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가 “왜 처음부터 4회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view -> series로 가서 목차를 뒤져보는 수고를 해야 할 것이다. 2년 전쯤 고(故) 펠라 쿠티(Fela Kuti: 1938-1997)의 아프로비트(afro-beat)에 관해 ‘거창하게’ 소개한 바 있다는 이야기다. 그때만 해도 “뭔 얘기냐?”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몇 사람 읽어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조적인 평을 내린 사람은 비단 필자만은 아니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사정이 그리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이유는 다름 아니라 ‘나이지리아 음악’까지 관심을 가지기에 한국은 어중간하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월드 뮤직’이란 남이 듣지 않는 세계 각지의 희귀한 음악을 듣는 부유한 사람의 취향이다. 그 부유함에는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포함된다. 한국인 가운데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비교적 분명하다.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이들 후진국의 음악에서 특별한 동지감을 느낄 계기가 많은 것도 아니다. 나이지리아가 나름대로 대국(大國)이고 축구 강국인 것만큼이나 음악 강국이라는 사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정보 이상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프로비트는 ‘아프리카의 음악’이 아니라 ‘국제적 음악’이 되고 있다. 이때 ‘국제적’이라는 수식어는 ‘영미의 수용자들에게 수용되고 있다’는 의미와 더불어 아프로비트 뮤지션들의 활동이 국제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월드 뮤직’으로서 아프리카산(産) 음악이 국제화된지는 이미 2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지 않았는가. 다른 점이 있다면 영미권의 수용자들이 ‘들어 주는’ 차원을 넘어 음악 생산자들(그리고 수용자들) 사이에 교류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교류는 단지 인적 교류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음악적 교류를 낳고 있다. 즉, 아프리카 출신의 음악인과 아프리칸 디아스포라, 즉 아프리카에 먼 선조를 두고 영미권에 사는 ‘흑인’들 사이에 교류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선두주자는 다름 아니라 펠라 쿠티의 아들 페미 쿠티(Femi Kuti)다. 그는 1999년 [Shoki Shoki]를 통해 국제적 데뷔를 했다(1995년 모타운(Motown) 레이블을 통해 [Femi Kuti]를 발매한 일이 있지만 ‘메이저 배급망’을 확보한 것은 1999년이 처음이었다). 이 아프로비트의 장자(長子)는 페미 쿠티는 16인조 밴드 포지티브 포스(Positive Force)를 이끌고 1999년 가을부터 미국의 여러 도시를 순회하면서 클럽 투어를 가졌고, 2000년 여름에는 각종 페스티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이에 [Rolling Stone], [Spin]같은 전문음악잡지뿐만 아니라 [Time]과 [Newsweek]같은 일반 잡지에도 등장했다. 그럼으로써 단지 ‘월드 뮤직 팬들’에 그치지 않고 어느 정도 ‘크로스오버 히트’를 누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사진설명:색서폰을 부는 페미 쿠티의 모습 이런 정력적 활동의 결과 페미 쿠티는 각종 상복을 누렸다. [Shoki Shoki]는 ‘코라 올 아프리카 뮤직 어워드(Kora All Africa Music Awards)’에서 ‘베스트 메일 아티스트(Best Male Artist in Africa)’ 부문을 수상했다. 2000년 5월 모나코에서 열린 ‘2000 월드 뮤직 어워드(2000 World Music Awards)’에서는 ‘베스트 셀링 아프리칸 아티스트(Best-Selling African Artist)’ 상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Beng Beng Beng”이 나이지리아에서 금지곡이 된 사실에 항의라도 하듯 전세계의 시청자들을 앞에 두고 연주하기도 했다. 또한 그해 12월에는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 평화상 수상 콘서트에서 노르웨이의 왕족을 비롯한 전세계의 귀빈들 앞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수상자는 다름 아니라 한국의 대통령 김대중이었는데, 페미의 연주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한편 아프리카에서 AIDS의 상태에 대해 페미가 쓴 글이 유니세프(UNICEF)에서 발행하는 [State of Nations Report 2000]에 실리기도 했다. 최근 페미 쿠티의 활약상은 마치 1980년대 후반 세네갈의 유수 은두르(Youssou N’dour)에 필적해 보일 정도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페미 쿠티가 국제적 스타이자 명사가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힙합/R&B 뮤지션들과도 긴밀하게 교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Shoki Shoki]의 수록곡인 “Blackman Know Yourself”는 이미 필라델피아의 재즈-힙합 그룹 루츠(The Roots)에 의해 리믹스되어 미국 발매반에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었다. 그 뒤 시카고의 힙합 액트 커먼(Common)의 음반 [Like Water for Chocolate]의 머릿곡이자 펠라 쿠티를 추모하는 곡 “Time Travelin'(A Tribute to Fela)”에도 ‘피처링’해주었다. 커먼은 마치 페미 쿠티의 ‘시카고에 있는 얼터 에고(alter ego)’라고 불릴 정도이다. 일렉트릭 레이디 스튜디오(Electric Lady Studio)에서 디안젤로(D’Angelo) 및 로린 힐(Lauryn Hill)과 잼을 하기도 했다(이 스튜디오는 이름에서 짐작되듯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가 잼 세션을 위해 설립한 스튜디오다). 결실을 맺었는지는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에리카 바두(Erykah Badu)와 함께 레코딩을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쿠티 가문에서 만들어진 음악의 국제 배급권을 보유한 MCA의 활동도 활발하다. 1999년에 펠라 쿠티의 앨범 20종을 10종의 CD로 재발매하고 더블 CD의 베스트 앨범을 발매한데 이어, 2001년 7월에 앨범 15종을 10종의 CD로 재발매했다. 이런 재발매가 페미 쿠티의 신보 발매와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사실에서 어느 정도 ‘장삿속’을 관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유니버설이 폴리그램을 병합한 뒤 카탈로그를 줄이는 등의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꽤 정력적인 캠페인이다(참고로 MCA는 1990년대 초 일본의 마쓰시다가 인수했다가 유니버설에 매각했다. 지금 MCA는 유니버설 산하의 하나의 레이블이 되어 있다.) 사진설명: 페미 쿠티와 그의 밴드 포지티브 포스의 공연 장면 2001년 상반기에는 국제적 활동을 자제하고 새 앨범의 작업에 주력하던 페미 쿠티는 앨범 발매를 앞둔 10월 2일부터 16일까지는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의 미국 동부 투어에 함께 참여했고, 11월 중순에는 자신이 헤드라이너가 되어 클럽 투어를 계속 중이다. 그리고 2001년 10월 16일 [Fight to Win]를 ‘세계 동시 발매’하게 되었다. 이번 앨범에는 모스 데프(Mos Def), 커먼, 재규어(Jaguar), 그리고 비스티 보이스(The Beatie Boys)의 머니 마크(Money Mark)가 참여하여 아프로비트와 힙합 사이의 연대 의식을 보여 주었다. 아무래도 국제적 취향을 의식하여 미국의 훵크와 소울의 영향이 강해 보였던 전작과 비교해 볼 때 새 앨범은 페미 쿠티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주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해서 펠라처럼 20~30분에 달하는 연주 시간 동안 주술적으로 중얼거리는 ‘설교’를 재현한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달리 대마초를 피우지 않으며 부인도 한 명밖에(!) 없는 페미 쿠티는 3~5분 사이의 길이의 포맷을 지키고 있다. 물론 펠라의 영향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영미의 평단에서 ‘불가항력적(irresistible)’이라고 종종 표현되는 폴리리듬의 그루브는 여전하다. 거기에 색서폰과 보컬을 오가면서 분주하게 연주하고 노래하는 모습이나 ‘정의’를 외치는 가사도. 그의 말을 빌면 아프로비트란 “춤을 추면서도 생각하는 음악”이다. 한편 MCA는 펠라 쿠티에 대한 또하나의 트리뷰트 앨범을 제작하고 있다. 이 앨범은 AIDS 퇴치를 위한 비영리기구인 레드 핫(Red Hot Organization)에서 발매하는 시리즈 자선앨범의 일환으로 [Red Hot + RIOT]가 2002년 초에 발매될 예정이다. 이미 펠라에 대한 트리뷰트 앨범은 몇 종이 있다. 나이지리아 및 아프리카의 음악인들과 미국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했던 [Afrobeat No Go Die](Shanachie, 2000)가 이미 발매되어 있고, 이야스 델 솔(Hijas del Sol)이라는 적도 기니(Equatoria Guinea)의 여성 듀오도 펠라에 대한 존경의 염을 담은 [Kchaba](Intuition, 2000)을 발표한 바 있다(이 앨범은 펠라의 음악을 연주한 것은 아니므로 통상의 트리뷰트 음반과는 다르다). 레드 핫 기구에서 준비하는 음반은 ‘올스타 트리뷰트’의 성격이 강하다. 면면을 살펴 보면 모스 데프, 에리카 바두, 커먼, 루츠의 아미르 퀘스트러브 톰슨(Ahmir “?uestlove” Thompson), 디안젤로, 나일 로저스(Nile Rodgers), 메이시 그레이(Macy Gray), 데드 프레즈(Dead Prez)에 이르는 힙합과 R&B 뮤지션들이 눈에 띄고 프리 재즈 뮤지션 아키 솁(Archie Shepp)도 한 곡을 거든다고 한다. 미국 뮤지션들 뿐만 아니라 호르헤 벤(Jorge Ben: 브라질), 바아바 말(Baaba Maal: 세네갈), 토니 알렌(Tony Allen: 나이지리아; 펠라 쿠티의 밴드의 드러머), 레 뉘비앙스(Les Nubians: 카메룬-프랑스)같은 ‘월드 뮤직’에 속하는 뮤지션들도 참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페미 쿠티와 아프로비트가 단지 ‘나이지리아 음악’이 아니라 ‘국제적 음악’이 되어가는 양상을 보여준다. 물론 이런 국제화가 그저 순조로운 승승장구는 아닐 것이다. 앞서 ‘영미의 수용자들에게 수용되고 있다’는 말은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메이저 음악산업계의 시스템에 통합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 3세계’ 출신의 음악인들이 국제적 성공을 거두고 스타가 되는 것이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고국의 산적한 정치적·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최악의 경우 이들은 음악산업계의 감탄고토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이런 점은 1970년대의 밥 말리(Bob Marley)나 1980년대의 유쑤 은두르의 경우에조차 어느 정도는 적용되는 게임의 법칙이다. 이런 법칙과 어떻게 대적하는가가 이미 국제적 스타가 된 페미 쿠티의 장래를 가늠할 것이다. * 밥 말리가 국제화시킨 레게(reggae)와 유쑤 은두르가 국제화시킨 음발라흐(mbalax)는 다소 상이한 케이스다. 레게는 ‘월드 뮤직’을 벗어나서 팝 음악의 한 장르가 되어 ‘상업적 변질’의 시도와 대면해야 했지만, 음발라흐는 자발적 대중화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월드 뮤직’이라는 범주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마케팅 범주에 의한 구획화로부터 벗어나는 시도들은 언제든지 존재한다. 물론 아프로비트를 ‘쿠티 가문의 음악’과 등치시키지 않는다면 아프로비트의 ‘상업화’에 대한 염려는 더욱 줄어들 수 있다. 아프로비트는 이제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에도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아프로비트의 ‘지구화’의 양상에 대한 소개를 추가해야 중단된 시리즈의 재개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는 다음 호로 미루자. 20011130 | 신현준 homey@orgio.net * 이번 호에는 펠라 쿠티의 몇몇 음반들을 리뷰하고 다음 호에는 페미 쿠티와 기타 아프로비트 뮤지션들의 음반들을 리뷰하겠습니다. 관련 글 Afro-beat Never Stands Still (1) – 나이지리아의 대중음악 – vol.2/no.6 [20000316] Afro-beat Never Stands Still (2) – 펠라 쿠티 & 아프로비트 – vol.2/no.7 [20000401] Afro-beat Never Stands Still (3) – 다시 아프리카로 – vol.2/no.8 [20000416] Fela Ransome Kuti & Nigeria 70 [The ’69 Los Angeles Sessions] 리뷰 – vol.4/no.2 [20020116] Fela Ransome Kuti & the Africa 70 with Ginger Baker [Live!] 리뷰 – vol.4/no.2 [20020116] Fela Anikulapo Kuti & Africa 70 [Yellow Fever / Na Poi] 리뷰 – vol.4/no.2 [20020116] Fela Anikulapo Kuti [Shuffering And Shmiling / No Agreement] 리뷰 – vol.4/no.2 [20020116] Fela Anikulapo Kuti & Africa 70 [V.I.P. / Authority Stealing] 리뷰 – vol.4/no.2 [20020116] Fela Anikulapo Kuti with Roy Ayers [Music Of Many Colours] 리뷰 – vol.4/no.2 [20020116] Fela Anikulapo Kuti [Army Arrangement] 리뷰 – vol.4/no.2 [20020116] Fela Anikulapo Kuti & Egypt 80 [Beasts Of No Nation] 리뷰 – vol.4/no.2 [20020116] Fela Kuti [The Best Best Of Fela Kuti] 리뷰 – vol.4/no.2 [20020116] 관련 사이트 MCA 레코드사 – 펠라 쿠티 페이지 http://www.mcarecords.com/ArtistMain.html?ArtistId=237 펠라 쿠티 관련 기사 “From the foot of The Shrine” http://www.afribeat.com/archiveafrica_fela.html 펠라 쿠티 상세 디스코그래피 http://biochem.chem.nagoya-u.ac.jp/~endo/EAFela.html 펠라 쿠티의 죽음을 다룬 기사 “Africaman Original” (Carter Van Pelt) http://incolor.inetnebr.com/cvanpelt/Felaweb/africaman.html MCA Records의 쿠티 부자 음반 발매 관련 기사 [Urban Spectrum on the Web] http://www.urbanspectrum.net/music.html 페미 쿠티 인터뷰 [Ink Blot Magazine] http://www.inkblotmagazine.com/Interviews/int_Femi_Kuti.htm 페미 쿠티 관련 기사 [BostonHerald.com] http://www.bostonherald.com/entertainment/music/katz1102200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