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201124236-0403velvet_whitelightwhiteheatVelvet Underground – White Light/White Heat – Verve, 1968

 

 

로큰롤, 노이즈의 영토에 첫 발을 내딛다

지금에 와서 [White Light/White Heat]를 록 역사상 가장 실험적인 문제작이라고 한다면 반론이 있겠지만, 1960년대 말 미국으로 범위를 좁힌다면 충분히 그런 평가를 받을 만하다. 무엇보다 이 음반은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당대에 왜 그토록 처절하게 대중들로부터 냉대를 받았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검은 색 바탕에 흰 글씨로 제목이 적힌 이들의 두 번째 앨범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전에 없이 황량하고 거친 사운드이다. 마치 라이브 음반을 듣는 듯한 조야한 음질에 신경을 긁어대는 악기 소리와 노이즈가 곳곳에서 유령처럼 뛰쳐나온다. 이런 점 때문에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흔히 프로토 펑크(proto-punk) 밴드로 분류된다.

앨범에서 제법 인상적인 선율을 담고 있는 “White Light/White Heat”은 마지막 부분에 돌연 광기와 혼란스러움으로 무너지며(물론 라이브에서 연주될 때는 공격적인 발톱을 한껏 드러낸다), 좌우 스피커로 존 케일(John Cale)의 목소리와 밴드의 잼 세션이 완벽하게 분리되는(그래서 종종 영어 교재로 이용되는) “The Gift”의 경우 언제 수면위로 튀어 오를지 모를 긴장감으로 으르렁댄다. 비올라 소리를 제외하면 비교적 얌전한 포크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Here She Comes Now”가 앨범에 작은 쉼표를 제공하면,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I Heard Her Call My Name”이 격렬한 피드백으로 마음을 찢어놓는다. 이어 앨범의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Sister Ray”가 이어진다. 세 개의 코드 위에 기타, 보컬, 비올라, 오르간 등이 어지럽게 오고가는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사람이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음들이 스스로를 연주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최소한의 작곡과 느슨한 구조로 분위기에 젖어드는 순간 음들끼리 놀라운 응집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럴 때 루 리드(Lou Reed)의 목소리조차 자아를 상실한 기계음 내지 뭔가에 홀린 듯 들린다.

이 앨범이 갖는 의미는 이처럼 작곡과 편곡의 개념을 최소화하고 연주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는 점이다. 곡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티브 몇 개와 약속된 코드 진행 그리고 뮤지션의 상상력뿐이다. 여기에 의도적으로 매끈한 사운드를 배격하고 각종 잡음들을 여기저기 깔아놓았다. 이는 해석하기에 따라 히피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의 표현일 수도 있고, 앤디 워홀(Andy Warhol)과 니코(Nico)가 떠나고 난 자리에서 루 리드와 존 케일이 벌이는 신경전 내지 황량한 심경 고백일 수도 있다. 또 극적인 구성이나 변화 없이 단조로운 리듬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것을 듣고 있으면, 문명의 발전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비웃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기도 한다.

어쨌든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크라우트록(Krautrock)과 뉴욕 언더그라운드를 비롯하여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단연 이러한 방법론이 보여준 가능성 때문이었다. 결코 이 앨범에 세월을 뛰어넘는 명곡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리고 이는 아마도 로큰롤 이래 록 음악이 보여준 최초의 노이즈 실험의 사례일 것이다. 이후 록의 노이즈 실험주의는 소닉 유스(Sonic Youth)처럼 학구적인 진지함이 동반되기도 하고,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처럼 유쾌한 연금술적 유희로도 확대된다. 하지만 벨벳의 실험은 그 자체로 여전히 향기를 품고 있다. 볼륨을 한껏 올리고 아무런 생각 없이 머리를 비우는 순간 악기를 집어든 뮤지션과, 그들의 손에서 빚어지는 소음들, 그리고 그것을 듣는 나 사이의 경계가 서서히 흐려지는 묘한 기분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기서 편안함을 느끼는 자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앨범의 역사적인 가치는 인정하겠지만 듣기에는 여전히 부담스럽다는 의견 말이다. 그래서 이 앨범은 벨벳의 팬들에게조차 종종 극단적인 평을 받는다. 가장 좋아하거나, 아니면 가장 관심이 안가거나. 음반사는 울상을 짓고 있겠지만 밴드는 속으로 미소를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20020125 | 장호연 bubbler@naver.com

8/10

수록곡
1. White Light/White Heat
2. The Gift
3. Lady Godiva’s Operation
4. Here She Comes Now
5. I Heard Her Call My Name
6. Sister 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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