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16013103-0324noughtNought – Nought – Shifty Disco, 2000

 

 

부당하게 외면된 포스트록의 걸작

이 앨범은 놀라운 작품이다. 이것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은 픽시스(Pixies)나 모과이(Mogwai)를 처음 들었을 때의 그것에 버금갈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노트(Nøught)는 이 두 밴드만큼의 지명도를 누리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픽시스와 모과이에 쏟아졌던 열광적 반응과 달리 이들은 자국인 영국 언론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평단이 로켓 프롬 더 크라입트(Rocket From The Crypt)로부터 앳 더 드라이브 인(At The Drive-In),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Queens Of The Stone Age), 스트록스(The Strokes) 그리고 화이트 스트라이프스(The White Stripes)에 이르는 일련의 미국산 밴드들에 대해 열렬한 찬사를 퍼붓고 있는 동안 정작 이들과 같은 본국의 실력 있는 밴드들은 로컬 씬의 골목대장 노릇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트는 현재 옥스포드 씬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는 실험주의/노이즈 밴드다. 옥스포드는 1990년대 초 라이드(Ride)와 라디오헤드(Radiohead)를 배출함으로써 성가를 올리기도 했으나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만한 밴드를 키워내지 못했다. 노트는 라디오헤드 이후 이 곳에서 실로 오랜만에 등장한 주목할만한 밴드다. 모두가 과거를 향해서만 나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록 음악계에서 이들은 미래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몇 안 되는 밴드 중의 하나다. 이 점에서 이들은 라디오헤드와 모과이 그리고 토터스(Tortoise) 등과 같은 미래지향적 밴드들과 그 전망을 공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보컬을 사용하지 않는 연주 중심의 밴드라는 점에서 모과이나 토터스 같은 그룹들과는 더욱 더 밀접한 연관을 형성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은 ‘모과이가 연주한 토터스의 음악’이라고 묘사할 수 있을 정도로 록 사운드와 재즈 이디엄이 잘 어우러진 음악을 들려준다. 물론 이런 식의 거친 단순화가 이들 음악이 지닌 풍부함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노트는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로부터 소닉 유쓰(Sonic Youth)로 이어지는 노이즈 록 전통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그룹이다. 통상적으로 음악적 전통이나 영향관계 등의 말은 스타일의 유사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벨벳 언더그라운드나 소닉 유쓰의 음악에서 노트의 음악을 유추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그것은 노트가 ‘스타일’이 아닌 ‘사운드’의 측면에서 이들 밴드의 음악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일’은 21세기 록 음악의 보편적 화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오늘날의 음악에서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노트는 자신들의 음악적 모색에 있어 스타일보다는 ‘사운드’에 중점을 둠으로써 이러한 조류와 선을 긋는다. 이런 맥락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소닉 유쓰가 노트의 음악에 미친 영향은 노이즈의 활용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제한된다. 노트는 이 두 그룹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이들의 분방하고 무절제한 노이즈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그것을 보다 신축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음악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수단으로 발전시킨다.

노이즈 록의 전통을 기반으로 삼아 노트가 축조하는 음악세계는 록과 재즈 그리고 클래식이 혼연일체가 된 매우 독창적인 것이다. 이들이 이러한 음악세계를 형성하기 위해 활용하는 음악적 자원은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과 제프 벡(Jeff Beck)으로부터 스트라빈스키(Stravinsky)와 쇼스타코비치(Shostakovich), 그리고 네이팜 데쓰(Napalm Death)와 마이 다잉 브라이드(My Dying Bride)에 이르는 방대한 것이다. 이들은 여기에 팝과 R&B 그리고 월드뮤직의 요소들까지도 추가함으로써 자신들의 음악을 더욱 풍부한 것으로 창조해낸다. 사실 이런 식의 야심 찬 프로젝트는 자칫 지루하고 골치 아픈 마스터베이션이 되거나 유치하고 의미없는 키치로 전락하기 쉽다. 그러나 이들은 뚜렷한 목적의식과 탁월한 재능을 통해 여기서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낸다. 이들의 음악은 누구보다도 실험적이고 도전적이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접근이 용이하며 상호 이질적인 음악들이 한데 어울려 있지만 놀라울 정도의 깊이와 조화를 과시하는 것이다. 현재 활약하고 있는 많은 스타일리스트들이 단 몇 개의 스타일만을 참조함으로써 자신의 음악적 뿌리를 쉽게 노출하는 것과 달리 이들이 활용하고 있는 방대한 음악적 자원은 이들의 음악에 대한 손쉬운 재단을 불가능하게 한다.

노트의 데뷔 앨범인 이 작품에는 이들의 독특한 음악성을 만끽할 수 있는 흥미로운 요소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샘플러나 드럼 머신 등의 최신 테크놀로지에 의존하기보다는 이 계열의 밴드로는 드물게 순수한 연주력으로만 승부하려는 자세를 보여준다. 이 앨범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10인조 편성의 풍성한 관현악 사운드다. 여기에 탁월한 기량을 지닌 록 밴드의 연주가 결합됨으로써 이 앨범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박진감 넘치면서도 현란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특히 드러머 알렉스 피카드(Alex Pickard)와 기타리스트 제임스 세드워즈(James Sedwards)의 연주는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압권이다. 과도한 드러밍에서 비롯된 부상으로 그룹을 떠난 알렉스 피카드는 요즘 헤비메탈 이외의 음악에서는 거의 접할 수 없는 강력하고 파괴적인 드러밍을 들려준다. 죽기 살기로 두들겨대는 그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그가 왜 부상을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DJ 존 필(John Peel)로부터 “축구선수를 제외하고는 내가 유일하게 질투를 느꼈던 인물”이라는 극찬을 들었던 제임스 세드워즈는 새로운 기타 영웅의 등장을 말해도 좋을 만큼 인상 깊은 연주를 들려준다. 그는 여기서 기타뿐만 아니라 이들의 트레이드 마크 격인 전기 드릴(!)도 연주하고 있는데, 이 악기(?)는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Ignatius”에서 짧지만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음악적인 측면에서 이 앨범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은 느리거나 조용한 트랙이 없다는 점이다. 이들의 템포는 듣기에 따라 다소 숨가쁘게 느껴질 수 있을 정도의 속도감을 유지하며 이들의 볼륨은 폭발하는 화산과도 같은 파괴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노트의 템포와 볼륨은 스피드와 굉음에서 비롯되는 값싼 흥분을 추구하는 몇몇 밴드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노트에게 있어서 빠른 템포와 시끄러운 볼륨은 편안하고 예측가능한 음악에 대한 청취자의 기대를 전복시키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수록곡 중 유일하게 퓨전 재즈 성향을 드러내는 “Stain Stones”를 제외하면 이러한 템포와 볼륨의 원칙은 앨범의 수록곡들에 일관되게 적용된다. 곡에 따라 관현악기가 동원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대개의 트랙들은 강력한 록을 골간으로 예측불허의 전개와 잦은 템포 변화 그리고 숨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위력적 드라이브 등을 그 특징으로 한다. “Redrag”과 “Ignatius” 등의 곡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이들의 공격적 에너지는 때로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러나 명랑한 손뼉 장단으로 기분을 돋구는 “All The Time Ha-Ha”와 스트링의 화려한 자태가 아름다운 “The Fans” 그리고 관악기의 유니즌이 처절하게 울려 퍼지는 “Goddess Awakes” 등의 작품들은 일관된 원칙 속에서도 동시에 다양성을 추구하는 이들의 면모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은 3년이라는 대장정 끝에 만들어졌다. 노트는 이 앨범을 위해 과거에 싱글과 EP로 발표되었던 곡들을 새롭게 녹음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앨범을 만드는데 든 시간과 앨범의 질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앨범의 경우 투자된 시간은 충분한 보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이 앨범에 투여한 각고의 노력 덕분에 이 앨범은 최초의 충격이 가라앉은 후에도 결코 약화되지 않는 위력을 과시한다. 들을 때마다 새롭게 드러나는 소리의 층과 감성의 결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으며 이 앨범의 감상을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것으로 만든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멋진 도입부와 압도적인 클라이맥스에 비해 수록곡들의 엔딩이 다소 초라한 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은 이 앨범의 탁월함을 깎아 내리기에는 결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 앨범은 그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오늘날의 음악계에서 노트라는 그룹이 설 자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된다. 뮤지션보다는 스타일리스트가 각광 받고 미래지향성보다는 회고주의가 환영받는 현재의 음악 환경에서 이들의 존재는 철저히 시류를 거스르는 돈키호테와 다름없다. 이들에게는 스트록스나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울트라 쿨한 광채도 없고, 모과이나 스피리추얼라이즈드(Spiritualized)의 환각적 헤도니즘도 없으며 튜린 브레이크스(Turin Brakes)나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The Kings Of Convenience)의 나긋나긋한 편안함도 없다. 이들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새로움을 추구하는 음악적 비전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견실한 뮤지션십 밖에 없는데, 오늘날의 음악계에서 이런 것들은 단지 낡고 재미없는 것으로만 여겨질 뿐이다.

만일 올 뮤직 가이드의 선례에 따라 만점이 장르를 대표하는 음반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면 이 앨범은 당연히 만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 앨범은 그리 많지 않은 포스트 록 계열의 명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탁월할 뿐 아니라 아직 답사되지 않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선구자적 면모마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들이 차후에 더 훌륭한 밴드로 발전하고 더 좋은 앨범을 발표할 가능성을 감안해서 일단 별 한 개를 유보하기로 한다. 이 앨범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 하나는 만일 이것의 구입을 원한다면 서두르라는 것이다. 이 앨범은 재고가 그리 넉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재발매될 가능성도 희박하기 때문이다. 20011210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8/10

수록곡
1. The Fans
2. Nøught I
3. Cough Cap Kitty Cap
4. Redrag
5. Goddess Awakes:
(i) The Tricks Of Strangers
(ii) Locker
(iii) Widow’s Lament
6. Stain Stones
7. All The Time Ha-Ha
8. Heart Stops Twice
9. Nøught II
10. Ignatius

관련 사이트
Nøught 공식 사이트
http://www.noughtmusic.com
Nøught 팬 사이트
http://www.low-fi.co.uk/nou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