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lvet Underground – The Velvet Underground – Verve, 1969 ‘시대’를 벗어난, ‘완벽’의 경지 [The Velvet Underground & Nico](1967), [White Light/White Heat](1969)으로 ‘막 나가는 실험성’을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모든 것으로 알고있던 사람들에게, 이들의 세 번째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1969)는 대단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와 같은 충격은 이들의 주요 문제작인 “I’m Waiting For The Man”이나 “Venus In Furs” 등을 들었을 때 받았던 것과는 정반대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즉 이 음반에 담긴 노래들 대부분이 ‘팝의 정수’인 것이다. 물론 [The Velvet Underground]에는 곱고 예쁜 노래들만 있는 건 아니다. 이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스타일을 견지한 “What Goes On”, “Beginning To See The Light”이 있기는 하다. “The Murder Mystery”는 전작 [White Light/White Heat]에 실린 “The Gift”와 “Sister Ray” 같은 ‘이야기체’ 형식을 갖춘 곡이다(하지만 내용의 ‘세기’에 있어서는 두 노래에 비해 훨씬 약하다). 하지만, 음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팝 발라드’들은 얼마 안 되는 ‘전통적’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들을 가뿐히 압도해 버린다. “Candy Says”, “Pale Blue Eyes”(영화 [접속] 덕분에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들의 노래), “Jesus”, “That’s The Story Of My Life”, “After Hours” 등은 나온 지 30년을 훌쩍 넘겨버린 요즘 들어보아도 그 ‘시대성’을 전혀 가늠해 볼 수 없는, 다시 말해 시공을 초월한 명작들이다. 1집 [The Velvet Underground & Nico]나 2집 [White Light/White Heat]으로부터 1960년대 후반이라는 시대가 지녔던 표정(주로 어두운 쪽이었지만)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랑과 평화가 흐드러지게 만발하던 햇살 찬란한 히피즘을 정면으로 비웃어 버리는, 지하실로부터의 낮지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였던 것이다. ‘시대 정신’과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자세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동세대의 차가운 시선과 외면을 대가로 얻어야만 했다. 하지만 3집 [The Velvet Underground]에 담긴 단아한 팝송들로부터는 이 같은 ‘반(反)의 절규’가 거세되어 있다. 이 노래들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 너무나 완전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기에 여기엔 동시대성이니 사회적 배경이니 하는, ‘시간’과 관계된 모든 것이 끼여들 틈을 남기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완벽함이 ‘보편성’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보편성 또한 ‘공감대의 축적’이라는, 역시 시간을 바탕으로 한 개념을 깔고서야 성립되는 것이므로. [The Velvet Underground]가 뜻하지 않은 ‘순수한 완벽’을 얻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루 리드(Lou Reed)의 내면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었을까. 그런데 여기에는 1969년 당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상황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 때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두 기둥, 루 리드와 존 케일(John Cale)은 서로 충돌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충돌은 너무나 심각한 양상을 보였기에, 차츰 기둥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찍이 초기 로큰롤에 경도되어 뮤지션의 삶을 택한 루 리드와, 실험성을 최대 미덕으로 여기는 현대 음악으로 오랫동안 단련된 존 케일 사이엔 메우기 힘든 틈이 광활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 두 개의 팽팽한 카리스마가 한동안 균형을 이루며 혁명적인 작품들까지 낳게 된 것은, 다시 생각해 보면 앤디 워홀(Andy Warhol) 덕분 아니었을까. 즉 이들이 지닌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렬했던 워홀의 아우라는, 이들의 자의식을 일순간 무화(無化)시켰을 것이다. 더구나 워홀의 곁에는 니코라는 달갑지 않은 존재까지 있었다. 니코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에게 일종의 ‘공적(公敵)’의 역할을 떠맡았고, 이렇게 주의가 분산되는 가운데 루 리드와 존 케일은 각자가 지닌 날카로운 자의식이 사실 서로를 겨누고 있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루 리드의 거친 저항으로 앤디 워홀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결별했고, 곧이어 니코도 떠나갔다. 워홀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밴드를 비껴나가자, 커다란 태양이 이글거리는 황량한 대지에 돌연 두 개의 벌거벗은 자아만이 덩그러니 남아있게 되었다. 처음에 이들은 손을 맞잡았다. 예상보다 깊은 흔적을 남긴 앤디 워홀의 존재감을 필사적으로 떨쳐 내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워홀의 잔재를 몰아내려는 노력은 자신들의 역량을 극단으로 몰아 부치는 ‘발광’의 형태로 가시화 되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White Light/White Heat]이었다. 이 음반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를 명작의 반열에 오르게 만든 두 가지 중요한 요소, 즉 ‘격렬한 실험 정신’과 ‘차가운 우아함’ 중 전자만 최고조로 증폭되어 있다. 아마도 이것은 온전히 존 케일이 원래 지니고 있던 재질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루 리드는 갑자기 밴드의 주도권을 존 케일이 몽땅 차지하고 말리라는 위기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갈등은 밴드의 와해라는 최악의 사태로 번질 지경까지 갔고, 염증을 느낀 루 리드는 최후의 카드를 내놓는다. 즉 밴드의 다른 멤버들에게 양자택일을 종용한 것. 스털링 모리슨(Sterling Morrison)과 모린 터커(Maureen Tucker)는 루 리드 편에 섰고, 결국 존 케일은 축출되고 만다. 사실 루 리드의 승리는, 스털링 모리슨이 그의 오랜 친구였으며, 모린 터커는 스털링 모리슨 친구의 누이라는, ‘인맥’ 덕에 거둔 것일 수도 있다. 존 케일처럼 멀티 플레이어이기는 하지만 그와는 달리 전통적 록 뮤지션인 덕 율(Doug Yule)이 새로 들어오고, 이제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온전한 루 리드의 밴드가 되었다. 상황은 그가 원하던 바대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사실 거기엔 또 다른 위기가 감추어져 있었다. 앤디 워홀, 니코, 존 케일… 그를 지속적으로 견제하고 훼방을 놓고 때로는 지배하려 들기까지 한 이들이 전부 사라져버리자, 루 리드는 예상치 못했던 딜레마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한 감정은 ‘공허감’이라 불리우는 상태였으리라. 그제서야 깨달았을까? ‘견제와 반목’으로 어우러진 관계는 종종 ‘시너지 효과’를 잉태하기도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창작 활동을 혼자 떠맡게 된 루 리드는([The Velvet Underground] 수록곡 전부가 그의 단독 작품이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거나 익숙한 음악 상당수를 끌어다 대기 시작한다. 블루스, 컨트리, 두왑, 로커빌리, 심지어는 가스펠의 어프로치가 이 음반에서 유독 두드러진 것은 그 때문이다. 노랫말도 ‘실험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노래 제목들만 보아도, 루 리드가 내면으로 침잠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외부와는 일정 거리를 두고(“What Goes On”),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심정적으로는 아름다운 사랑에 탐닉하거나(“Candy Says”, “Some Kinda Love”, “Pale Blue Eyes”, “After Hours”), 그것으로도 마음의 빈 곳을 채울 수 없다면 절대자에게 마음의 평화를 갈구해 보기도 한다(“Jesus”, “Beginning To See The Light”). 그러다가 결국은 모든 것이 허망하고 덧없어진다. 밴드 활동도 신물이 난다. 그냥 집어치우고 자유롭고만 싶다. 훌훌 다 털고 홀로 서고만 싶어지는 것이다(“I’m Set Free”, “That’s The Story Of My Life”). ‘내면성’은 ‘시대 감각’을 뛰어넘어 그 자체로 완전무결함을 이룬다(밴 모리슨(Van Morrison)의 [Astral Weeks](1968)나 조니 미첼(Joni Mitchell)의 [Blue](1971)를 보라). 그 완전함으로 뭉쳐진 ‘덩어리’는 마치 당구공처럼 너무 단단하여, 사방의 사물을 파괴시켜 버리고 결국 자신도 모르는 길로 굴러가 버린다. [The Velvet Underground]는 시대 배경, 철학, 장르 등과 아무런 연관을 맺지 않고 그 자체로 시작하여 그 자체로 끝나버리는 음반이다. 그 어떤 해석이나 평가의 손길이 개입될 틈을 주지 않고, 자기 멋대로 굴러가 버릴 운명을 가진 음반인 것이다. 이 음반에서 루 리드의 목소리가 유난히 쓸쓸하고 텅 비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건, 루 리드 자신으로서도 어떻게 바꿔볼 도리가 없는 이러한 ‘숙명’을 [The Velvet Underground]에 부여한, 무기력한 창조자로서의 탄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20020124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9/10 수록곡 1. Candy Says 2. What Goes On 3. Some Kinda Love 4. Pale Blue Eyes 5. Jesus 6. Beginning To See The Light 7. I’m Set Free 8. That’s The Story Of My Life 9. The Murder Mystery 10. After Hours 관련 글 The Velvet Underground [Bootleg Series Volume 1: The Quine Tapes] 리뷰 – vol.4/no.3 [20020201] The Velvet Underground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리뷰 – vol.4/no.3 [20020201] The Velvet Underground [White Light/White Heat] 리뷰 – vol.4/no.3 [20020201] The Velvet Underground [Loaded] 리뷰 – vol.4/no.3 [20020201] The Velvet Underground [VU]/[Another View] 리뷰 – vol.4/no.3 [20020201] The Velvet Underground [Live MCMXCIII] 리뷰 – vol.4/no.3 [20020201] 관련 사이트 The Velvet Underground 비공식 사이트 http://www.velvetunderground.com http://www.velvetunderground.co.uk http://members.aol.com/olandem/vu.html http://outland.cyberwar.com/~zoso/velve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