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16020359-0324wherethestoryends웨어 더 스토리 엔즈(Where The Story Ends) – 안내섬광(眼內閃光) – 문라이즈, 2001

 

 

이야기가 끝난 곳에 남은 사운드

흡사 국민학교(not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서 100원에 팔던 은박 색종이를 연상케 하는 앨범의 겉 표지를 열어보면, 거기엔 ‘pump up the volume & use your head-phone please!!’라고 적혀있고, 그 아래엔 ‘음악 중에 나오는 잡음은 ‘의도적’인 것입니다’ 라는 설명이 부연되어 있다. 겉장만 열어 봐도 이 앨범이 테크노/일렉트로니카의 범주에 포함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마녀, 여행을 떠나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등의 곡으로 알려진 그룹 코나(Kona)의 리더로 활동 중인 배영준을 중심으로 한재원, 김상훈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웨어 더 스토리 엔즈(Where The Story Ends)의 첫인상은 어쨌든, 그렇게 낯익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느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앨범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코나와의 비교가 불가피할 것 같다. 1993년 “그녀의 아침”이라는 곡으로 데뷔한 코나는 아기자기한 노랫말에 보사 노바, 탱고 등의 리듬을 바탕으로 하는 깔끔한 멜로디의 ‘가요’를 들려주던 그룹으로 기억된다. 베스트 앨범을 포함하여 모두 6장의 앨범을 발표한 이 ‘오래된’ 그룹이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팬 서비스 차원으로 제공하던 작업들이 단초가 되어 문라이즈 레이블에서 발매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앨범 [眼內閃光]이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는 코나의 이전 앨범들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아기자기함보다는 샘플링된 전자 효과음과 가요 형식 안에 갇힌 배영준의 미성이 지속적으로 충돌하는 낯선 풍경이 포착된다.

피아노의 어두운 도입으로 시작하여 곡이 진행되는 동안 불안한 느낌을 주는 샘플링과 줄곧 충돌하는 서정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인 “Loveless”를 시작으로 보사 노바 리듬에 삽입된 날카로운 시퀀싱과 루프(loop)가 세련된 느낌을 주는, 특히 ‘신선하게 냉동된 추억’이라는 노랫말이 인상적인 “침식”과 드럼앤베이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그루브와 맑은 피아노 음색이 조합되는 “Stargazer” 등의 곡들은 웨어 더 스토리 엔즈가 코나와는 전혀 다른 지점의 감성을 재현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밖에 윤상에 대한 오마주(homage)인 가톨릭 성가 분위기의 “기도”, 볼빨간 2집 [야매]에서 ‘에레나 정’이란 예명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코스모스(Cosmos)의 여성 보컬 정우민의 맑은 목소리에 신서사이저 시퀀싱을 입혀 역설적으로 황량한 느낌을 주는 “Going Home”, 그리고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가 무인도에서 작업하고 싶은 소재로 꼽았다는 일화에서 제목을 빌려온 하우스 리듬의 경쾌한 그루브 “眼內閃光” 등의 곡들도 주목할 만하다. 앨범의 말미에 등장하는 토마스 쿡(마이 앤트 메리의 정순용)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기도”의 리믹스 버전이나 헤비하게 진행되는 “Run Like Hell”, “Spider In The Brain”은 앞의 곡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주는 곡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앨범이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감상은 다르겠지만, 이 앨범은 한국 대중음악이 이미 내면화한 ‘가요’ 형식에 기초한 테크노/일렉트로니카의 성공적인 작업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이 앨범은 노래(가요)가 서사(story telling)에서 표상(imagery)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이야기가 해체된 지점에 남은 사운드와 사운드의 충돌이 만들어내는 풍경조차 진공의 공간으로 날아가 버리는 느낌. 이것이 너무 오버라고 생각된다면, 이야기가 끝난 곳에서 다시 무엇이 시작될까 하는 기대만이라도 품어보는 것은 어떨까. 20011206 | 차우진 djcat@orgio.net

7/10

수록곡
1. Loveless
2. 침식
3. Stargazer
4. 기도 (Prayer-Original mix) homage to 윤상
5. Love
6. Going Home (Puritanical mix)
7. 안내섬광 (phos-phene)
8. 의뢰인 (Trouble is my business)
9. Run like hell
10. Spider in the brain (Inst)
11. 기도 (Prayer-Workaholic mix)
12. Going Home (Decadent mix)

관련 글
튜브뮤직 인터뷰 (2001년 12월)

관련 사이트
팬이 운영하는 코나의 사이트(웨어 더 스토리 엔즈의 페이지가 마련되어있다)
http://kona.pe.kr/main.htm
문라이즈 공식 사이트
http://moonris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