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215093808-0404rs08exileonmainstRolling Stones – Exile On Main Street – Virgin, 1972

 

 

영국 밴드의 손으로 만든 아메리칸 록의 금자탑

다소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영국 출신의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만큼 아메리칸 록의 전통에 충실한 밴드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음악 중에서도 가장 미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아메리칸 하드 록/루츠 록은 이들의 존재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었고, 에어로스미쓰(Aerosmith)와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에서 펄 잼(Pearl Jam)과 블랙 크로우스(The Black Crowes)에 이르는 이 방면의 거장들 중 롤링 스톤즈의 영향을 받지 않은 밴드는 거의 없다.

롤링 스톤즈가 이처럼 아메리칸 록에 정통할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시절 전설적인 블루스 맨 알렉시스 코너(Alexis Korner)의 문하에서 블루스 실력을 갈고 닦았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에서 블루스는 오직 시카고 일대에서만 성행하던 지역 음악이었을 뿐 일반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1차 브리티쉬 인베이전을 주도한 비틀스(The Beatles)와 그를 위시한 머지사이드(Merseyside) 밴드들에게도 블루스는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생소한 음악에 불과했다. 반면 롤링 스톤즈를 비롯한 런던의 젊은이들은 밤마다 알렉시스 코너와 시릴 데이비스(Cyril Davies)의 세션에 모여들면서 하루가 다르게 블루스 미치광이들로 변해갔다. 롤링 스톤즈는 알렉시스 코너의 문하에서 배출된 수많은 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스타덤에 오르고 가장 크게 성공한 그룹이었다.

롤링 스톤즈를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시킨 출세작 “(I Can’t Get No) Satisfaction”도 애초에는 전형적인 12마디 블루스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들은 여기에 비트를 강화하고 리프를 삽입해서 이 곡을 전설적인 로큰롤의 명곡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비록 “Let’s Spend The Night Together”나 “Ruby Tuesday” 같은 이들의 대표적 히트곡들이 블루스와 다소 거리를 둔 팝/록 성향의 작품들이었지만 이들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에도 결코 블루스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스톤즈는 싱글 커트용 작품과 앨범 트랙으로 쓰일 작품을 구분하여 싱글 커트용 팝송 몇 개를 제외하고는 앨범 트랙의 대부분을 블루스 곡에 할애하는 전략을 취했다. 그러나 이런 전략적 접근은 1967년작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의 실망을 거치면서 전면 무효화되기에 이르렀다. 블루스에 대한 이들의 신념은 보다 확고하고 전면적인 것이 되었고, 그 결과 1968년의 [Beggars Banquet] 앨범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 앨범에서 시작된 이들의 ‘음악적 뿌리 찾기’는 [Let It Bleed]와 [Sticky Fingers]를 거치면서 한껏 무르익었고 이 앨범 [Exile On Main Street]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정점에 도달하게 되었다.

오늘날 [Exile On Main Street]은 여러 전문가들에게서 록 역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반으로 꼽히며 스톤즈 자신들에게도 가장 자랑스런 앨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이 앨범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일반적 평가는 그리 우호적이지 못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아마도 전작 [Sticky Fingers]가 세워놓은 기대 수준에 이 앨범이 다소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Sticky Fingers]는 스톤즈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외향적인 앨범 중 하나였다. 수록곡들은 듣는 즉시 청취자를 사로잡는 즉각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앨범 전체는 변화무쌍하고 흥분에 찬 롤러 코스터의 질주를 연상케 했다. 이에 비해 [Exile On Main Street]은 지극히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작품이었다. 요점이 명확히 강조되지 않은 사운드는 그저 밋밋하고 완만할 뿐이었고 더블 앨범이라는 딜럭스 포장이 무색할 정도로 수록곡들 간의 차이는 거의 감지할 수 없었다. 흔히 비발디(Vivaldi)가 똑같은 협주곡을 500번 작곡했다고 하는데, 이 앨범의 첫 인상도 정확히 이런 것이었다. 이 앨범은 마치 같은 곡을 18번이나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ile On Main Street]에 대한 이런 낮은 평가는 일차적으로 사람들의 그릇된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의 기대와 달리 롤링 스톤즈는 여기서 ‘Sticky Fingers II’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그 대신 이들이 만들려고 했던 것은 가장 신실한 음악적 고백록이었다. 여기에는 이들 특유의 거들먹거리는 제스처도 없고 [Sticky Fingers]의 번쩍이는 광채도 없다. 이 앨범에서 이들은 상품으로서의 음악의 소비를 현혹하는 어떠한 장치나 술수도 없이 철저히 음악적 알곡만을 담으려 한 것이다. 이런 접근으로 인해서 이 앨범은 이들의 앨범 중 가장 목소리를 낮춘 내성적인 작품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얌전하고 조용한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들은 여기서 경건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겸허하고 진솔한 자세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 이런 자세는 이 앨범의 음악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여기서 스톤즈는 때때로 이들의 음악에서 느껴지던 느끼함을 완전히 배제하고 지극히 수수하고 담백한 음악을 들려준다. 치열한 숙고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의 음악은 강요되거나 계산된 흔적이 없는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특성이 가장 먼저 감지되는 곳은 바로 사운드다. 프랑스에서의 조세 망명 생활 중 키쓰 리처즈(Keith Richards)의 자택 지하실에 틀어박혀 녹음된 이 앨범의 사운드는 당시 이 앨범에 대한 주된 불만거리 중 하나로 여겨지곤 했다. 그러나 스튜디오에서의 기계 조작을 극소화한 탁하고 엉겨 붙은 사운드는 오히려 이들이 여기서 추구한 정서적 깊이에 초점을 맞추는데 더욱 효과적이었다. 미끈하게 잘 빠진 사운드가 청취자의 주의를 음악의 표면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반면, 이 앨범의 다소 열악하지만 솔직한 사운드는 청취자를 음악의 심장부로 곧바로 인도한다. 이 앨범의 사운드가 이들의 음악적 자신감이 표명된 하나의 사례로 볼 수도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음악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지 않은 한 장식적 겉치레가 배제된 음악의 알몸을 그대로 내보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휘황찬란한 최첨단 녹음 기술과 프로덕션 장비가 널려있는 오늘날에도 조악한 음질의 부틀렉이나 78회전 SP에 열광하는 팬들이 많은 것을 보면 좋은 음악은 반드시 좋은 사운드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만은 아니다.

비록 “Tumbling Dice”가 차트 10위권 내에 진입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이 앨범의 싱글 차트 성적은 그리 변변치 못하다. 어떻게 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이 앨범에는 특별히 인상적인 록 트랙도 없고 가슴 저미는 발라드도 없다. 아니 있을만한 것은 다 있지만 그 존재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가정용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한 듯한 엉성한 사운드에 지극히 단순한 테마로 이루어진 가스펠 트랙 “I Just Want To See His Face”가 좀 다른 의미에서 튀는 곡으로 여겨질 뿐 특별히 귀를 잡아끄는 강력한 트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의 앨범으로서 [Exile On Main Street]은 다른 어떤 앨범에도 비교될 수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작품이다. 이 앨범은 여느 록 앨범의 값싼 흥분이나 싸구려 감상이 아닌 뼛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감흥과 원초적 신명을 경험하게 한다. 롤링 스톤즈 예술의 극치를 들려주는 이 앨범 앞에서 블루스니 컨트리니 R&B니 하는 스타일 분류는 한낱 의미 없는 수사로 전락해 버린다.

[Exile On Main Street]은 [Beggars Banquet]에서 시작된 음악적 여정이 그 논리적 귀결에 도달한 작품이다. [Beggars Banquet]은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의 커다란 음악적 진일보였던 전작 [Sticky Fingers]에서도 이들의 음악은 블루스 따로, 컨트리 따로, 록 따로 노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이 앨범에 이르러 이 모든 스타일은 ‘롤링 스톤즈 음악’이라는 큰 테두리 내에서 하나로 융화되어 엄밀한 정서적 일관성을 지니게 되었다. 여기서 이들은 질박한 미국 남부 하층민들의 정서를 완벽하게 자기화하여 표현하면서도 자칫 거칠게만 들릴 수도 있는 이것의 투박함을 고도의 섬세함으로 극복해 내고 있다. 이 앨범에서 일궈진 이들의 음악세계는 노회한 롤링 스톤즈가 아직도 우려먹는 거대한 음악적 자산이 되었고 이들이 레게와 디스코로 외도를 거듭할 때도 이들의 음악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롤링 스톤즈가 과연 얼마나 좋은 밴드인지에 대해 의문을 지니고 있거나, 머리보다는 뚝심을 앞세운 아메리칸 록의 진가에 회의를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이 앨범을 경청해야 할 것이다. 20020212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10/10

* 여담 : 이 앨범에 담긴 사진들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최고의 사진 작가로 명망 높은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의 작품이다. 전작 [Sticky Fingers]의 표지를 맡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팝 아트 접근법과는 달리, 로버트 프랭크의 흑백 사진들은 [Exile On Main Street] 음반이 담고 있는 거칠고 투박한 ‘리얼리즘’ 스타일의 세계관을 극대화시켜주고 있다. 그런데 그는 롤링 스톤즈의 적나라한 사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 [XX 블루스]로 스톤즈와 법정 공방까지 가야 했다고. (오공훈 씀)

수록곡
1. Rocks Off
2. Rip This Joint
3. Shake Your Hips
4. Casino Boogie
5. Tumbling Dice
6. Sweet Virginia
7. Torn And Frayed
8. Sweet Black Angel
9. Loving Cup
10. Happy
11. Turd On The Run
12. Ventilator Blues
13. I Just Want To See His Face
14. Let It Loose
15. All Down The Line
16. Stop Breaking Down
17. Shine A Light
18. Soul Surviv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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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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