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31092839-0401rogerwaters_amusedRoger Waters – Amused To Death – ColumbiaSony, 1992

 

 

매스 미디어와 인류문명에 대한 고독한 비판

“재미있어서 죽을 지경”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그런데 뭐가? 앨범 표지의 TV를 들여다보는 원숭이의 사진을 보면 무엇을 말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그러니까 매스 미디어, 그 중에서도 TV에 대한 비판이 이 앨범의 테마라는 사실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이는 TV가 상징하는 ‘문명(civilization)’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로저 워터스의 음악적 궤적을 존중한다면 전후(戰後) 현대사에 비판([The Wall], [The Final Cut])으로부터 무의식에 대한 탐구([Pros and Cons of Hitch Hiking])를 거쳐 인류문명 전체에 대한 비판에 도달한 셈이다. 그래서 이 앨범은 ‘당연히’ 컨셉트 앨범이고, 트랙 사이에 1초의 포즈(pause)도 없다.

어쨌든 그 직접적 계기는 1991년의 걸프전이다. 걸프전의 의미는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된 최초의 전쟁’이라는 점이다. 또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종교전쟁’의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신(神)과의 대면은 불가피하다. “신이 원하는 것”이라는 제목의 곡이 3부작으로 담겨져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걸프전의 두 가지 측면은 “역사는 바보들을 위한 것이고 / 게르만인은 유태인을 죽이고 / 유태인은 아랍인을 죽이고 / 아랍인은 인질들을 죽이고 / 그리고 바로 이런 것들이 오늘날의 뉴스다”(“Perfect Sense Part 1”)는 가사에 압축되어 표현된다. 특유의 경멸적이고 냉소적 음조로 중얼거리는 로저 워터스의 보컬은 실제 나이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고 가사의 양은 1970년대 중반까지의 핑크 플로이드 시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방대’하다.

워터스의 미디어 비판은 해적 라디오 방송국의 DJ를 주인공으로 한 1987년작 [Radio K.A.O.S.]의 연장선상에 있다. 불행히도 이 앨범은 평단과 팬으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흥행 면에서도 이제는 “Us and Them(!)”의 관계가 되어버린 (로저 워터스 없는) 핑크 플로이드의 첫 작품 [A Momentary Lapse of Reason]에게 완패했다. ‘메시지의 과잉과 사운드의 빈약함’이라는 결과, 로저 워터스 없는 핑크 플로이드도 속 빈 강정이지만 다른 멤버 없는 로저 워터스도 ‘몸통 없는 머리’임을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여기서는 그 동안 워터스의 백 밴드였던 블리딩 하트 밴드(The Bleeding Heart Band)가 아니라 유명한 세션맨들이 초빙되었다. 무엇보다도 기타를 연주한 제프 백(Jeff Beck)이라는 이름에서 화려함을 엿볼 수 있다. “It’s a Miracle” 등에서 보여주는 그의 솔로 연주는 날카로우면서도 서정적이다. 한편 이글스의 지주였던 돈 헨리(Don Henry)도 한 트랙(“Watching TV”)에서 워터스와 함께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다. 워터스를 잘 모르거나 혹은 워터스의 메시지가 ‘지겨운’ 사람의 귀라도 확 뜨이는 곡이 바로 이 곡이다.

이 곡을 포함하여 그 뒤에 배치되어 앨범을 마무리하는 세 트랙 “Three Wishes”, “It’s A Miracle”, “Amused To Death”은 ‘싱글’로도 손색없는 곡들이다(물론 조금 길기는 하다). 그 중에서도 불길한 신시사이저 라인과 피아노 타건, 뒤에는 기타 솔로와 혼성합창이 더해져 묵시록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It’s a Miracle”은 다 듣고 난 뒤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다. 그가 말하는 ‘기적’이란 “안데스 산맥에 펩시콜라가 있고, 티벳 고원에 맥도날드가 있는”, 그리고 “전능한 신의 은총과 시장의 압력 하에 인간이 문명화된” 현대사회의 놀라운 현실이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이 왜소한 존재는 TV 스크린 앞에 앉아 있다 / 생각할 사고도, 흘릴 눈물도 / 최후의 숨결 하나까지 모두 바짝 말리도록 빨아 먹힌” 존재이고, 그러면서도 “이 종족은 좋아서 죽을 지경이다”라는 것이 앨범의 마무리하는 가사다.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염세주의일 뿐 아닌가. 그걸 넘어서는 것은 없는가. 희망은 “Watching TV”의 마지막에 역설적으로 표현된다.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러밍이 이끄는 이 곡은 천안문 사태에서 총을 맞아 죽은 “빛나는 머리칼과 완벽한 가슴, 고귀한 희망과 아먼드같은 눈을 가진 엔지니어의 딸”에 대해 노래하는 곡이다. 물론 화자는 TV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잠시 후렴구의 가사를 번역해 보자. 이 곡이 ‘희망의 송가’인 이유는 가사의 제일 마지막에 나와 있다.

그녀는 크로마뇽인과 다르다.
앤 볼린(Anne Boleyn)과 다르고
로젠버그(Rosenbergs)와 다르고
무명의 유태인과도 다르다.
무명의 니카라구아인과도 다르다.
절반의 수퍼스타, 절반의 희생양,
그녀는 새로운 개념의 승리자 스타다.
도도(Dodo)와도 다르고
캉카보노(Kankanbono)와도 다르고
아즈텍(Aztec) 인디오와도 다르고
체로키(Cherokee) 인디언과도 다르다.
그녀는 만인의 자매이고,
우리의 미래의 상징이다.
그녀는 우리의 해방을 도와줄
50억 인구 중의 한 명.
왜냐하면 그녀는 TV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남는 문제가 있다. 이 앨범 역시 ‘훌륭한 메시지를 설파한 록 뮤지션은 많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아온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경험적 진리로부터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20011225 | 신현준 homey@orgio.net

8/10

ps
로저 워터스는 이 앨범을 발표하고는 일체의 공연을 하지 않았다. 1990년대 내내 그는 오페라 [Ca Ira]의 작업에 매달렸다. 그가 록 공연장에 돌아온 것은 1999년이다. 1999년과 2000년의 공연은 2000년에 [In the Flesh]라는 라이브 앨범으로 발표되었다.

수록곡
1. The Ballad Of Bill Hubbard
2. What God Wants, Part I
3. Perfect Sense, Part I
4. Perfect Sense, Part II
5. The Bravery Of Being Out Of Range
6. Late Home Tonight, Part I
7. Late Home Tonight, Part II
8. Too Much Rope
9. What God Wants, Part II
10. What God Wants, Part III
11. Watching TV
12. Three Wishes
13. It’s A Miracle
14. Amused To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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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Roger Waters 공식 사이트
http://www.rogerwaters.net
Roger Waters 레어리티스 mp3
http://www.geocities.com/Paris/7150/waters.htm
[Amuse to Death] 가사
http://www.pinkfloydfan.net/atdlyric.php#perfec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