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alanches – Since I Left You – Modular/Sire, 2000/2001 샘플러델릭 만화경 사운드 보트에 몸을 실은 무리들이 제법 높은 파도를 헤치고 있다. 낭만적인 보트 타기를 즐기는 건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여한 건지 아니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인지 알 수 없다. 진실은 앨범의 속내를 활짝 펼쳤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앨범의 표지는 이 앨범에 대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Since I Left You]는 호주 멜버른 출신의 6인조 밴드 애벌랜시스(The Avalanches)의 데뷔작으로 자국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2001년 4월 영국과 유럽에서 발매되어 호평을 받은 앨범이다. 얼마 전 미국 시장에서도 발매되었는데 지금 여러 잡지들이 앞다투어 호의적인 리뷰를 바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의 씨디를 플레이어에 올려놓기에 앞서 앨범의 성공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두 번째 싱글 “Frontier Psychiatrist”의 뮤직 비디오를 들여다보자(아래에 적은 이들의 공식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볼 수 있다). 박수소리와 함께 막이 열리면 할리우드 고전 영화의 주인공들을 필두로 드럼 치는 할머니, 랩 하는 할아버지, 스크래칭 하는 해골, 춤추는 유령, 서부의 총잡이들과 인디언, 여기에 원숭이, 새 등이 숨가쁘게 등장한다. 모두 무대에서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자신의 역을 하는데, 음악의 리듬에 따라 카메라가 움직이며 차례로 비춰준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누군가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 같다. 하지만 결국 행복한 모습으로 무대를 돌며 퇴장한다. 미국 대중 음악의 여러 아이콘들이 낯선 공간에 배치됨으로써 자아내는 우스꽝스러움은 애벌랜시스의 음악적 지향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시각적 은유다. 혹은, 잡지의 사진들을 오려붙여 재구성한 포토몽타주의 음악적 등가물을 떠올려도 좋다. 다들 짐작했듯이 애벌랜시스는 록밴드가 아니라 디제이들로 이루어진 밴드다. 그리고 이들 음악의 비밀은 바로 ‘샘플링’에 있다. 웹진 [피치포크미디어(pitchforkmedia)]에 따르면 무려 900개가 넘는 샘플이 동원되었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마돈나의 “Holiday”나 데비 레이놀즈(Debbie Reynolds)의 “Tammy”처럼 유명한 곡 외에도 각종 영화와 TV 프로그램이 포함된다. 그래서 이 앨범을 들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과거의 걸작들, 가령 드 라 소울(De La Soul)의 [3 Feet High And Rising], 비스티 보이스(Beastie Boys)의 [Paul’s Boutique], 디제이 섀도(DJ Shadow)의 [Endtroducing…] 등을 떠올리게 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애벌랜시스의 음악은 힙합보다는 테크노에 가깝고, 앨범의 전반적인 무드는 훵키한 그루브 못지 않게 라운지의 나른함이 지배한다. 파티의 어수선함에 이은 스패니시 기타의 연주로 시작하는 타이틀곡 “Since I Left You”에서부터 플루트의 목가적인 선율이 이끄는 마지막 곡 “Extra Kings”에 이르기까지 애벌랜시스가 초대하는 세계는 무척이나 황홀하다. 빅비트 스타일의 “Flight Tonight”과 힙합에 가까운 “Frontier Psychiatrist” 등 몇몇 돋보이는 트랙을 제외하면 앨범은 대체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트랙과 트랙 사이를 넘어간다. 다채로운 음원 샘플링으로 응집력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솜씨는 분명 예사롭지 않다. 1970년대 팝-디스코의 낙관적인 분위기와 남국의 따사로운 햇살, 여기에 아련한 LP의 잡음이 시종일관 흐르는데, 만약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이 테크노 시대를 살았다면 이런 앨범을 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이 앨범을 들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맡기면 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몸을 흔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행여나 샘플의 출처를 찾아낼 요량으로 귀를 쫑긋 세운다면, 이는 피터 그리너웨이(Peter Greenaway)의 영화 [차례로 익사시키기(Drowning By Numbers)]에서 숫자를 찾아내려는 것만큼이나 악몽이 될지도 모른다. 20011126 | 장호연 bubbler@naver.com 8/10 수록곡 1. Since I Left You 2. Stay Another Season 3. Radio 4. Two Hearts In 3/4 Time 5. Avalanche Rock 6. Flight Tonight 7. Close To You 8. Diners Only 9. A Different Feeling 10. Electricity 11. Tonight 12. Pablo’s Cruise 13. Frontier Psychiatrist 14. Etoh 15. Summer Crane 16. Little Journey 17. Live At Dominoes 18. Extra Kings 관련 사이트 Avalanches 공식 사이트 http://www.modularpeople.com/avalanches/micro/v2/1.htm Avalanches 비공식 사이트 http://www.geocities.com/avalancheshomeba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