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초 러시아식 블록버스터의 전형

20011130112304-0323filmreview-brat2타이틀: Brat 2(The Brother 2)
상영시간: 126분
제작국: 러시아
제작사: Kinokampaniya STV
감독: 알렉세이 발라바노프(Aleksei Balabanov)
출연: 세르게이 보드로프(Sergei Bodrov), 빅또르 수호루꼬프(Viktor Sukhorukov), 알렉산더 지아첸꼬(Alexander Diachenko), 세르게이 마꼬베쯔끼(Sergei Makovetsky) 등

뻬쩨르부르그는 1980년대 러시아 록 음악의 산실과도 같다고 본문에서 여러 번 언급되기는 했지만 영화계에 있어서는 훨씬 오래 전부터 독특한 지위를 가져왔다. 음악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지리적 위치 덕분에 러시아 영화 특유의 전통적 미학과 실험성을 가진 작품들은 렌필름(LenFilm)에서 많이 제작되었다. 이에 반해 모스끄바 영화는 상대적으로 상업적이거나 대중적이라는 것이 세간의 인식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러시아 영화계는 전반적인 침체에 빠졌다. 연간 영화 제작 편수와 관객 동원은 눈에 띄게 줄어갔다. 극심한 경제난과 물가인상, 할리우드 영화의 점령이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고 비디오 대여시장의 뒤늦은 성장과 TV 채널의 증가도 무시 못할 원인일 것이다. 멀리는 에이젠쉬쩨인 시절부터 가깝게는 따르꼬프스끼까지 세계 영화계의 한 축을 형성했던 러시아 영화는 강대국 소련의 침몰과 함께 그 지위를 완전히 상실하였다.

1990년대 중반까지 연간 250여 편을 유지하던 영화 제작 편수는 1990년대 후반에는 50여 편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그때부터 러시아 영화의 타개책을 ‘경쟁력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제작’으로 삼으려는 시도가 나타났고, 그 결과 200-300만 달러 정도의 많은 비용이 들어간 [Vor(도둑)], [Mama(엄마)]같은 영화는 모범적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렇지만 러시아 영화의 편당 제작비가 평균 50만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볼 때, 무려 4,500만 달러가 들어간 4개국 합작영화 [Sibirckii Tsiryulnik(시베리아의 이발사](한국 출시판 제목은 [러브 오브 시베리아])같은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영화의 완성도나 메시지를 떠나 러시아인의 입장에서는 그리 탐탁스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영화 [Brat2(형제 2)]는 ‘러시아적’ 블록버스터가 어떠해야 되는가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전편의 성공을 등에 업고 제작된 속편이다. 잠시 전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뻬쩨르부르그 출신인 알렉세이 발라바노프(Aleksei Balabanov) 감독은 전편에서는 담담한 잿빛 화면에 하드보일드한 사실주의적 영상을 보여주면서 전통적 내러티브와 자세를 견지하며 양념으로 뿌려 놓은 약간의 액션을 통해 평단과 영화제의 찬사와 흥행의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하였다. 영화는 뻬쩨르부르그 마피아 조직에 몸담고 있는 형을 위해 주인공 다닐라가 청부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을 배신한 형을 용서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 영화는 날로 수준 높아지는 한국의 영화광들이 즐길 만한 영화는 아니다. 이제는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한국인들에게는 16mm 카메라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좁은 앵글의 화면과 거친 편집, 그리고 조잡하고 느린 카메라 워크로 영화를 보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그렇다고 심각한 예술영화도 아니다). 비단 영화에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지 않더라도 화면의 한 컷 마다에서 열악한 제작 현실을 볼 수 있고, 나아가 그 시점의 러시아의 남루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시대를 사는 러시아 젊은이들의 가치관의 혼돈을 잘 투영시켰다는 평가와 함께 1997년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깐느 영화제에 공식 출품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도 1997년 [부산 국제 영화제]와 1998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이후 비디오 테이프로 출시되기도 했다.

속편인 [Brat 2] 역시 전편에 등장한 형제가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주인공인 다닐라는 체첸 전쟁의 영웅이다. 그는 마피아에 의해 살해된 친구의 복수를 하게 되는데, 적들의 조직이 모스끄바 뿐만 아니라 시카고에까지 연계되어 있는 것을 알고는 미국 땅까지 건너가 우여곡절 끝에 조직을 싸그리 몰살하고 돈 다발을 둘러메고 러시아로 기분 좋게 돌아온다는 이야기이다. 전편에 등장했던 나이값 못하는 형은 철창신세를 지게 되고 살인기계 다닐라는 파이프와 나무를 깎아 화약을 넣어 즉석에서 총을 만드는 비범함까지 과시한다.

전쟁의 쓰라린 고통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순박하고 밝은 청년 다닐라는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고 싶어한다. 한 예로 다닐라의 형은 “돈이 세상을 지배하지”라고 말하자 다닐라는 “난 정의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다닐라는 ‘친구의 복수’를 위해서는 서슬 퍼런 무차별적 응징을 서슴지 않는다. 마지막 클라이맥스 부분에 펼쳐지는 지하 바에서의 살인장면은 아무런 가치판단도 배제된 채, 마치 다닐라의 뒷모습을 관객이 조작하는 3D 전투게임(예를 들어 “Quake” 혹은 “Doom”)처럼 진행된다.

영화의 성공은 개봉과 거의 동시에 발매된 사운드트랙에 빚진 면이 많다. 1편에는 나우찔루스 뽐삘리우스(Nautilus Pompilus)의 음악 [Kpylo(날개)]가 주 테마곡으로 삽입되었는데, 속편 사운드트랙 앨범에는 최근 유행하는 컴필레이션 음반과도 같은 컨셉으로 Bi-2, 젬피라(Zemfira), 스쁠린(Splin), 마샤 이 메드베지( Masha I Medvedi) 등 시쳇말로 요즘 잘 나가는 유명 록 밴드들의 히트 넘버들이 묶여 발매되었다. 이 사운드트랙 앨범은 공전의 성공을 거두며 영화의 성공을 마주 견인하였다.

게다가 영화가 성공을 거둔 후 주인공 다닐라의 침울한 표정이 담긴 영화 포스터가 소년들의 방마다 자리잡게 되었고, 마피아가 ‘장래 선호 직종’으로 자리잡게 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10대들의 기호에 철저히 영합하는 댄스 음악, 그렇지 않으면 기획사의 상술로 꾸며진 컴필레이션 음반, 그리고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하고 말초적 흥미만 자극하는 조폭성 영화만이 시장에서 활발하게 소비된다는 사실이 한국의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아서 씁쓸한 느낌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영화에서는 국가의 통치력보다 ‘검은 정부’ 마피아의 지배력이 우월한 러시아의 현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 있다. 또한 각각 삶의 험난함을 토로하는 모스끄바의 택시기사와 시카고 공항 주변에서 러시아인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러시아인 택시기사의 모습이 유난히 닮아 있다는 점에서 ‘이민이 해결책이 아니다’는 메시지도 읽을 수 있다. 흑인 포주에 휘둘리며 러시아에서보다 더 비참한 생활을 하는 시카고의 러시아 창녀에게서도 어떤 메시지를 읽을 수도 있다. 물론 영화를 보는 눈높이를 ‘러시아인의 시각’으로 낮출 수 있는 겸허한 관객만이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이 필요하지만. 20011130 | 박일경 nikcuf@hanmail.net

P.S.
[Brat 2]의 성공 직후 주인공 세르게이 보드로프는 유사한 액션 영화인 [자매(Syostry)](2000)에서 감독과 주연을 맡았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관련 글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7): 글로벌 시대의 로컬 록을 향하여 – vol.3/no.23 [20011201]
이글라=러시아판 트레인스포팅 혹은 트레인스포팅=영국판 이글라 – vol.3/no.16 [20010816]

관련 사이트
[Brat 2] 공식 사이트 (러시아어)
http://brat2.film.ru
[Brat 2] 리뷰 (영어)
http://www.ce-review.org/01/5/kinoeye5_horton.html
http://www.insideout.co.uk/films/b/brother_2_brat_2.shtml
[Brat 2] 사운드트랙 mp3 전곡 다운로드 사이트
http://txt.zvuki.ru/M/P/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