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215100330-0404rs04beggarsbanquetRolling Stones – Beggars Banquet – abkco, 1968

 

 

돌아온 탕자의 감동적인 자기 발견

프랑수아 트뤼포(Francois Truffaut)의 영화 [400번의 구타(Les 400 Coups)](1959)를 보면 어머니가 어린 아들의 눈을 가려 TV에 나오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저건 애들이 볼 게 못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초기의 로큰롤은 이처럼 기존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불순한 음악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엘비스가 입대한 1958년을 전후해서 이 ‘위험한 음악’으로서의 로큰롤은 완전히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는 종교에 귀의해 로큰롤을 떠났고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와 척 베리(Chuck Berry)는 사생활의 문제로 음악계에서 퇴출 당해야만 했다. 1959년 버디 홀리(Buddy Holly)의 비행기 추락사는 로큰롤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사건이었고 이 사건 이후 초기 로큰롤의 기억은 미국인들의 뇌리에서 까맣게 잊혀져만 갔다.

미국 음악계는 팻 분(Pat Boone)이나 폴 앵카(Paul Anka) 등의 팝 가수와 프랭키 아발론(Frankie Avalon)이나 디온(Dion) 같은 틴 아이돌의 독무대가 되었고 군 복무를 마친 엘비스도 과거의 전설과는 무관한 평범한 발라드 가수가 되어 돌아왔다. 물론 이 시기에도 로큰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원초적 생명력이 거세된 온순하고 안전한 음악으로서만 그 생명을 유지해 나갔다. 1960년대가 되면서 로큰롤은 신세대 로큰롤러들의 대거 가세로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 젊은 로큰롤러들에게서도 로큰롤 선구자들의 터프 가이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와 잰 앤 딘(Jan & Dean)은 선배들의 불온함과는 거리가 먼 선량하고 예의 바른 젊은이들이었고 영국에서 날아온 비틀스(The Beatles)도 단정한 모범생의 행색으로 예쁘고 순박한 팝송을 노래했다.

이런 점에서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는 당시 활동하던 수많은 로큰롤 밴드 중 단연 ‘진품’이었다. 이들은 로큰롤의 신명과 블루스의 거친 에너지를 알지 못하는 미국의 틴에이저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가르쳤고 수많은 미국 소년들로 하여금 앞 다퉈 밴드를 결성하도록 만들었다. 디트로이트의 MC5와 스투지스(The Stooges) 그리고 LA의 시즈(The Seeds) 등을 비롯한 수많은 거라지 펑크 밴드들은 롤링 스톤즈의 거칠고 가공되지 않은 사운드와 거들먹거리는 불량 소년의 태도를 흉내내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했고, 이들 중 몇몇은 이후 미국 록의 토대를 놓은 전설적인 그룹으로까지 성장해 나갔다. 오늘날 화이트 스트라이프스(The White Stripes)의 성공으로 새롭게 각광 받기 시작한 디트로이트 씬의 거칠고 블루지한 사운드는 이 점에서 롤링 스톤즈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활동한 모든 밴드를 통틀어서 롤링 스톤즈만큼 로큰롤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한 그룹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점에서 이들이 스스로를 “세계 최고의 로큰롤 밴드”로 천명한 것은 전혀 근거 없는 허풍이 아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롤링 스톤즈의 로큰롤/블루스 노선은 1960년대 내내 일관성 있게 추구되지는 못했다. 이들은 비틀스 풍의 팝에서 포크 발라드 그리고 싸이키델릭에 이르는 다양한 음악을 시도했고 그 결과는 언제나 만족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의미에서 바로 이와 같은 비일관성이 이들을 비틀스에 이은 2인자의 자리에 고착되게 만든 주된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이 로큰롤과 블루스의 길을 초지일관하지 못한 것은 이들의 음악적 도전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매니저 앤드류 룩 올드햄(Andrew Loog Oldham)의 야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언제나 비틀스의 인기를 의식했고 롤링 스톤즈를 다그쳐 보다 시류에 부합하는 음악을 하도록 강요했다. 그와 밴드 사이의 이러한 긴장은 [Aftermath]나 [Between The Buttons] 같은 앨범에도 잘 기록되어 있지만 1967년작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에서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어 있다.

비록 부유한 중산층 출신이었지만 롤링 스톤즈는 언제나 ‘노동계급 중의 노동계급’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맞추었다. 따라서 이들은 당시 떠들썩하던 부르주아 히피들의 호들갑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성공에 자극 받은 앤드류 룩 올드햄에게 이것은 충분히 활용할 가치가 있는 소재로 여겨졌고 당시 스톤즈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던 브라이언 존스(Brian Jones)에게도 이것은 자신의 폭넓은 음악세계를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되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는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 앨범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롤링 스톤즈가 자신의 음악적 존재기반을 깡그리 부정하고 당대의 조류에 투항했다는 점이었다. 누구도 이들에게서 이런 음악을 기대하지 않았고 이들의 음악적 변신이 경쟁자들을 압도할 만큼 탁월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이 앨범은 이들의 가장 뼈아픈 시행착오로 남게 되었고 이들은 이를 마지막으로 앤드류 룩 올드햄과의 관계를 청산해 버렸다.

이듬해에 발표된 이 [Beggars Banquet]은 심기일전한 롤링 스톤즈의 새로운 음악적 여정이 시작된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많은 논평은 이 앨범을 롤링 스톤즈가 자신들의 초기 음악으로 ‘되돌아간’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 앨범과 이들의 과거 음악 사이에는 단순한 ‘복귀’라고 볼 수만은 없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들의 초창기 활동이 시카고 블루스의 고전들을 커버하는데 치중했던 반면 이 앨범에서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원형인 델타 블루스의 세계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블루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던 1960년대 초와 달리 이 앨범이 등장한 1968년에 블루스는 이미 폭발적인 유행 사조로 성장해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블루스는 당대의 음악적 조류에 휩싸여 점점 더 크고 화려한 것으로만 변모되어 갔다. 롤링 스톤즈는 이러한 시대적 조류를 거슬러 조야하고 원초적인 델타 블루스에 도달함으로써 단지 스타일로서만 향유되고 있던 당시의 블루스를 넘어 그것의 감성적이고 표현적인 측면에 보다 깊이 있게 접근하려 했다.

롤링 스톤즈의 이러한 접근은 필연적으로 모든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음악 형태를 끌어안는 것으로 이어졌다. 블루스의 원초성에 대한 탐구는 블루스에 이웃한 컨트리와 가스펠 그리고 그 근원이 되는 아프리카 음악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런 방향 전환은 키쓰 리처즈(Keith Richards)가 브라이언 존스에 이어 새로운 음악감독으로 취임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인도 음악과 중세 음악 그리고 모던 재즈 등의 다양한 요소를 끌어들여 롤링 스톤즈 음악을 수평적으로 확대한 브라이언 존스와 달리 골수 블루스 맨 키쓰 리처즈는 블루스라는 단일한 음악을 그 뿌리까지 파고듦으로써 이들 음악의 깊이를 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비록 “Street Fighting Man”에서 브라이언 존스의 시타가 사용되고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임 음악감독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삽입된 것일 뿐 음악적 필요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과거 “Paint It Black”이나 “Mother’s Little Helper” 같은 곡에서 시타가 전면에 나서 곡의 분위기를 좌우했던 것과 달리 이 곡에서 시타는 철저히 배경에 머무를 뿐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러한 노선 변경을 통해 롤링 스톤즈는 1960년대 밴드 중 실질적으로 1960년대를 마감하고 1970년대를 개막한 최초의 밴드가 될 수 있었다. 같은 해에 발표된 비틀스의 [The Beatles(White Album)]가 여전히 1960년대 히피즘에 사로잡혀 있었던 반면 롤링 스톤즈는 이 [Beggars Banquet] 앨범에서 1960년대를 완전히 벗어나 1970년대 하드 록의 단초를 마련하였다. 히피즘의 나이브한 성선설에 등을 돌리고 악마주의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한 “Sympathy For The Devil”은 1960년대의 정신적 흐름에 대한 대담한 거부였고, 블랙 사바쓰(Black Sabbath)에서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에 이르는 록 음악의 중요한 한 흐름을 촉발시킨 문제작이었다. 이 곡에서 나타나는 소울과 가스펠이 융화된 격정적인 하드 록은 이후 [Let It Bleed] 앨범의 “Gimme Shelter”로 이어지고 프라이멀 스크림(Primal Scream)의 “Movin’ On Up”에서 재활용되면서 이들의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천하제일이라고 평가되는 리듬 섹션의 관능적인 아프리칸 비트와 믹 재거(Mick Jagger)의 열정적인 보컬이 어우러지는 이 곡은 단연 이 앨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Sympathy For The Devil”에서도 잘 나타나지만 앨범 [Beggars Banquet]에 수록된 록 트랙들의 가장 큰 특징은 긴장과 이완의 다이내믹함이 매우 탁월하게 조절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곡들은 완만한 도입부에서 열광적인 종결부로 향하는 진행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곡 전체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지기도 하고(“Sympathy For The Devil”과 “Jig-Saw Puzzle”) 곡 중간에 급격하게 나타나기도 하며(“Salt Of The Earth”) 굴곡을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기도 한다(“Stray Cat Blues”). 소리의 강약과 완급 그리고 감정의 완벽한 통제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 곡들의 전개는 더할 나위 없이 짜릿하고 흥분되는 음악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 곡들의 압도적인 매력 때문인지 이런 구성상의 특징에서 예외에 해당하는 “Street Fighting Man”은 이 앨범에서 비교적 실망스러운 곡으로 들린다. 이 곡은 기본적으로 “Jumpin’ Jack Flash”의 성공을 되풀이하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상업적 안전판 격인 작품이다. 비록 형태상으로 “Jumpin’ Jack Flash”의 특징들이 두루 재활용되고는 있지만 그것의 압도적인 스윙감에는 현저히 미치지 못하고 정서적으로도 좀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비록 히트곡들이 대개 록 넘버들에 집중되어 있기는 하지만, [Beggars Banquet]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델타 블루스와 홍키 통크 작품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어쿠스틱 세팅의 블루스 넘버 “No Expectations”와 “Prodigal Son” 그리고 진한 컨트리 곡들인 “Dear Doctor”와 “Factory Girl” 등은 로큰롤의 시원에 접근하려 한 이 앨범의 의도를 명백히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비록 [Let It Bleed]에 실린 “Love In Vain”이나 [Sticky Fingers]의 “You Gotta Move” 같은 곡들에 비해 믹 재거의 보컬이 아직 심원한 깊이를 획득하지 못한 감은 있지만 이 앨범의 블루스 넘버들은 델타 블루스의 투박한 원초성을 환기시키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컨트리에 대한 이들의 접근 역시 블루스에 대한 접근과 동일 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Parachute Woman”을 예외로 한다면) 이들이 당시 유행하던 시카고 블루스를 굳이 회피하고 델타 블루스를 채택한 것처럼 이들은 당시 각광받던 베이커스필드 컨트리에 등을 돌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홍키 통크를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음악에 끌어들인다. 거칠고 진솔한 홍키 통크 특유의 감수성에 믹 재거의 내뱉는 듯한 보컬이 더해짐으로써 이들은 컨트리 음악에 흔히 결부되는 진부한 감상주의를 제거하고 그것의 정서적 핵심만을 계승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돌이켜 볼 때, 이들이 이 앨범 [Beggars Banquet]에서 윌킨스 목사(Rev. Wilkins)의 작품인 “Prodigal Son”을 노래한 것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들은 여기서 마치 ‘돌아온 탕자’처럼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의 탈선(?)을 뉘우치고 자신들의 음악적 뿌리로 돌아가 그것을 치열하게 성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성찰은 단발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로 이어졌으며 잇단 걸작들을 생산하는 결실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의 시발이 되는 이 앨범은 듣기에 따라 이들이 자신감과 원숙미로 빚어낸 [Sticky Fingers]나 [Exile On Main Street] 같은 명반들의 위력에 다소 못 미치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가지 명확한 것은 그 어떤 앨범에서보다 이 앨범에서 자신들의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후속 작품들에 비해 다소의 미숙함도 있고 약간의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신들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이들의 열정은 이러한 부분적 결함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는다. 거장의 태만한 연주보다는 좀 실력이 모자라는 연주자의 목숨을 건 연주에서 음악의 감동은 더욱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그런데 그 목숨을 건 연주자가 최고의 기량을 지닌 거장이라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20020212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8/10

수록곡
1. Sympathy For The Devil
2. No Expectations
3. Dear Doctor
4. Parachute Woman
5. Jig-Saw Puzzle
6. Street Fighting Man
7. Prodigal Son
8. Stray Cat Blues
9. Factory Girl
10. Salt Of The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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