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116070043-0402ssaw_bananashake봄여름가을겨울 – Banana Shake – 동아기획/서라벌레코드, 1996

 

 

어설프게 섞인 화려한 빛깔의 쉐이크

알루미늄으로 된 동그란 CD 케이스를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은 새롭고 깔끔했다. 두드리면 경쾌한 소리가 날것만 같았고 들고 다니는 동안은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그거 뭐니. 누구 음악이야.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곧 ‘애물단지’로 변해버렸는데, CD꽂이에 맞지 않을뿐더러 어린 조카의 장난감이 되기 십상이라 늘 깊숙한 곳에 숨겨놓아야 했다. 더구나 음악을 듣기 위해 CD를 꺼내려면 케이스의 날카로운 금속성 울림을 감수해야하고 매번 바닥에 떨어지는 CD 표면에는 겹겹이 생채기가 났다. 마치 그 속에 담긴 음악과도 같이.

십 년이 그리 긴 세월이라 생각하지 않는데 정작 본인들에게는 노회(老獪)하게 들렸을까. 은색의 케이스를 열면 다시 노란 바탕의 글씨가 보이고 타이틀은 ‘바나나 쉐이크’란다. 앨범 속지의 참여 뮤지션을 보면 신해철, 김세황, 김현철, 이현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 이소라 등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튼 결성 10주년이 언제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앞뒤를 넘나들 즈음, 봄여름가을겨울의 여섯 번째 정규앨범은 이처럼 그 동안 몇 차례에 걸친 해외 뮤지션과의 협연을 뒤로하고 오랜 동지들인 강기영, 최태완은 물론 순수 국내 뮤지션만으로 풍성한 세션을 꾸미면서 개혁과 혁신을 모토로 ‘청춘’을 예찬하게 되었다. 거기에 프레데터 같은 ‘괴물’이 등장하는 “이기적이야”의 뮤직비디오는 인헨스트 씨디(enhanced CD)로 제작되어 컴퓨터를 통하여 볼 수 있고 사진과 제작과정 등 각종 서플이 담겨있다고 일찌감치 소문이 나버린 것이다. 그러니 좋은 것이 좋은 거라면 여기에 대하여 트집잡을 필요는 없다.

그래도 시비 걸고 싶다면 대략 이런 것들이라. 우선 수록된 음악은 열 곡이며 러닝타임은 34분 41초. 전작(前作)들이 60분에 육박한다는 것을 안다면 이번 앨범은 반액할인 가격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자. 그리고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가사도 문제 있다고 말해보련다. 첫 곡 “Yag”는 김종진과 전태관의 전화통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거북이를 길렀지만 알을 낳지 못해 알아본즉 모두 남자 거북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는 전화하던 두 친구는 웃는다. 이는 이미 여러 곳에서 밝혀졌듯이 ‘Yag’를 뒤집으면 ‘Gay’가 되고 남자 거북이를 조롱하듯 웃는 것은 그들의 호모포비아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바나나 쉐이크”가 사대주의를 비판한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에로티시즘에 가까운 것 같다. “노란 것이 둘이 만나 껍질을 벗고 이리저리 돌려 섞으면” 생겨나는 “하얀” 것은 무엇일까. (정말 궁금하다.)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을 때엔”은 극히 바람직한 1990년대 건전 가요이며 “X라고 부르지마”는 너무 들어서 닮고 닮은 듯한 소재의 이야기이다. 이외에도 케이스의 뚜껑은 왜 이리 헐렁한지. 하지만 거두절미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일터.

자의든 타의든 그 동안 그들의 색깔을 규정하던 (혹은 제한하던) 음악이 답답했던지 이 앨범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은 본격적으로 록을 하게 되었다. 하긴, 마이클도 록을 배우겠다고 버둥거리는 시대인데 이들이 못할 것도 없지. 이를 위해 “바나나 쉐이크”에서 멋들어진 최태완의 오르간은 보컬에 짓눌리기도 하고 “이기적이야”에 나오는 이현도의 랩은 뜬금없이 출몰하면서도 당당하기 그지없다. 강력한 헤비 메탈 기타 리프로 시작하는 “X라고 부르지마”에서는 신해철의 가성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이다. 유일하게 블루스 분위기로 가득한 “16살의 유서”가 있지만 “X라고 부르지마”와 마찬가지로 어우러진 가사는 음악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이다. 왜 이런 사소한 것들이 거슬리는지 모르겠지만 사소한 것들마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 아무튼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끝 곡으로 유일한 기타 솔로 연주곡 “한밤에 치는 기타”만이 고즈넉하게 씁쓸한 마음을 달래고…

그러므로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로 봄여름가을겨울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본 앨범은, 아쉽게도 그 기운이 음악까지 전달되진 못했나 보다. 이로서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더 많게 되니, 완연한 ‘퓨전 밴드’라 할 만하다. 그러면서 마치 헐렁한 기성복을 입고 있는 듯한 음반 [Banana Shake]를 듣고있노라면 역시나 겉은 멀쩡해 보여도 얽음으로 가득한 이들의 CD와 같다는 생각이 들뿐이다. 20020115 | 신주희 tydtyd@hotmail.com

3/10

수록곡
1. Yag (거짓말하는 아저씨의 거북이)
2. 바나나 쉐이크
3. 이기적이야
4.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을 때엔
5. X라고 부르지마
6. 비
7. 1999년 7월
8. 돌아보지마
9. 16살의 유서
10. 한밤에 치는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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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공식 사이트
http://www.idongamusic.com/Star_Site/ssaw
봄여름가을겨울 팬 사이트
http://www.geocities.com/SunsetStrip/Villa/8100/ssa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