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116120507-0402ssaw_iphotograph봄여름가을겨울 – I Photograph To Remember – 동아기획/서라벌레코드, 1993

 

 

화려한 날들의 소리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상호작용에 따른 과정,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역사가 카(E. H. Carr)의 말을 상기한다면, 음악이란 뮤지션이 대중과의 상호작용에 따라서 과거의 것이 현재를 아우르는 동시에 미래를 접수할 수 있는 시공의 초월성을 지니게 될 때 비로소 음(音)의 유영이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음악은 진보적인 사운드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남아있는 악기와 구성들로 반추의 과정을 지녀야 할 것이고 그것은 곧 음악이 ‘기억을 위한 소리들’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된다.

남미 출신의 사진작가 페드로 메이어(Pedro Meyer)가 자신의 부모를 기억하기 위하여 사진으로 시간을 채웠던 작품 [I photograph to remember]와 동명의 제목을 지닌 봄여름가을겨울의 네 번째 앨범은 이와 같은 발상으로, 소리를 통하여 추억에 다다르기 위한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다만 그들이 되새김하는 기억이란 것이 개인적인 그리움에서 비롯된 친구, 유년시절, 헤어진 연인 등 그 동안 구구절절 반복되던 것이었기는 하지만 ‘소리’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 음반에 담긴 소리들은 단촐한 빅 밴드(Big Band)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고정멤버인 김종진, 전태관의 기타와 드럼은 뒤로 물러나 있고 트럼펫, 브라스, 색서폰, 하몬드 오르간 등이 거의 모든 곡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고 있다(“이성의 동물, 감정의 동물”의 경우에는 기타보다는 알토 색소폰이 중심을 이끌어가고 있다). 또한 연주도 두 멤버를 제외하고는 공동 프로듀서인 로리 영(Rory Young)과 에크미 스튜디오(ACME Studio)에서의 현지 세션들이 전담하게 되면서 전형적인 ‘가요’의 형식에서 벗어난 앨범으로 기억된다.

이러한 봄여름가을겨울의 시도는 (당시 국내에 만연되어있던) 동시대의 속도에 동반하기보다 반대로 음악적 조류를 역행함으로서 발화된 성과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전작(前作)들이 ‘가요’와 ‘재즈’ 사이에서 어색하게 서성거렸다면 이번 앨범에 이르러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체득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 것은 결국 동시대를 거부했기 때문이 아닌가. 물론 완벽한 고갱이는 아니어서 부분적으로 낯간지러운 양태가 드러난다. 늘 첫 번째로 지적되는 걸죽한 보컬의 목소리는 작위적인 창법이 여실하고 “안녕, 또 다른 안녕”에서 “창 밖의 비는 멈출 것 같지 않아…”라고 읊을 때는 왜 그리 소름이 돋는지. 그렇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많이 선곡되었던 “영원에 대하여” 같은 곡만으로 이 음반을 재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 노래는 앨범 전체 분위기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데, 한편으로 당시 이 곡이 히트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상황들을 반증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질적인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를 ‘퓨전 재즈’라는 오리지널리티인데, 오히려 퓨전 재즈라는 용어를 해체해본다면 오리지널리티 자체가 무용하다는 지론으로 이들을 옹호하련다.

그러므로 이 음반이 봄여름가을겨울의 앨범 중 손꼽히는 수작이 될 수 있는 것은 가사라든가, 보컬의 음색, 간혹 드러나는 발라드 풍의 난기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주와 노래가 적절한 혼합을 이루었다는데 있다. 물론 이 앨범이후로도 연주곡이 때로는 가사가 깃든 노래보다 높은 수준에 도달하거나 단순한 ‘경음악’이 아닌 인스트루먼틀(instrumental)로 격상되고, 본인들이 직접 밝혔듯이 오히려 연주곡이 더 어렵다고 토로한 사실만 보더라도 그 비중을 알 터인데 아쉽게도 노래와 연주의 범위가 제각각 설정되는 한계를 생각해 본다면 이때만큼 그 두 가지가 결합되고 보완되며 중화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질문들”이나 “잃어버린 자전거에 얽힌 지난 이야기”와 같은 곡으로 증명되는데, 브라스와 트럼펫 솔로로 시작되는 이 노래들은 연주곡의 장점을 흡수하는 동시에 노랫말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분위기의 상충, 더불어 양자의 상호보완에 따른 화학작용이 국내뮤지션에 의하여 듣기 어려웠던 재즈적 접근법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이들의 네 번째 앨범은 일찌감치 번연한 실패를 예상하여 그리 관심 끌기도 어려운 ‘재미없을 음원’들을 무국적(無國籍)으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우왕좌왕하던 발걸음을 한곳에 머물도록 해주면서 봄여름가을겨울의 초심을 완벽하게 구현한 분수령으로서의 가치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우리는 그저 록 밴드’라고 할 지라도, 로커빌리 풍 “디밥”을 비롯하여 마지막으로 결코 훵키하지 않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리메이크 곡까지 다 듣고 나면 그들의 사계절 중 가장 풍성했던 날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20020115 | 신주희 zoohere@hanmail.net

9/10

수록곡
1. 말없는 인사
2. 알 수 없는 질문들
3. 잃어버린 자전거에 얽힌 지난 이야기
4. 안녕, 또 다른 안녕
5. 기억을 위한 사진들
6. 노래여 퍼져라
7. 이성의 동물, 감정의 동물
8. 영원에 대하여
9. 그대를 위하여
10. 페르시아 왕자
11. 디밥
12. 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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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봄여름가을겨울 공식 사이트
http://www.idongamusic.com/Star_Site/ssaw
봄여름가을겨울 팬 사이트
http://www.geocities.com/SunsetStrip/Villa/8100/ss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