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201012839-0403jangarbarekJan Garbarek & The Hilliard Ensemble – Officium – ECM, 1993

 

 

수도원에 울려 퍼진 현대 재즈와 중세 성가의 앙상블

독일의 클래식 콘트라 베이시스트 만프레드 아이허(Manfred Eicher)가 단돈 4천 달러로 시작한 레이블 ECM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은 당시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1950-60년대 (모던)재즈의 황금기를 지나 일부 프리 재즈와 퓨전의 흐름을 제외하고는 철저히 미국 중심의 메인스트림 재즈로 정체되어 있던 1970년대, ECM은 지적인 유럽의 감수성에 탐미적인 인상파 음악의 표현력과 유럽 민속음악의 전통을 결합시킨 새로운 시도로 재즈의 영역을 확장시켰다는 음악사적 의의를 가진다. 하지만 철저하게 정제되어 있는 고급 취향의 사운드는 중상층 이상(Yuppie)의 음악이라는 비난을, 지나치게 정(靜)적인 음악은 재즈의 역동적인 생명력을 의도적으로 거세했다는 비판 또한 피할 수 없었다.

혁신의 이면에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정체가 드러나던 1980년대. 물론 키스 재릿(Keith Jarrett)과 팻 메스니(Pat Metheny)가 꾸준히 창조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었지만, 이미 그 두 명의 ‘스타’는 ECM이라는 이름을 넘어서고 있었기에 초기의 진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ECM의 위기는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ECM을 통해 프리 재즈와 유럽 민속음악을 접목시킨 음악을 꾸준히 발표하던 노르웨이 출신 색서포니스트 얀 가바렉(Jan Garbarek)이 영국 출신 무반주 남성 4중창단 힐리어드 앙상블(Hilliard Ensemble)과 함께 중세 가톨릭 성가를 해석한 1993년작 [Officium]은 놀라운 상업적 성공 외에 단순히 이질적인 음악적 요소들을 결합시켰다는 참신함을 넘어서 당대로서는 찾아보기 힘든 놀라운 음악적 성취를 이루었다는 평단의 찬사까지 이끌어 내며 정체되어 가던 ECM 음악에 새로운 가능성과 활력을 불어넣은 주인공이 된다.

성가가 가지고 있는 신비로우면서도 규율(율법)적인 꽉 짜여진 형식미에 후기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음악에 영향받은 얀 가바렉의 자유로운 즉흥 연주가 서로 완전히 섞여 전해주는 신선한 음악적 체험. 색서폰과 무반주 보컬 사이로 흐르는 미세한 공기의 떨림까지도 느껴지게 하는 ECM 특유의 공감각적인 느낌을 극대화시키는 레코딩이 미니멀한 편성(보컬과 색소폰)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들. 이는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나 존 콜트레인이 표현했던 ‘현실을 넘어서는 공동체로의 지향’ 같은 영성과는 거리가 있지만, 인종문제와 같은 ‘집단’의 문제보다는 ‘신(神)과의 대면(관계)’을 갈구하던 북유럽의 전통을 이해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음악으로 표현해낸 순연한 종교적 체험이기도 하다.

그 중 어느 하나와도 만날 수 있다면 [Officium]이 주는 의미는 단순히 재즈라는 영역에 제한해 놓기에 아까운 소중한 성취임을 분명히 느끼게 된다. 예상외의 성공 덕에 생긴, 레이블의 조급함 때문인지 전작과 거의 동일한 ‘속편’에 머물고 만 그들의 1999년 작품 [Mnemosyne]의 실망조차도 그 감동을 상쇄시키지 못하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간만에 꺼내들은 [Officium]에서 문득 시규르 로스(Sigur Ros)의 음악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얼까. 그건 ‘희망어(Hopelandic)’를 통해 노래의 관습적 구조에 충실했던 기존 록의 형식에서 진보하려한 포스트록(post-rock)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는 시규르 로스의 황홀한 실험과, 아방가르드 재즈의 자유로움과 신성한 종교적 비의감을 미처 예상할 수 없었던 조합으로 표현해 과거와 현재의 음악을 일치시켜낸 얀 가바렉의 참신하지만 영적인 아름다움은 일맥상통한 부분이 많기 때문일 듯하다. 아! 그러고 보니 둘 다 북유럽 출신이다. 이런 지역색이라면 반길 만도 하지 않은가…(Tip 하나: 2월 17일 오후4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Jan Garbarek & The Hilliard Ensemble의 공연이 열리며, 프로그램도 [Officium] 수록곡 위주로 짜여진다고 한다) 20020128 | 박정용 jypark@nhncorp.com

9/10

수록곡
1. Parce Mihi Domine
2. Primo Tempore
3. Sanctus
4. Regnantem Sempiterna
5. O Salutaris Hostia
6. Procedentem Sponsum
7. Pulcherrima Rosa
8. Parce Mihi Domine
9. Beata Viscera
10. De Spineto Nata Rosa
11. Credo
12. Ave Maris Stella
13. Virgo Flagellatur
14. Oratio Leremiae
15. Parce Mihi Do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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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티즌] Sigur Ros 기사

관련 사이트
레이블 ECM의 Jan Gabarek 페이지
http://www.ecmrecords.com/ecm/artists/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