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 – 봄여름가을겨울 – 동아기획/서라벌레코드, 1988 퓨전 재즈와 발라드의 동거, 그 첫 발자국 매스 미디어에서 ‘저희들끼리’ 떠들썩한 샴페인 축배를 들던 1988년, 한 모퉁이에서는 변해간다는 것에 대한 상념을 그린 노래 두 곡이 등장해 적잖은 인기를 모았다. 사랑으로 인해 변해가는 것을 노래한 동물원의 “변해가네”가 적당히 흥겨운 템포로 모호한 태도를 보인 곡이었다면, 전형적인 발라드의 처연함을 보여준 봄여름가을겨울의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는 사춘기적 감상과 순수의 잣대로 변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입장을 취한 곡이었다. 라디오에 자주 흘러나오면서 인기를 모은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가 담긴 봄여름가을겨울의 셀프타이틀 앨범은 1988년 여름에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1980년대 후반 가요계에 새로운 음악 감성을 보여준 이른바 ‘동아기획 사단’의 자장 안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김현식의 백 밴드로 출발했지만 봄여름가을겨울의 제대로 된 출발점은 김종진(기타, 보컬)과 전태관(드럼, 퍼커션)의 2인조로 축소되어 시작된 이 앨범부터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앨범이 정식 데뷔 앨범이기도 하지만. 봄여름가을겨울의 첫 출발은 성공적이었다. 이들은 기본 포지션별로 멤버를 갖춘 일반적인 록 밴드 편성도 아니었고, 김종진의 노래 또한 일반적인 의미에서 가창력 있다고 보기 힘들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내가 걷는 길”로 대표되는 발라드 곡의 감성은 무리 없이 대중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히트곡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가 전형적인 발라드 형식에 통속적 순수 의식에 기댄 곡이라면, 김현식 백 밴드 시절의 음악을 잇는 “내가 걷는 길”은 고백적인 자성과 반추를 담아 울림을 낳은 곡이다. 비단 그런 발라드뿐만 아니라, 사실 이 음반에 담긴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은 이들이 백 밴드로서 참여한 김현식 3집의 성과를 전제로 했을 때 보다 뚜렷해진다. 김현식 3집이 발라드라는 큰 틀 내에서 록, 재즈, 블루스 등을 적절히 배합한 결과 음악적·상업적으로 성공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봄여름가을겨울 데뷔 앨범의 음악적 스펙트럼의 연원과 그 성공 요인은 수긍하기에 어렵지 않다. 물론 김종진의 가창(력)을 김현식의 그것과 같은 반열에 올릴 수는 없고, 앨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음악적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어떤 음악을 다뤄도 블랙홀처럼 자기 것으로 변용하는 김현식의 카리스마적 장악력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대신 봄여름가을겨울은 (보컬리스트가 아니라) 악기 연주자들답게 (노래가 아니라) 사운드에 강점을 갖고 있었다. 이 앨범에 담긴 발라드 계열의 곡들이 때론 별다른 특징 없이 관습적 동어반복에 그치곤 하는 반면, 3곡의 연주곡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진가를 담고 있다. 앨범 들머리에 경쾌하게 흘러나오는 업 템포의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은 이들에게 ‘(한국 최초의) 퓨전 재즈 밴드’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곡이다. 맛깔스럽고 오밀조밀한 기타 연주와 훵키하고 리듬감 넘치는 리듬 파트가 곡을 이끌고 있지만, 각 파트별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깔끔한 퓨전 재즈 연주곡이다. 명쾌한 구성과 전개는 반복, 변주, 브릿지의 적절한 활용으로 3분 50초의 러닝 타임을 치밀하게 조직한다.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이 플러그를 꽂고 볼륨을 높여서 흠뻑 연주에 빠져드는 곡이라면, “거리의 악사”는 플러그를 빼고 의자에 앉아 발을 까딱거리면서 가볍게 연주하는 곡에 해당한다(물론 후자가 언플러그드 곡이라는 얘긴 아니다). 두 곡 모두 퓨전 재즈 연주곡이고, 악기 사이의 역할 분담과 악곡 구성도 조화롭지만, “거리의 악사”는 단아하면서 경쾌한 어쿠스틱 기타와 훵키하지만 맑은 느낌의 베이스가 돋보이는, 확실히 맑고 향기로운 느낌에 가까운 곡이다. 반면 “12월 31일”은 느린 템포의 서정적인 기타 주도의 연주곡이다. 이 곡은 매끄러운 앞의 곡들과 달리 블루스적인 요소와 재즈적인 요소를 탁하게 뒤섞은 느낌을 준다. 이상의 3곡의 연주곡은 각각 봄, 여름, 겨울 테마의 도입부를 이룬다. 순서가 뒤바뀐 셈이지만 후술하자면, 이 앨범은 수록곡을 차례로 봄, 여름(이상 LP A면), 가을, 겨울(이상 LP B면)의 테마로 나누어 배치한 구성을 보인다. 이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앨범을 하나의 완결된 작품 단위로 사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앨범에 연주곡을 3곡’씩이나(!)’ 수록하는 (당시 가요 음반의 경향에 비추어) 파격성과 앨범 속지에 포지션별로 각각 사용한 악기의 이름을 명기한 점은 이들의 지향점을 알려준다. 전체적으로 앨범은 노래 위주인 발라드 곡과 연주 위주인 퓨전 재즈 곡으로 크게 양분되고, 이는 통합적이라기보다는 분열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김현식 3집의 그림자가 남아 있는 발라드 곡들이 작지 않은 상업적 성공을 낳으면서 ‘다음’을 기약하는 기반이 되었으며, 퓨전 재즈 연주곡들은 (자신들의 본령도, 전략도 아니라고 스스로 부인했고 때로는 원치 않는 꼬리표가 되기도 했지만) 이들의 뮤지션십을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없었고 또 음악/사운드에 있어서 이들에 대한 인지도와 주목을 견인한 근거가 되었다. 한국 대중가요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노래 이외의 요소'(축소해서 연주의 측면만 보아도 좋다)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연주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낳았으며, 당시까지 낯선 장르였던 퓨전 재즈를 대중적으로 소개했다는 점은 이 앨범의 미덕이다. 또 음악의 공감대/감동 형성이 반드시 빼어난 가창(력)을 동반할 필요는 없다는 교훈을 드러낸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발라드와 퓨전 재즈가 불안정한 동거관계(혹은 미봉에 가까운 결합)처럼 어색한 점은 데뷔 앨범이란 걸 감안해 판단 유보를 요청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음악적인 평가와 관련된(정작 이들도 스스로 기대했을) 3곡의 연주곡들의 독창성 문제는 데뷔 앨범 혹은 새로운 장르의 소개를 미명으로 하여 지나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 곡들이 리 릿나워(Lee Ritnour)를 비롯해 외국의 기성 퓨전 재즈 뮤지션/밴드의 음악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런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이후로도 종종 반복된, 일과성이 아닌 일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결국 이처럼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 첫 장은 기대와 우려의 이중주로 전개되었다. 20020116 | 이용우 pink72@nownuri.net 6/10 수록곡 1.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 (봄) [연주곡] 2. 헤어지긴 정말로 싫어 3. 내가 걷는 길 4. 거리의 악사 (여름) [연주곡] 5. 혼자 걷는 너의 뒷모습 6.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가을) 7. 전화 8. 방황 9. 보고 싶은 친구 [故유재하에 바치는 곡] 10. 12월 31일 (겨울) [연주곡] 11. 또 하나의 내가 있다면 관련 글 봄여름가을겨울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 – vol.4/no.2 [20020116] 봄여름가을겨울 [농담, 거짓말 그리고 진실] – vol.4/no.2 [20020116] 봄여름가을겨울 [I Photograph To Remember] – vol.4/no.2 [20020116] 봄여름가을겨울 [Banana Shake] – vol.4/no.2 [20020116] 봄여름가을겨울 [Bravo, My Life!] – vol.4/no.2 [20020116] 관련 사이트 봄여름가을겨울 공식 사이트 http://www.idongamusic.com/Star_Site/ssaw 봄여름가을겨울 팬 사이트 http://www.geocities.com/SunsetStrip/Villa/8100/ss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