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130100938-0323whitestripesWhite Stripes – White Blood Cells – Sympathy For The Record Industry, 2001

 

 

원초적 로큰롤의 생생한 부활

화이트 스트라이프스(The White Stripes)는 1997년 디트로이트에서 결성된 미니멀리스트 록 듀오다. 굳이 ‘미니멀리스트’라는 표현을 갖다 붙인 이유는 이들이 구사하는 음악 스타일이 대체로 심플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원인으로 이들이 연주하는 악기의 구성이 최소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대부분의 노래에 들어간 악기라곤 잭 화이트(Jack White)의 선 굵은 전기 기타나 어쿠스틱 기타, 그리고 멕 화이트(Meg White)의 묵직한 드럼이 전부인 것이다. 간혹 잭 화이트가 연주하는 피아노가 들어갈 때도 있지만, 거의 ‘기타+드럼’ 편성일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첫 번째 앨범인 [The White Stripes](1999)부터, 두 번째 앨범 [De Stijl], 그리고 최신작 [White Blood Cells]에 이르기까지 일관되어 있다. 뭐니뭐니 해도 이들의 음악엔 베이스 기타가 빠져있다는 점이 무척이나 눈에 띄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이들의 노래 중 베이스 기타가 첨가된 곡은 [De Stijl] 앨범에서 “I’m Bound To Pack It Up” 뿐이다(이에 대해 잭 화이트는 “우리는 결코 베이시스트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만사를 너무 지나치게 만들 뿐이다”라고 말한다). 철두철미 하드한 록 음악을 연주하면서도, 통상 없어서는 안될 악기로 누구나 여기는 베이스 기타가 빠져있다는 사실은, 다분히 ‘실험적’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실험적’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미래 지향적인 뉘앙스와는 어긋나게, 화이트 스트라이프스가 추구하는 세계는 철저히 ‘과거 지향’이다. 즉 이들이 기본으로 삼고있는 음악이란 미국 남부 지역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와 거라지(garage) 록이다. 어찌 보면 ‘재탕’에 불과한 이들의 음악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선하면서 충분히 ‘실험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이에 대한 해답의 핵심은 이들의 태도가 무엇보다도 ‘멋 부리지 않는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최근 스트록스(The Strokes)를 위시한 미국의 일련의 밴드들은 1960-70년대 풍의 ‘복고’ 사운드를 무슨 굉장한 매력 포인트인 양 내세워 비평가들과 대중을 현혹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 대부분은 좋게 말해 ‘옛 것에 대한 (번지르르한) 오마주’이며 나쁘게 말하면 ‘혹세무민하는 싸구려 잡탕’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작태는 몇 년 전부터 불어닥친 영미 록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에게는, 다소 낡은 표현을 쓰자면, 록 음악에 대한 ‘진정성’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겉멋으로 충만한 다른 아류 밴드들과는 확실히 구별된다. 록과 블루스, 그리고 때로는 포크를 치열하게 탐구하는 가운데, 이들은 한동안 우리가 잊고있던 록 음악에서의 ‘원초성’을 부활시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원초적인 기운은 이번에 나온 [White Blood Cells] 앨범에서 무척이나 도드라진 포인트로서, 이들의 기존 앨범들조차 이 정도까지 돌출되지는 않았다.

요컨대 [White Blood Cells]는 오늘날의 록 음악으로서는 거의 독보적이라 할 ‘날것’의 느낌이 소름끼칠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I’m Finding It Harder To Be A Gentleman”, “Expecting”, “The Union Forever”, “Offend In Every Way”, “Now Mary”, “Aluminium” 등은 ‘날것’의 비린내가 물씬 풍겨 나오는 트랙들이다(경우에 따라 초기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요소가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들 노래가 주는 원초적 파괴력은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Hotel Yorba”, “We’re Going To Be Friends”, “This Protector” 등 비교적 부드러운 노래들이 상당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White Blood Cells] 앨범 전체를 헤비한 리프가 난무하는 강렬한 작품으로 쉽사리 오인하게 만든다.

이렇게 거칠고 투박하지만 한번 들으면 좀처럼 잊기 힘든 맹렬한 흥분과 여운을 남기는 록 음악을, 말랑말랑하고 고만고만한 당의정들만이 굴러다니는 대중음악계에서 도대체 얼마 만에 만나게 된 것인가. 화이트 스트라이프스는 정형화되고 무기력해져 가는 오늘날 록에 펄펄 뛰어오르는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White Blood Cells]는 생동감 넘치면서 때묻지 않은 록 본연의 모습이 제대로 살아 숨쉬고 있는 징표다. 영국의 전설적인 DJ 존 필(John Peel)이 이들을 가리켜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또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이후 최고로 굉장한 밴드”라 단언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20011124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8/10

* 여담 1 :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에 대해 사그러지지 않는 소문은, 두 멤버인 잭 화이트와 멕 화이트의 관계가 정확히 무엇이냐는 점이다. 한동안, 이들은 부부였으나 2년 동안 살다가 이혼했다는 루머가 끈질기게 나돌았다. 하지만 잭 화이트는 “우리는 남매다”라고 강변한다. 그래서 현재는 남매로 이루어진 밴드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 또한 과연 사실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건 아니다.

* 여담 2 : 밴드의 이름은 하얀 줄과 빨간 줄이 섞인 박하사탕에서 따왔다. 이들의 의상이나 앨범 디자인도 마찬가지로 빨간 색과 하얀 색이 일관되게 컨셉트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De Stijl] 앨범부터는 검은 색도 상당 부분 등장하고 있다.

수록곡
1. Dead Leaves And The Dirty Ground
2. Hotel Yorba
3. I’m Finding It Harder To Be A Gentleman
4. Fell In Love With A Girl
5. Expecting
6. Little Room
7. The Union Forever
8. The Same Boy You’ve Always Known
9. We’re Going To Be Friends
10. Offend In Every Way
11. I Think I Smell A Rat
12. Aluminium
13. I Can’t Wait
14. Now Mary
15. I Can Learn
16. This Protector

관련 사이트
The White Stripes 공식 사이트
http://www.whitestrip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