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31103504-0401pinkfloyd_saucefulsecretsPink Floyd – A Saucerful of Secrets – EMI/Capitol, 1968

 

 

환각 여행의 끝

[월간 팝송] 같은 옛 시절 잡지들에서 핑크 플로이드를 특집으로 다룰 때 이 앨범의 제목은 종종 ‘비밀의 비행접시’ 쯤으로 번역되곤 했는데, 지금의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이는 이른바 스페이스 록(space rock)의 창시자로서 이미지를 부각시킨 ‘혜안’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40분이 채 안 되는 길지 않은 음반에 접싯물마냥 찰랑찰랑 담겨있는 비밀들이란 실은 이미 다 알려진 지 오래다. 데뷔 앨범의 주역이었던 시드 배릿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는 이 음반을 녹음할 때쯤 파국에 달했고, 따라서 밴드는 물론이고 음반사마저도 그를 붙잡아 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음악적, 상업적 성공의 열쇠를 쥐고 있었던 것이 바로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여 졸지에 리더 역할을 떠맡게 된 로저 워터스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밴드를 새로운 음악적 방향으로 밀어 올리게 되지만 이는 주로 이 다음에 속하는 얘기고, 여기까지는 여전히 배릿의 영향력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올 뮤직 가이드(allmusic.com)를 비롯한 여러 매체의 리뷰에서 이 앨범을 과도기적 작업으로 치부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배릿의 유일한 작품인 “Jugband Blues” 그리고 “Remember a Day”나 “Corporal Clegg”같은 곡들은 언뜻 들으면 동시대 비틀즈의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은 유쾌한 싸이키델릭 트립의 전형이고, 워터스의 곡인 “Let There Be More Light”는 “Astronomy Domine”와 “Interstellar Overdrive”같은 초기 스페이스 록의 스타일을 대체로 따른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전작의 틀을 답습한다.

그러나 이 앨범을 걸작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범작(凡作)은 넘어서게끔 만드는 것은 희미하게나마 읽어낼 수 있는 미래의 경향들이다. 예컨대, 불길한 오르간 음조가 전반부를 장식하는 타이틀 트랙 “A Saucerful of Secrets”는 10분이 좀 넘을 때쯤이면 불협화음이 협화음으로 바뀌고 고전음악 풍의 합창이 깔리면서 [Atom Heart Mother]에서의 아트록을 예시한다. 배릿의 광기가 주로 음악적인 유쾌함으로 표현됨으로써 조울증(manic-depression)의 밝은 면을 상징한다면, “Set the Controls for the Heart of the Sun”의 최면적이고 음산한 기타 드론과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워터스의 경향이 그 반대인 어두운 면에 속함을 드러낸다. 이렇듯 유쾌함과 음울함이 공존하는 이 앨범은 싸이키델리아로의 도취 뒤끝에 불쾌한 환각(bad trip)을 겪고 있는 밴드의 자화상이며, 그로부터 빠져 나오려는 힘겨운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20011227 | 김필호 antioedipe@hanmail.net

6/10

수록곡
1. Let There Be More Light
2. Remember a Day
3. Set The Controls For The Heart Of The Sun
4. Corporal Clegg
5. A Saucerful of Secrets
6. See Saw
7. Jugband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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