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ada – Kanada – TMT Entertainment, 2001 신나는 아방가르드 관광버스 메들리 1980년대에 슈거큐브즈(Sugarcubes)가 세계 음악계에 아이슬랜드의 이름을 최초로 알리기 전까지 이 나라의 음악은 지도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이 그룹 출신의 브욕(Bjork)이 국제적인 스타로 성장한 후에도 한동안 이 나라의 음악은 세계인의 관심권 밖에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시규르 로스(Sigur Ros), 꾸스 꾸스(Gus Gus), 뭄(Mum) 등 탁월한 뮤지션들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아이슬랜드는 순식간에 유럽 음악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아이슬랜드는 영국 정도의 국토면적을 지니고 있지만 인구는 28만 여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이렇게 적은 인구규모에도 불구하고 아이슬랜드 음악을 대표하는 레이캬비크 언더그라운드 씬은 엄청나게 폭 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앞서 언급된 국제적 스타들로 인해 이 나라의 음악이 단지 실험주의/전자음악 성향에 국한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기 쉽지만, 사실 레이캬비크 언더그라운드는 힙합과 테크노에서 인디 팝과 데쓰 메탈에 이르는 매우 다양한 음악적 취향을 포괄하고 있다. 아이슬랜드가 오늘날 새로운 음악 강국으로 급성장하게 된 것은 이처럼 풍부하고 비옥한 레이캬비크 언더그라운드 씬을 그 토양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카나다(Kanada)는 이 레이캬비크 언더그라운드가 배출한 아방가르드 록 밴드다. 아방가르드라고는 하지만 이 그룹은 기존의 아방가르드가 지닌 난해함이나 생소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 음악을 연주한다. 써커스의 쇼 밴드로 시작했다는 독특한 이력 때문인지 이들은 음악이 지닌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기능을 무엇보다도 중시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은 마치 한국의 관광버스 메들리나 서양의 파티음악처럼 순수하게 즐기기 위한 음악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은 자기들의 음악에 ‘알코-팝(Alko-pop = Alkohol + Pop)’이라는 다소 자조적인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이들이 이런 음악적 분위기와 사운드에 도달하는 방식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이들의 음악에는 이들의 광기 어린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수많은 경이와 넘치는 상상력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의 음악은 청취자를 주눅들게 하지 않으면서도 지성과 도전정신에 충만하며, 무모할 만큼 과감한 실험을 수행하면서도 현학적이거나 지루하지 않다. 카나다가 추구하는 즐거움은 퇴폐적이거나 파괴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순진무구하고 구김살 없는 즐거움이다. 오늘날의 대중문화에서 쉽게 발견하기 힘든 이런 종류의 즐거움은 1950년대 말-1960년대 초의 서구 대중문화에 가장 전형적인 형태로 구현되어 있다. 서핑, 롤러 스케이팅, SF, 만화, 마카로니 웨스턴 그리고 스파이 스릴러 등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대중 엔터테인먼트는 비록 지적이거나 예술적인 품격 면에서는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오락적인 면에서는 더 없이 높은 가치를 지닌다. 카나다는 자신들에 앞서 이러한 요소들을 활용했던 B-52’s, 디보(Devo), 레질로스(The Rezillos) 그리고 픽시스(Pixies) 등의 선례를 따라 자신들의 음악 속에 이를 적극적으로 통합한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에 의존한다고 해서 이들이 단순한 회고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이들은 단지 이 시기의 대중문화가 지닌 즐거움과 역동성을 자신들의 감성적 준거로 삼을 뿐이지 결코 그것의 스타일에 함몰되지는 않는다. 스타일의 측면에서 볼 때 이들이 다루는 범위는 오히려 역사상의 전 시기에 걸쳐 있다. 이들은 바로크 음악과 스윙 재즈로부터 컴퓨터 게임과 테크노 비트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음악적 소재를 망라해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카나다의 음악이 지닌 표면상의 즐거움이 유치함으로 전락하지 않는 것은 무엇보다도 맹렬한 실험정신과 세심한 음악적 고려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수 차례의 오버 더빙을 통해 만들어진 풍성한 사운드다. 이들은 다양한 악기와 수많은 효과음을 활용해서 매우 층이 두텁고 디테일이 풍부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특히 이들이 직접 채집한 동물 효과음과 아이슬랜드 영화의 다이알로그 그리고 각종 장난감 소리는 이 앨범 전반에 걸쳐 쉬지 않고 등장하면서 놀라움과 유쾌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들은 또한 독창적인 악기 편성이나 이질적 요소들의 병치를 통해 새로운 사운드에 도달하기도 한다. “Marion”에 들리는 드럼 머신과 두 대의 드럼 세트 그리고 하프의 조화라든가 “Revolting Woman”에 나타나는 록 기타의 강력한 리프와 팻 메쓰니(Pat Metheny) 풍의 가사 없는 보컬의 병치 등은 이 앨범이 지닌 독특한 사운드의 단지 일부만을 예증할 뿐이다. 음악의 형식에 있어서도 카나다는 상식을 뛰어 넘는 과감한 실험을 통해 매우 인상적인 음악적 효과를 연출해낸다. “갈대의 순정”을 연상케 하는 트로트 스타일의 피아노 인트로로 시작해서 서프 기타(Surf Guitar), 허브 앨퍼트 & 티후아나 브래스(Herb Alpert & The Tijuana Brass) 풍의 멕시칸 취주악, 프리 재즈 그리고 동남아 민속 음악 등이 온통 얽히고 설키는 “Counterpoint”는 이들의 실험정신을 드러내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곡은 마지막 트랙으로 실려 있는 “Skop Konunnar”라고 할 수 있다. 이 곡은 3분 안팎에 불과한 다른 트랙들에 비해 10분이 넘는 대작이면서도 앨범 전체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느린 템포의 곡이다. 전기 기타로 시작해서 피아노와 드럼 그리고 베이스와 오르간이 속속 가세하지만 중반부 이후로 넘어가면 오직 피아노만 남고 모든 악기가 철수해 버린다. 홀로 남은 피아노는 긴 코드만을 연주할 뿐 이렇다 할만한 솔로를 들려주지 않는다. 게다가 코드 사이의 여백은 곡이 진행될수록 점점 더 길어진다. 이전까지의 떠들썩한 파티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어놓는 이 곡은 이 앨범에서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고 또 그만큼 흥미로운 작품이다. 이 앨범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재미는 이들의 풍부한 유머를 도처에서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말썽을 부리는 꼬마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그 뒤를 쫓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린 “Demon Child”는 효과음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대상에 대한 매우 실감나는 묘사에 도달한다. 유머라고는 했지만 이 곡에서 묘사되는 광경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 더 없이 처절한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머틀리 크루(Motley Crue)의 그 유명한 드러머를 소재로 한 “Tommy Lee”는 하드 록과 올드 스쿨 힙합 그리고 싸이키델릭적인 전자 오르간이 결합된 흥미로운 트랙이다. 이들은 이 곡의 안팎에 개 짖는 소리의 효과음을 지속적으로 깔아놓고 있는데, 특히 곡이 끝나는 시점부터 무려 30초 동안이나 이어지는 무반주 개소리는 상당히 기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여기서는 그냥 각자에게 그것을 맡기기로 한다. 1980년대 풍의 촌스러운 컴퓨터 게임 음악을 재즈와 록으로 변주해 나가는 “Nitro”의 기발함과 존 보냄(John Bonham)적인 드러밍 위에서 로큰롤과 [미션 임파서블] 테마 음악의 결합을 시도한 “Arkitektur”의 의외성도 이 앨범의 즐거움을 배가하는 요소들이다. 히딩크 식의 표현을 빌자면 이 앨범은 ‘멀티 펑션 플레이어’다. 그야말로 관광버스 메들리로 이용할 수도 있고 음대의 교재로 사용하기에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 앨범은 마치 홀로그램 사진처럼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상이 보이는 다면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다면성은 카나다가 여기서 수행하는 과감하고 규범 파괴적인 실험의 산물로 보인다. 이들은 그 동안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만 여겨졌던 사운드와 스타일을 마구 뒤섞음으로써 이 앨범에 백과사전적인 풍부함을 부여한다. 이러한 풍부함으로 인해 청취자는 각자의 기호에 따라 어떠한 방향에서도 이 앨범에 접근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들의 음악이 단순히 이것 저것 섞는 것에서 끝나고 말았다면 다면성이나 풍부함 따위의 말들은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음악적으로도 훌륭한 결과를 산출해 냄으로써 자신들의 실험을 더욱 의미있는 것으로 만든다. 이들이 이런 결과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들이 하고자 했던 것에 대한 완전한 확신과 철저한 이해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만일 이들이 이러한 확신과 이해를 결여했다면 이들의 음악은 단지 계산된 느낌 밖에 주지 못하는 조잡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것 없이 음악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사실 이것은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생각만큼 흔한 것도 아니다. 20011226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8/10 수록곡 1 La Go 2 Dear Ragnheiður 3 Nitro 4 Demon Child 5 Hooker Express 6 Marion 7 Arkitektur 8 Tommy Lee 9 Revolting Woman 10 Counterpoint 11 Skop Konunnar 관련 사이트 Thulemusik의 Kanada 사이트 http://www.thulemusik.com/kanada.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