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31110352-0401thedbsdB’s – Stands For deciBels/Repercussion – Collectors’ Choice Music, 1981/1982 (2001 재발매)

 

 

마침내 재등장한 파워 팝의 전설

미치 이스터(Mitch Easter)는 파워 팝(power pop)을 ‘1970년대에 활동하면서도 1960년대가 더 좋았다고 생각한 뮤지션들이 만든 음악’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알렉스 칠튼(Alex Chilton)은 이 음악을 ‘미국인 중 자기가 영국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음악’이라고 규정했다. 이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해 보면 파워 팝은 1960년대 초 브리티쉬 인베이전 시대의 음악을 모델로 삼아 미국에서 만들어진 음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물론 영국에서도 파워 팝의 중요한 밴드들이 다수 배출되기는 했지만 크게 볼 때 이것은 미국적 현상이었다). 파워 팝이 이상으로 삼는 것은 팝의 멜로디와 록의 파워가 잘 조화된 음악이다. 이는 언뜻 들으면 대중적 인기의 보증수표처럼 들린다. 팝과 록의 가장 좋은 것만을 모아놓은 음악이 어찌 인기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현실은 파워 팝이라는 장르에 그리 우호적이지 못했다. 록을 좋아하는 사람은 록만을 들으려 했고 팝을 좋아하는 사람은 팝 밖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파워 팝의 성공을 가로막았던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도 이 장르에 내려진 철저하고 뿌리깊은 저주였다.

빅 스타(Big Star)와 배드핑거(Badfinger)가 비운에 찬 음악인생을 마감한 이래로 파워 팝 밴드들은 마치 주문에라도 걸린 듯 이들의 불행을 반복해 왔다. 비록 이들처럼 멤버들의 목숨을 잃는 극단적인 경우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역사상 가장 뛰어난 파워 팝 밴드들은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히는 저주에 시달리며 힘겹게 음악활동을 해나가야만 했다. 슈즈(Shoes)는 정성 들여 준비한 데뷔 앨범의 마스터 테이프를 홍수로 잃었고 드와이트 트윌리 밴드(The Dwight Twilley Band)는 내놓는 앨범들마다 1-2년씩 발매가 지체되었다. 심지어 파워 팝의 명 그룹 중 드물게 인기를 누린 칩 트릭(Cheap Trick)마저도 출세작 [At Budokan]이 나오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을 무명의 늪에서 허덕여야만 했다. 이들이 예상치도 않았던 일본에서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면 이들의 운명이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처럼 불운에 시달리던 파워 팝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미국 음반산업의 책략이었다. 이들은 파워 팝을 외적으로는 브리티쉬 펑크의 상륙을 막아내고 내적으로는 디스코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양날의 칼로 사용하려 했다. 이들의 이러한 전략적 계산은 낵(The Knack)이라는 밴드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예상대로 낵은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통해 미국의 음악계는 하루 아침에 파워 팝의 열기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러나 파워 팝의 열기를 주도했던 낵은 그것을 끝내는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데뷔작의 포맷을 노골적으로 반복했던 이들의 두 번째 앨범은 음반사와 결탁한 이들의 사기성을 백일하에 드러냄으로써 한창 고조되고 있던 파워 팝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파워 팝은 하루 아침에 웃음거리로 전락했고 무가치한 음악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수많은 파워 팝 밴드들은 각자의 능력에 상관없이 파워 팝을 연주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매체와 평단의 조롱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러한 정황으로 인해 1980년대의 파워 팝은 언더그라운드 컬트 음악으로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떤 음악 장르보다도 대중성을 지향하는 파워 팝이 컬트 음악이 되었다는 사실은 퍽 아이러니한 일이다. 노쓰 캐롤라이나 출신의 4인조 그룹 디비스(The dB’s)는 이처럼 암울했던 1980년대 파워 팝이 배출한 최고의 밴드 중 하나다. 크리스 스태미(Chris Stamey)와 피터 홀서플(Peter Holsapple)이라는 두 명의 일급 송라이터를 중심으로 한 이 그룹은 파워 팝 역사상 가장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을 연주했던 밴드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음악적 탁월함과는 무관하게 이들 역시 파워 팝에 내려진 잔인한 저주를 피하지는 못했다. 이들이 겪어야만 했던 연속적인 불운은 빅 스타나 드와이트 트윌리 밴드 등이 경험했던 것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고향인 노쓰 캐롤라이나에서 뉴욕으로 근거지를 옮긴 디비스는 뉴욕 언더그라운드 씬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당시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던 영국 레이블 알비온(Albion)과 계약을 체결했다. 이 레이블을 통해 발표된 이들의 데뷔 앨범 [Stands For deciBels]는 예상대로 영국 평단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으며 세상에 등장했다. 그러나 뉴 로맨틱스와 신쓰팝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있던 당시의 영국 음악계에서 이들과 같은 기타 팝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국에서의 판매는 극히 저조했고 이로 인해 미국 시장 발매를 추진하던 알비온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이들은 이 앨범이 스웨덴 앨범 차트 20위권에 진입한 것을 최대의 성공으로 자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에 나온 두 번째 앨범 [Repercussion]은 전작의 음악적 탁월함을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프로듀서 스콧 릿(Scott Litt)의 영입으로 사운드에 보다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다. 이 앨범 역시 평단의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상업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앨범이 발매된 직후 알비온이 도산한 때문이었다. 결국 이 앨범은 들어본 사람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연속되는 불운에 좌절한 크리스 스태미는 더 이상의 그룹 활동에 의욕을 잃고 디비스를 떠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이들은 피터 홀서플을 중심으로 그룹을 재정비하고 미국 레이블 베어스빌(Bearsville)과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은 베어스빌에서의 첫 작품으로 견실한 컨트리/팝 앨범 [Like This]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베어스빌은 배급사인 워너 브라더스와의 재계약에 실패하고 레이블 소유주인 앨버트 그로스만(Albert Grossman)마저 급사하는 등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디비스의 새 앨범에 신경을 써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한 번의 좌절을 겪은 이들은 이번에는 승승장구하던 인디 레이블 IRS와 계약을 맺고 4집 앨범 [The Sound Of Music]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의 불운은 여기서도 끝나지 않았다. IRS는 같은 시기에 출반된 R.E.M.의 [Document]를 성공시키는데 모든 역량을 투입했고 심지어 R.E.M.의 앨범을 찍어내기 위해 이들의 앨범을 출시 몇 주만에 절판시켜 버리는 초 강수까지 동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들은 결국 앨범 [The Sound Of Music]을 끝으로 비운에 찬 그룹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디비스는 파워 팝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룹이다. 빅 스타와 배드핑거가 창시하고 칩 트릭과 슈즈 그리고 레코즈(The Records)와 브람 차이코프스키(Bram Tchaikovsky) 등이 전형을 확립한 파워 팝은 디비스의 등장을 통해 한 단계 더 진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들은 1970년대 파워 팝 그룹들에 의해 확립된 장르의 전형을 싸이키델릭과 포스트 펑크 그리고 아방가르드 등의 폭넓은 음악적 요소를 활용해 해체/재구성함으로써 1980년대 파워 팝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장르의 발전에 있어서 이들이 남긴 가장 중요한 공헌은 뭐니뭐니 해도 쟁글 팝의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물론 이들이 쟁글 팝을 발명한 유일한 밴드는 아니다. 이들과 같은 시기에 유사한 사운드에 도달한 필리스(The Feelies)의 공헌도 잊어서는 안된다). 1960년대 버즈(The Byrds)의 기타 사운드를 1970년대 파워 팝의 맥락에 접목시킨 이들의 쟁글 팝은 이후 R.E.M.을 비롯한 수많은 추종자들을 탄생시켰고 나아가 1980년대 미국 인디 팝의 가장 중요한 스타일 중 하나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디비스의 첫 두 앨범 [Stands For deciBels]와 [Repercussion]은 이들 최고의 작품들일 뿐만 아니라 파워 팝의 역사에 길이 남을 고전들이다. 이 두 앨범이 특히 중요한 것은 (몇 년 전에 발표된 데모 모음집 [Ride The Wild Tom Tom]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디비스 시절 크리스 스태미와 피터 홀서플의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경쟁적인 긴장관계를 접할 수 있는 유이(唯二)한 기록물이라는 점이다. 비록 팝 멜로디를 중시하는 접근을 공유하고는 있지만 이 두 사람의 음악적 성향은 크게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피터 홀서플이 흠결 없이 완벽한 교과서적 팝 음악을 추구한다면 크리스 스태미는 변칙적인 멜로디와 파격적인 형식 그리고 디테일에 충실한 음악을 선호한다. 이들의 이러한 차이는 [Stands For deciBels]에 실린 각자의 오마주 작품들에서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다. 피터 홀서플이 “Moving In Your Sleep”에서 빅 스타의 [Sister Lovers]적인 서정에 접근하고 있는데 비해 크리스 스태미의 “She’s Not Worried”는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Pet Sounds]와 같은 실험주의 노선을 취한다.

여러 곡에서 사용되는 페이드 아웃 엔딩이 다소 옛스러운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이 앨범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팝송 모음집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번 들으면 쉽게 뇌리를 떠나지 않는 피터 홀서플의 틴에이지 송가와 파워 팝에 대한 일반적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크리스 스태미의 비범한 소품은 이 음반을 명반으로 만드는데 동등하게 기여하는 일등공신들이다. “Black And White”, “We Were Happy There”, “Amplifier”, “Nothing Is Wrong” 등의 곡에서 빛을 발하는 피터 홀서플의 재능은 [Repercussion]의 마지막 트랙 “Neverland”에서 그 정점에 도달한다. 쟁글 팝적인 기타와 파워풀한 멜로디 그리고 비장감 있는 분위기가 어우러진 이 곡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파워 팝의 명곡 중 하나다. 수많은 백워드 루핑과 불협화음 그리고 분열적 악곡구조로 이루어진 크리스 스태미의 작품들 중에는 “Cycles Per Second”, “I’m In Love”, “From A Window To A Screen”, “Ask For Jill”, “In Spain” 등이 걸작으로 꼽힐 만하다. 데뷔 앨범보다는 [Repercussion]에서 더욱 성장한 면모를 보이는 피터 홀서플에 비해 크리스 스태미의 실험성은 두 앨범 모두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디비스의 해산 이후 IRS는 뒤늦게 이 두 앨범을 미국 내에서 재발매한 적이 있다. 그러나 워낙 소량이 발매된 나머지 이 앨범들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더 이상의 재발매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인해서 이들의 음반은 갈수록 희귀해졌고 이들의 LP가 중고 시장에서 천정부지의 가격으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몇 년 전 독일계 레이블인 라인(Line)이 이 두 앨범을 한 장의 씨디에 담아 발매함으로써 어느 정도 상황이 개선되는 듯도 했지만 이것 역시 구하기는 대단히 어려웠고 값도 비쌌다. 근래 들어 라인은 [Neverland]라는 제목으로 이 두 앨범의 합본을 컴필레이션으로 위장해 재발매하고 있다. 그러나 EMI 자회사인 컬렉터스 초이스 뮤직(Collectors’ Choice Music)이 드디어 이 음반을 출시함으로써 이제 라인 판을 구하려고 고생할 필요는 없게 됐다. 컬렉터스 초이스 뮤직 버전은 EMI의 배급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구입이 훨씬 용이할 뿐 아니라 크리스 스태미가 직접 리마스터링에 참여함으로써 지금까지 나온 버전 중 가장 훌륭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물론 대기업이 뛰어들었다고 해서 이 음반을 언제든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안심하기는 아직 이르다. ‘있는 놈들이 더하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11226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10/10

수록곡
1. Black And White
2. Dynamite
3. She’s Not Worried
4. The Fight
5. Espionage
6. Tearjerkin’
7. Cycles Per Second
8. Bad Reputation
9. Big Brown Eyes
10. I’m In Love
11. Moving In Your Sleep
12. Judy
13. Living A Lie
14. We Were Happy There
15. Happenstance
16. From A Window To A Screen
17. Amplifier
18. Ask For Jill
19. I Feel Good (Today)
20. Storm Warning
21. Ups And Downs
22. In Spain
23. Nothing Is Wrong
24. Neverland
25. Soul Kiss

관련 사이트
The dB’s 공식 사이트
http://www.thedbsonl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