의 베테랑임에도 불구하고 빌리 차일디쉬(Billy Childish)라는 이름은 일반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음악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미술가로, 시인으로, 소설가로,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냈지만 그는 어느 한 분야에서도 명성을 얻지 못했다. 그의 이름을 안다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그가 한때 영국의 저명한 설치 미술가 트레이시 에민(Tracy Emin)의 애인이었다는 사실로 그를 기억할 뿐이다. 그러나 그의 예술 세계를 아는 극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위대한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그의 숭배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사람들 중에는 커트 코베인(Kurt Cobain), 화이트 스트라이프스(The White Stripes), 벡(Beck), 머드허니(Mudhoney) 그리고 블러(Blur)의 그레이엄 콕슨(Graham Coxon) 등 우리가 알만한 이름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이들 모두는 빌리 차일디쉬에게서 커다란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한 바 있고 이들 중 일부는 그의 작품을 자신들의 음반에 수록하기도 했다.

빌리 차일디쉬는 오늘날 보기 드문 르네상스형 인간이다. 그는 지금까지 수많은 그룹 활동과 솔로 활동을 거치면서 80개가 넘는 앨범을 만들었고 미술가로서 2,000점 이상의 그림을 발표했으며 시집과 소설을 포함해 30권 이상의 책을 출간했다. 그의 이처럼 경이로운 생산력은 그가 선천적으로 중증 학습장애를 앓아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일이다. 작품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 거의 없으면서도 그는 쥐꼬리만한 실업수당에만 의존하여 지난 수십 년간 자신의 예술혼을 불살라왔다. 그가 이처럼 예술활동에 몸을 던지면서도 어느 한 분야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것은 그의 재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의 맹렬한 비타협성과 전투적 아마추어리즘 때문이다. 그는 제도화된 예술의 명령에 따르기를 단호히 거부해왔으며 세간의 유행과 조류에도 철저히 담을 쌓고 자기만의 작업을 수행해 왔다.

빌리 차일디쉬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무엇보다도 자기 표현과 의사소통의 활동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현재 미술계를 주름잡고 있는 설치 미술을 제도에 기생하는 예술의 전형으로 간주하여 반대하고 대중적 미술로서의 회화를 적극 옹호한다. 즉 설치 미술은 순전히 그것이 미술관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술로 여겨지는 것이지 일단 미술관 밖으로 나오면 쓰레기 더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면 회화는 누구에게나 접근이 용이할 뿐 아니라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예술적 의미를 유지할 수 있다. 빌리 차일디쉬의 이러한 예술관은 음악에 대한 그의 관점과도 일맥 상통한다. 그는 음악에 있어서 내적 에너지의 표현과 그것의 소통 가능성을 무엇보다도 중시한다. 음악을 철저히 표현과 대화의 수단으로 보는 그에게 그것을 다듬고 꾸미고 하는 것은 전혀 불필요한 일이다. 음악을 다듬고 꾸미는 것은 상품성을 높이거나 제도화된 예술적 척도에 부합하기 위한 것인데, 이런 의도에서 만들어진 음악은 그의 관점에서는 이미 죽은 음악에 불과하다.

빌리 차일디쉬가 음악에 대해 이러한 태도를 형성하게 된 것은 그가 틴에이저 시절인 1977년 팝 리베츠(The Pop Rivets)라는 펑크 밴드를 이끌고 음악 활동을 시작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 이후 여러 차례 세대가 바뀌고 유행이 바뀌었지만 그의 시야는 줄곧 1977년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펑크 록의 핵심으로 생각한 것은 사회 비판이나 저항이 아니라 ‘DIY(Do It Yourself)’ 윤리였다. 음악이 뮤지션이라고 불리는 특권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든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펑크의 이념은 그가 볼 때 가장 올바른 예술적 태도였고 그의 예술관을 정립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었다. 이 시기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빌리 차일디쉬는 마치 화산이 용암을 뿜어내듯 맹렬한 속도로 작품을 생산해왔다. 그는 하루에 네 장의 앨범을 발표한 적도 있고 한 해에 열 장 이상의 앨범을 내놓은 적도 있다. 그는 이렇게 많은 앨범들을 스스로 농담 삼아 말하는 ‘반 트랙’ 장비(일반적으로 4트랙 장비를 이용해 만든 음악을 로파이라고 하는데 그는 이보다도 더 열악한 장비로 작업했다)를 사용해 하루가 멀다 하고 만들어냈다. 통상적인 관점에서는 날림을 우려할 만도 하겠지만 작품의 완성도 여부는 이미 그의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빌리 차일디쉬의 관점에서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보다는 작품을 만드는 것 자체가 더욱 중요한 일이다. 즉 그는 평생 하나의 작품을 만들더라도 영원한 명작을 만들겠다는 대가의 자세보다는 끊임없이 작품에 임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여하는 ‘활동으로서의 예술’에 더욱 큰 가치를 부여한다. 그에게 예술은 평생에 걸쳐 도달해야 하는 삶의 목표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삶의 부산물이다. 따라서 그에게 작품 하나하나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의미 있는 것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 자체 그리고 그 과정의 총합으로서의 예술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운이 좋으면 비평적 성공을 거둘 수도 있고 상업적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다. 빌리 차일디쉬는 굳이 그런 행운까지 마다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를 위해 자신의 예술을 타협하거나 그런 목적에 예술을 종속시킬 생각은 없다.

젊은 시절 빌리 차일디쉬의 영웅은 섹스 피스톨스(The Sex Pistols)였다. 그는 동시대의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섹스 피스톨스에게서 받은 충격으로 밴드를 결성했고 그들을 흉내내면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섹스 피스톨스의 파괴적 냉소주의는 그가 받아들이기에는 지나치게 해악이 큰 것이었다. 섹스 피스톨스가 공룡 록 밴드들을 공격했을 때, 그것은 명백히 그들의 위선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냉소주의는 그 비판의 합리적 핵심을 파괴하고 결국 ‘음악의 목적은 돈’이라는 공식의 일반화를 초래했다. 오늘날의 팝 차트를 주름잡는 공장제조형 팝 밴드들은 이런 의미에서 보면 섹스 피스톨스의 직접적 후예라고도 할 수 있다. 빌리 차일디쉬는 섹스 피스톨스의 이러한 냉소주의에 회의를 느끼고 이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펑크 록을 벗어난 그가 새롭게 향한 곳은 로큰롤과 블루스의 세계였다. 펑크의 본질이 로큰롤이고 로큰롤의 근본이 블루스인 것을 감안하면 그의 음악세계는 지난 25년간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원초적이고 단순한 스타일의 음악을 통해 허공에 떠 있는 공허한 음악이 아닌 삶의 숨결이 배어있고 땅에 밀착된 음악을 하려 노력해 왔다.

돈과 명성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활동하던 빌리 차일디쉬가 최근 음악 팬들 사이에서 갑작스러운 화제를 모으게 된 데는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스트록스(The Strokes)와 함께 2001년 최고의 밴드로 부상한 이들은 런던 공연에서 그 동안 존경해온 빌리 차일디쉬에게 오프닝 무대에 서 줄 것을 부탁했다. 이들 덕에 모처럼 큰 무대에 서게 된 그는 보다 많은 청중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알릴 수 있었다. 그가 최근에 결성한 그룹 버프 메드웨이즈(The Buff Medways)와 함께 무대에 오른 그는 요즘 들어 부쩍 각광을 받고 있는 거라지 펑크 스타일의 음악을 연주했다. 그에게 쏟아진 갈채는 그의 음악이 25년만에 시대적 공감을 획득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그는 최근의 거라지 펑크 붐과 관련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이런 음악을 하는 걸 두고 천재적이라고들 하더군요. 내가 이런 음악을 할 때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소리 밖에 못 들었습니다.”

버프 메드웨이즈의 첫 작품으로 발표한 앨범 [This Is This]는 빌리 차일디쉬가 최근 들어 재발견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에게 바치는 헌사로 기획되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전곡에서 그는 지미 헨드릭스의 리프를 기반으로 한 일종의 ‘헨드릭스 리프에 의한 변주곡’을 들려주고 있다. 첫 곡인 “No Mercy”는 “Can You See Me”의 리프 위에서 만들어졌고, “Don’t Hold Back”은 “Fire”, “Teach Me What You Know”는 “Manic Depression” 그리고 “Till The End Of Time”은 “Gypsy Eyes”의 리프를 활용하고 있다. 나머지 곡들의 원전을 추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이 앨범을 사서 들을 사람들의 재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여기서는 일단 이 정도에서 그치기로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빌리 차일디쉬에게 지미 헨드릭스의 원곡을 능가할 야심은 눈꼽만큼도 없다. 여기서 그가 하려는 것은 단지 자신의 영웅 지미 헨드릭스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 위에서 자기 자신의 음악을 표현해내는 일이다. 익히 예상한대로 악곡 형태나 연주의 세련미는 헨드릭스의 탁월함에 비할 바 못되고 심지어 사운드조차 1960년대에 녹음된 헨드릭스의 곡들보다 그리 낫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빌리 차일디쉬에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다.

빌리 차일디쉬가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꿈틀거리는 에너지와 열정이다. 그는 이 앨범에서도 바로 그 에너지와 열정을 되살리는데 주력하고 있고 이 점에서 상당 부분 성공하고 있다. 에너지와 열정이 살아 있는 한 이 앨범은 그 소기의 목적을 성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통상적인 기준에서 보면 이 앨범의 클리셰로 가득한 회고주의와 흔해빠진 사랑 타령은 도저히 좋게 평가할래야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앨범에 대해서 이러한 통상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마치 어머니가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만든 음식에 식당에서 파는 음식을 평가하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과 같다. 어머니의 음식은 정성과 영양가 면에서는 비할 바 없겠지만 식당 음식에 비해 보기도 좋지 않고 맛도 덜하다. 그것은 어머니의 음식과 식당 음식이 각각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위에 보이는 별점은 단지 요식행위에 불과할 뿐 이 앨범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될 수는 없다. 별 세 개의 의미를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이 아닌 ‘좋다 나쁘다를 평가할 수 없는’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20020212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6/10

수록곡
1. No Mercy
2. Don’t Hold Back
3. Teach Me What You Know
4. Till The End Of Time
5. This Won’t Change
6. Into Your Dreams
7. Till It Is Over
8. Don’t Give Up On Love
9. Cross Lines
10. This Is This

관련 사이트
Billy Childish 공식 사이트
http://www.billychildish.com
Billy Childish 비공식 사이트
http://www.theebillychildi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