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ye Wong – Wong Faye – EMI, 2001 형형색색의 물감으로 채워진 페이 웡(王菲)식 팝의 완성판 1997년 셀프 타이틀 앨범이 발표된 지 4년만에, 앨범으로도 정확히 4장의 (정규)앨범만에 다시금 셀프 타이틀 앨범으로 페이 웡(Faye Wong; 王菲; 페이 웡)이 돌아왔다. 일반적으로 셀프 타이틀 앨범들은 데뷔작이거나 뮤지션의 새로운 전환점을 나타내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 페이 웡의 지난 셀프타이틀 앨범(1997)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소속사를 EMI로 이적하면서 무언가 새롭게 다지자는 의지도 그러했겠지만 이후 EMI에서 발표된 앨범들에서 보여졌던 변화들을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말이다. 페이 웡의 지금까지 음악적인 스타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데뷔 초기에 지배적이었던 칸토 팝(Canto pop)에 R&B적인 느낌을 가미한 스타일, 그리고 전 남편 또우 웨이(竇唯, Dou Wei)와 페이 웡 자신이 좋아한다는 콕토 트윈스(Cocteau Twins),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 등의 영향을 받은 ‘모던’한 록 스타일, EMI 이적 후부터 시도됐던 일렉트로닉한 스타일과 좀 더 세련되어진 ‘페이 웡식 글로벌 스탠다드 팝’으로 대변되는 지금의 스타일, 이렇게 크게 나눠지는데 특히 EMI 이적 후 발표되었던 앨범들에서는 본인의 참여도나 작곡면에도 뚜렷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EMI 이적 후 페이 웡은 그전까지 꽤나 집착했던 크랜베리스 풍의 록 스타일의 곡들을 확실히 갈무리한 [王菲] 앨범으로부터 일렉트로닉한 어법을 차용한 자작곡을 담아내며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던 [唱遊], 이혼이라는 신변의 변화를 겪은 뒤 내놓았던 ‘페이 웡식 글로벌 스탠다드 팝’의 완결판(?)인 [只愛陌生人], 무려 다섯 곡을 작곡하며 절반이지만 성공적인 변신을 보여주었던 [寓言(Fable)]까지 그녀가 해왔던 그리고 해보고 싶었던 음악을 다듬기도 하고 새롭게 시도해보기도 한 과정을 일관되진 않지만 최소한 절반의 성공으로 이뤄내 왔다. 일관되지 않았다는 것을 ‘좋게’ 말하자면 문어발식 경영(?)에서 오는 하나의 합일점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법도 하다. 물론 아직 합일점을 찾는데는 성공하진 못했지만. 여하튼 이번 앨범을 셀프타이틀로 내건 것을 보아 뭔가 새로운 전환점이나 변화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과연 앨범을 열어보니 확연한 변화가 있었다. 어찌 보면 가장 큰 변화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이제까지 호흡을 맞춰오던 앨빈 롱(Alvin Leong; 梁榮峻)과 장야동(張亞東)을 비롯하여 여러 작곡가들(C. Y. Kong, Adrian Chan, Alex San)과의 결별이다. 오랜 파트너이자 조력자였던 장야동이 이태리로 유학을 떠나면서 다른 작곡가들과도 결별을 하게되었다고 한다. 페이 웡의 많은 곡을 작사해준 린시(林夕)만이 눈에 익은 파트너이다. 대신 우바이(伍佰)를 비롯한 황야오밍(黃耀明) 등 또 다른 중국어권의 실력 있는 작곡가들이 자리를 메꿔주고 있다. 자세한 사연과 설명은 앨범 속지에 있는 전주현(중문음악 칼럼니스트)의 글을 참고하는 게 좋을 듯하다(속지에는 페이 웡과 앨범에 대한 자세한 글과 한글 번역 가사가 담겨 있다). 이렇듯 음악 파트너들의 대거 교체는(어찌 보면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결과적으로 보면 성공적인 듯하다. [王菲] 앨범 이후 계속되어온 그녀의 성과, 즉 기존 스타일의 세련과 새로운 시도들이 좀더 확고히 다져지며 업그레이드되어있다. 첫곡인 “光之翼(빛의 날개)”는 스트레이트한 록 스타일의 곡인데 기존의 페이 웡이 해왔던 록 스타일의 곡들보다 단순하지만 훨씬 힘찬 느낌을 준다. 아마도 중국 본토 록 밴드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기타 리프나 시원스럽게 내지르는 페이 웡의 창법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가 상큼한 “等等(등등)”, 예쁜 현악에 홍조를 띤 듯한 페이 웡의 목소리가 더욱 사랑스러운 “打錯了(잘못 걸었어요)” 그리고 “有時愛情徒有虛名(때로 사랑은 헛된 말)”, “流年(세월)” 등과 같은 발라드까지 전반부에서는 다채로운 악기와 기법을 이용하여 이제껏 그녀가 해왔던 편안한 스타일의 곡들을 세련되게 뽑아내고 있다. 여섯 번째 트랙 “夜會(밤의 데이트)”는 최근 그녀가 보여주었던 영화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곡인데 블루지한 느낌이나 전체적으로 묻어나는 칸토 팝의 느낌에도 불구하고 도회적이며 이미지적인 사운드가 결합되면서 묘한 느낌을 전해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流浪的紅舞鞋(춤추는 분홍신)”는 본 앨범에서 단연 돋보이는 곡이다. 춤곡을 떠올리게 하는 도입부와 신서사이저,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 트럼펫 등이 엮어내는 다채롭고 열정적인 곡 전개, 그리고 무엇보다 곡 전체에 휘감기는 페이 웡의 보컬이 곡의 느낌을 배가시키고 있다. 마치 (한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뻬쩨르부르그 광장의 거리의 악사와 이름 모를 무희의 춤사위가 떠오른다. 일렉트로닉적인 사운드가 결합된 강렬한 록 스타일의 곡 “白痴(바보)”, 리믹스 앨범을 비롯해서 최근에 자주 선보인 트랜스 스타일의 곡인 “兩個人的聖經(두 사람의 성경)”도 역시 익숙한 페이 웡의 스타일로 앨범의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발매되고 있는 한정판에서는 “流浪的紅舞鞋(춤추는 분홍신)”의 피아노 버전으로 첫 번째 CD는 끝나고 일종의 팬 서비스차원의 보너스 CD에는 한정판 특별 수록곡인 “色盲(색맹)”, “心路(마음의 길)”, “女皇的新衣(여황제의 새 옷)”와 본래 수록되어 있는 두 곡 “迷魂記(미혹의 기록)”, “不眠飛行(불면비행)”으로 5곡이 채워져 있다. 이렇듯 영미권 팝/록의 다양한 스타일의 차용은 독창성의 부재로 이어지기 십상이지만 페이 웡은 이제까지 이러한 문제를 그녀 자신만의 독특한 아우라로 비교적 매끄럽게 갖고 왔다. 또한 비영미권 뮤지션이 가지는 프리미엄이 그것을 더욱 보완해왔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페이 웡의 백화점식 음악스타일이 본 앨범에서 가장 세련되게 그리고 가장 ‘페이 웡화된’ 사운드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결과가 지금까지 작업해왔던 조력자가 대거 바뀐 뒤에(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났다는 것은 ‘다음’을 염두에 두었을 때 조심스럽지만 희망적인 기대를 준다. 마치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준비하기 전에 지금까지의 결과물들을 갈무리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녀에게서 ‘글로벌 스타’라는 이름을 배제한 순수한 ‘아티스트’의 이름으로써 업그레이드를 기대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20020129 | 신지근 seenyeom@orgio.net 7/10 * 한정판 특별 수록곡중 “心路(마음의 길)”, “女皇的新衣(여황제의 새 옷)”는 “有時愛情徒有虛名(때로 사랑은 헛된 말)”과 “打錯了(잘못 걸었어요)”의 광동어 버전이다. 수록곡 CD 1 1. 光之翼 (빛의 날개 / Wings Of Light) 2. 等等 (등등 / Etc. Etc) 3. (打錯了 (잘못 걸었어요 / Mr. Wrong) 4. 有時愛情徒有虛名 (때로 사랑은 헛된 말 / This So-called Love) 5. 流年 (세월 / Suddenly This Year) 6. 夜會 (밤의 데이트 / To Meet Not To Meet) 7. 流浪的紅舞鞋 (춤추는 분홍신 / Wandering Red Dancing Shoes) 8. 白痴 (바보 / Idiot) (영화 [大腕(Big Shot’s Funeral)] 주제곡) 9. 兩個人的聖經 (두 사람의 성경 / Bible For Two) 10. 單行道 (일방통행 / One Way Life) 11. 流浪的紅舞鞋 (춤추는 분홍신 / Wandering Red Dancing Shoes) (Piano Version) CD 2 12. 迷魂記 (미혹의 기록 / Vertigo) 13. 色盲 (색맹 / Color Blind) 14. 不眠飛行 (불면비행 / Sleepless In The Sky) 15. 心路 (마음의 길 / Self-transformation) 16. 女皇的新衣 (여황제의 새 옷 / The Queen’s New Dress) 관련 글 Faye Wong [Only Love Strangers] 리뷰 – vol.1/no.6 [19991101] Faye Wong [寓言(Fable)] 리뷰 – vol.2/no.23 [2000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