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31095031-0401pinkfloyd_finalcutPink Floyd – The Final Cut – Sony/Columbia, 1983

 

 

고전 록의 마지막 양심

1980년대 이후의 핑크 플로이드는 이름만 같을 뿐 이미 이전의 그 밴드가 아니다. 제목이 보여주듯이 로저 워터스는 아마도 이 앨범을 끝으로 밴드를 접고 싶었겠지만, 일이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음은 잘 알려진 바이다. 돌이켜 보건대 이른바 고전 록의 황금기(the golden age of classic rock)라 할 수 있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록 밴드가 어떻게 반문화(反文化)의 에너지와 예술가적 태도, 그리고 상업적 성공 전략을 조화시킬 수 있었던가를 과시했던 핑크 플로이드는 갈기갈기 찢겨 잔해만 남은 채 새 시대로 접어들었고,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워터스의 음울한 독백으로 채워진 이 음반이다.

“내게 진실을 말해 줘, 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는지”로 시작되는 첫 곡 “Post War Dream”은 록 음악의 황금기가 2차 대전 후 자본주의의 황금기와 일치한다는 ‘진실’을 암시하는데, 이는 마지막의 울부짖음, “전후의 꿈은 어떻게 된 거지? 오 매기(당시 영국 수상 마거릿 대처를 지칭), 우리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로 재확인된다. 앨범 전체는 당시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격돌했던 포클랜드(Falkland) 전쟁을 배경으로 강한 반전(反戰) 메시지를 전면에 띠고 있지만, 그 음조는 희망에 차서 ‘전쟁 대신 사랑을’ 노래하는 히피즘의 목소리와는 정 반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묵시록적이다. 연속선상에 놓여 있는 전작 [The Wall]과 비교해 볼 때, 음악 면에서든 메시지 면에서든 훨씬 헐벗은 듯한 느낌은 워터스의 암울한 세계관을 전달하는 데 오히려 더 효과적이다.

광기(狂氣)가 핑크 플로이드 음악을 끌어간 영원한 주제였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바, 이는 미치광이 천재 시드 배릿이 밴드를 떠난 후에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Brain Damage”나 “Shine on You Crazy Diamond”에서 그려지는 분열증적인 광기는 워터스가 점점 더 정치적으로 급진화되어감에 따라 편집망상증적인 것으로 뒤바뀐다. 석유 위기 이후 전후 자본주의의 쇠퇴와 서유럽-북미 신보수주의 집권이 초래한 사회정치적 갈등과 억압, 포클랜드 전쟁이 상기시키는 2차 대전시 전사(戰死)한 아버지의 이미지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심리적 억압으로부터 워터스는 편집망상증의 시선 뒤로 숨음으로써 해결책을 찾는다 (“Paranoid Eyes”).

광기 덕분에 이미 한차례 위기를 겪은 바 있는 밴드였지만, 두 번째 찾아온 위기는 더욱 치명적이었고, 밴드 이름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워터스와 나머지 멤버들의 법정 투쟁은 또한 록을 둘러싼 음악산업이 그 황금시대는 지났을지라도 여전히 쥐어 짜낼 이윤이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결국 이 앨범은 1970년대 주류 록음악이 상업 라디오와 대형 음반사들의 카탈로그에서 ‘고전 록’으로 박제화되기 시작할 무렵 내뱉은 마지막 사회적 양심선언이 되는데, 대개 그렇듯이 선언의 당사자는 사회적 지위를 박탈당한다. 그리하여 이 늙어 가는 공룡 밴드에서 ‘마지막으로 짤린’ 것은 다름 아닌 로저 워터스였다.

탐 래스킨(Tom Laskin)이라는 평론가는 1970년대의 프로그레시브 록이 고전 음악이나 재즈와 같은 ‘옛 음악’ 형식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퇴행적 록(regressive rock)’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고 비꼰 바 있는데, 30여 년이 지난 요즘도 여전히 핑크 플로이드나 예스, 심지어 무디 블루스(Moody Blues) 같은 밴드들이 가끔씩 난데없이 출몰해서 ‘그때 그 시절’을 재탕 삼탕하는 덕택에 이는 본뜻과 무관하게 참으로 그럴 듯한 표현이 되어버렸다. 반면, 끝내야 할 때를 제대로 알고 있었던 워터스야말로 진정한 진보적(progressive) 록커였던 셈이다. 그의 급진주의적 정치 성향을 논외로 하고서라도. 20011226 | 김필호 antioedipe@hanmail.net

5/10

수록곡
1. The Post War Dream
2. Your Possible Pasts
3. One of the Few
4. The Hero’s Return
5. The Gunners Dream
6. Paranoid Eyes
7. Get Your Filthy Hands off My Desert
8. The Fletcher Memorial Home
9. Southampton Dock
10. The Final Cut
11. Not Now John
12. Two Suns in the Sunset

관련 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는 메아리를 위해 내 안에 벽을 쌓았다 – vol.4/no.1 [20020101]
핑크 플로이드, 영욕의 35년의 디스코그래피(incomplete version 1.1) – vol.4/no.1 [20020101]
Pink Floyd [Echoes: The Best Of Pink Floyd] – vol.4/no.1 [20020101]
Pink Floyd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 – vol.4/no.1 [20020101]
Pink Floyd [A Saucerful Of Secrets] – vol.4/no.1 [20020101]
Pink Floyd [Ummagumma] – vol.4/no.1 [20020101]
Pink Floyd [Atom Heart Mother] – vol.4/no.1 [20020101]
Pink Floyd [Meddle] – vol.4/no.1 [20020101]
Pink Floyd [Obscured By Clouds] – vol.4/no.1 [20020101]
Pink Floyd [The Dark Side Of The Moon] – vol.4/no.1 [20020101]
Pink Floyd [Wish You Were Here] – vol.4/no.1 [20020101]
Pink Floyd [Animals] – vol.4/no.1 [20020101]
Pink Floyd [The Wall] – vol.4/no.1 [20020101]
Pink Floyd [A Momentary Lapse Of Reason] – vol.4/no.1 [20020101]
Pink Floyd [The Division Bell] – vol.4/no.1 [20020101]
Roger Waters [The Pros And Cons Of Hitch Hiking] – vol.4/no.1 [20020101]
Roger Waters [Amused To Death] – vol.4/no.1 [20020101]
Syd Barret [The Madcap Laughs] – vol.4/no.1 [20020101]

관련 사이트
Pink Floyd 공식 사이트
http://www.pinkfloyd.com
Pink Floyd 팬 사이트
http://www.pinkfloy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