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16012734-0324januaryJanuary – I Heard Myself In You – Poptones, 2001

 

 

시린 공간위로 채워지는 담백하고 따스한 싸이키델리아

외지의 리뷰들을 보면 재뉴어리(January)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밴드들을 거론한다. 굳이 밴드 이름을 일일이 나열할 필요 없이 재뉴어리가 1960년대의 싸이키델릭 포크 록과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 슈게이징의 특징을 한데 버무려 놓은 듯한 음악을 하는 기타 록 밴드라고 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스트록스(The Strokes), 화이트 스트라이프스(The White Stripes), 스타세일러(Starsailor)와 같은 밴드들이 과거의 위대한 유산(?)들을 새로운 감각으로 부활시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재뉴어리도 이러한 점에서 앞의 밴드들과 공통점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기본적으로 재뉴어리는 철저히 기타 중심의 밴드이다. 싸이키델릭 포크 록과 슈게이징(슈게이저 록)이라는 공통적이면서도 상이한 방법론을 갖는 ‘몽환적’ 코드를 여러 대의 기타들(어쿠스틱 기타, 일렉트릭 기타, 페달 스틸 기타)로 절묘하게 풀어내고 있다. 어쿠스틱 기타를 바탕으로 때로는 일렉트릭 기타의 슬라이드 주법을 병행한 노이즈를, 때로는 피아노, 해먼드 오르간, 바이올린을 첨가시키면서 사운드를 확장시키기도 하는데, 어떤 경우라도 사운드적으로나 감정적으로도 과다한 노출을 자제하고 있다. 이런 단아한 사운드 위에 잘 뽑아진 멜로디는 언뜻 무난하면서도 안전한 길을 택하고 있는 듯 보인다.

물론 결론은 ‘No’다. 먼저 슈게이징의 어법을 따르는 곡들에서는 노이즈가 다른 음원들 위로 덧칠되는 것이 아니라 어쿠스틱 기타가 만들어내는 음의 선들 사이사이로 채워지며 그 위로 몽환적인 음의 선들이 피어오르는 식인데, 이것은 익숙한 듯 색다른 느낌을 주고있다. 한마디로 슈게이징 밴드들이 보여주었던 노이즈로 덧칠된 유채화 같은 느낌이 아닌 투명하게 덧칠된 맑은 수채화 같은 느낌이다. 비단 노이즈를 분출할 때가 아니더라도 앨범 전체의 몽환적인 분위기는 어쿠스틱하면서도 공간감을 주는 음들로 만들어지고 있다. 즉, 단촐하지만 그것이 주는 공간감과 그 공간 위에 만들어지는 몽환적 음들은 굳이 노이즈의 홍수가 아니더라도 그것 이상의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잘 뽑아진 멜로디 라인은 지금의 감성이라기보다는 ‘그때 그 시절’의 감성에 가깝다. 그래서 익숙한 듯하지만 지금의 세대들에겐 신선하게 들릴 수 있다는 말이다. 멜로디 라인뿐만 아니라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단아한 사운드와 마찬가지로 보컬에 의존한 감정몰입이나 분위기 주도가 없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어쿠스틱, 일렉트릭 기타와 보컬을 맡고있는 사이먼 맥클린(Simon Mclean)의 보컬은 슈게이징 밴드들처럼 아예 노이즈 속으로 묻혀버리거나, 닉 드레이크(Nick Drake)와 같이 목소리만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음과 같은 높이로 그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따라가는 식이다. (처연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여기에다가 곡의 후반부에 갈수록 보컬은 사라지고 기타들이 만들어내는 점진적이면서 점층적인 구조에 감정몰입을 보여주는데, 이는 재뉴어리의 음악이 철저히 기타중심이며, 혁신적이진 않지만 충분히 ‘실험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즉, 기타 록 밴드로써 택할 수 있는 두 가지의 큰 요소, 멜로디와 실험적 성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아내고 있다.

첫 곡 “All Time”에서부터 한껏 처연한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로 시작하여 피아노의 서글픈 음색과 후반부에 싸하게 퍼져나가는 노이즈는 재뉴어리의 음악이 말 그대로 시린 1월의 감성임을 보여준다. 두 번째 곡 “Through Your Skies”부터는 이런 시린 공간 위에 따스한 감성들을 채워 넣기 시작하는데, 이 곡의 중간 중간에 일렁대는 기타 톤은 마치 겨울에 아지랑이를 보는 듯한 묘한 느낌을 준다. 분출할 듯 분출할 듯 점층적으로 쌓여가다가 이내 곡이 끝나버리는 “Contact Light”나 미니멀리즘적 성향의 “Eyes All Mine” 같은 곡으로 중간중간 색다른 맛을 주기도 한다.

“Eyes All Mine”를 기점으로 앨범의 후반부로 넘어가는데 “Projection”에서 다시금 처연하게 분위기를 전환하면 앨범의 백미이자 절정인 “Falling In”으로 넘어간다. 싱글로 발매되기도 한 이 곡은 모과이(Mogwai)와 같은 익스페리멘틀 록에 가까운 곡이며 곡의 스타일도 9분대의 대곡 형식을 취하고 있다. 드럼 비트가 빨라지기 시작하면 길게 공간을 울리는 기타 음과 노이즈가 서서히 뿌려질 태세로 웅크리고 있다가 일순간 ‘싸아’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의 기타 톤과 드럼 비트는 모과이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중반부에서 이내 잦아들었던 노이즈는 마지막 부분에서 처음으로 ‘폭발’되면서 마무리된다. 그리고 앨범 전체적으로 “Falling In”과 첫 곡인 “All Time”이 가장 많은 무게중심이 실리면서 수미쌍관(首尾雙關)의 멋을 더해주는 것 같다. 마무리를 위한 곡 “Fused”는 씨임(Seam)의 “Autopilot”([Problem With Me](1993)의 마지막 트랙)에서 보여준 느낌과 흡사한 단촐한 어쿠스틱 기타의 끊어질 듯한 반복과 메아리치는 듯한 울리는 보컬이 길게 여운을 남기며 앨범은 끝이 난다.

재뉴어리는 절충적이지만 새로움이 묻어나고, 복고적이지만 신선함이 있는 밴드이다. 무엇보다 들을수록 맛이 우러나는 담백함이 있다. ‘이 앨범만으로는 아직 알 수 없다’ 혹은 ‘다음 앨범에서 판가름이 날 것이다’가 아니라, 지금으로서도 충분히 다음 앨범이 기대되는 그런 밴드이다. 지금 이 데뷔 앨범 한 장만으로도 그들은 세월의 풍랑에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은 것 같다. 그것이 상업적인 성공이나 혁신적인 스타일의 창조자가 아닌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해나가는 그런 힘 말이다. 20011209 | 신지근 seenyeom@daum.net

8/10

수록곡
1. All Time
2. Through Your Skies
3. Contact Light
4. I Heard Myself In You, Pt.2
5. Invisible Lines
6. Sequences Start
7. Eyes All Mine
8. Projections
9. Falling In
10. Fused

관련 사이트
Poptones 레이블 공식 사이트
http://www.poptones.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