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130095414-0323kimmopohjonenKimmo Pohjonen – Kielo – Rockadillo, 1999

 

 

혁명적 아코디언 연주의 정수

아코디언이라는 악기에는 몇 가지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결부되어 있다. 곡마단이나 악극단의 이미지가 그 중 하나이고, 언젠가 영화에서 본 듯한 전후 파리의 카페 풍경이나 알프스 어느 마을의 포크 댄스 장면도 흔히 연상되는 광경들이다. 이처럼 아코디언은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거나 토속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주로 사용되어 왔다. 핀란드 출신의 아코디언 연주자 키모 포효넨(Kimmo Pohjonen)은 아코디언이 지닌 이러한 노스탤지어적 연관을 극복하고 그것을 현대적인 악기로 부활시킨 인물이다. 그가 세계 음악계의 변방인 핀란드 출신이라는 이유에서 그의 음악이 흔히 월드 뮤직으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그의 음악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통상적인 월드 뮤직의 지역성과 전통성이 아니라 보편성과 현대성이다.

키모 포효넨은 ‘아코디언의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또는 ‘테크노 테러리스트 아코디언 플레이어’와 같은 별명을 지니고 있다. 그는 지미 헨드릭스가 기타에 대해 했던 것처럼 아코디언이 만들어내는 사운드의 가능성을 혁명적으로 확장했다. 그는 여러 가지 픽업과 페달을 이용해 아코디언의 소리를 다양하게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손톱으로 버튼을 두들기거나 소리에 루프를 거는 등의 시도를 통해 가능한 모든 사운드를 자신의 음악에 통합시켰다. 그는 또한 아코디언의 표현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아코디언 음악의 혁신을 달성했다. 그는 드럼머신과 루프머신으로 구성된 사운드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고 다양한 음악 장르에 아코디언을 적응시킴으로써 그것을 민속음악의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보다 보편적 활용가능성을 지닌 악기로 발전시켰다.

키모 포효넨이 이러한 혁신을 달성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다채로운 경력이 밑거름이 되었다. 아코디언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처음 연주를 시작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핀란드 민속음악을 연주해왔고 성년이 되어서는 헬싱키 음악원과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에서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다. 이후 탄자니아와 아르헨티나에 유학해 현지의 음악을 배웠고, 토니 로씨 & 시니타이바스(Toni Rossi & Sinitaivas)나 이스모 알랑코 사티오(Ismo Alanko Saatio) 등 핀란드의 유명 록 그룹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에도 그는 타피올라 신포니에타(Tapiola Sinfonietta)를 비롯한 다양한 계열의 음악인들과 지속적으로 협연을 벌이고 있으며 유럽 각국의 재즈 페스티벌에 고정 출연하면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클래식과 재즈, 록과 민속음악을 아우르는 음악적 비전을 형성했고 이러한 음악적 비전에 따라 아코디언 연주법의 혁신을 이룩했다.

그 동안 10여 개의 밴드에서 활동하면서 무려 65장 이상의 앨범에 참여했지만 키모 포효넨이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앨범은 현재까지 이 [Kielo]가 유일하다. 따라서 이 앨범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온 그의 실험적 아이디어가 집대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의 실험적 성향은 이 앨범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먼저 악기편성에 있어서 이 앨범은 아코디언(“Kirkuna”라는 트랙에서는 아코디언 대신 하모니움이 사용되고 있다)과 사운드 시스템 그리고 목소리만을 이용한 원맨 밴드의 편성을 취하고 있다. 음악의 형태에 있어서도 팝, 뉴 에이지, 민속음악, 앰비언트, 무조음악 그리고 테크노에 이르기까지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한 음악이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르의 명칭은 단지 음악적 분위기를 가리키기 위한 비유에 불과하다. 그는 여기서 각 장르의 전형을 답습하기보다는 그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사운드에 있어서도 그는 이 앨범의 음악적 다양성에 걸맞는 다채로운 표현수단을 개발해내고 있다. 그는 여기서 아코디언을 통해 파이프 오르간에서 첼로에 이르는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입과 마이크의 메커니즘에서 비롯되는 여러 가지 소음을 총동원해 음악에 사용하고 있다.

이 앨범의 사운드가 빚어내는 전체적인 경관은 어둡고 음산한 겨울날의 북유럽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체적 경관에는 핀란드인이 지닌 갖가지 삶의 편린과 감정의 결이 두루 스며들어 있다. “Anastaja”의 깊은 우울부터 “Kalmukki”의 흥분 어린 격정, “Kirkuna”의 미칠 듯한 고독, “Saatto”의 레퀴엠적인 장중함 그리고 벽난로 가의 휴식과도 같은 “Kielo”의 따뜻함에 이르기까지 이 앨범은 파노라마와 같은 감성의 세계를 세심하게 담고 있다. 이 앨범의 강점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실험주의 음악이 대중의 폭 넓은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음악 자체가 지나치게 건조하고 이론적이라는 점이다. 대개의 실험주의 음악은 마치 음악대학 학위논문처럼 음악의 형태와 구성의 측면에만 주목할 뿐 그것의 감성적 내용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한 경향을 나타낸다. 그러나 키모 포효넨은 이 앨범에서 과감한 실험 속에서도 음악의 감성적 측면에 깊이 있게 접근함으로써 실험주의 특유의 건조함을 극복하고 청취자에게 감동적인 예술적 체험을 선사한다.

음반을 평하는 입장에서 아직 역사적으로 검증되지도 않은 작품에 선뜻 만점을 준다는 것은 위험천만함을 지나쳐 무모하기까지 한 일이다. 그러나 수십 번을 거듭 생각해봐도 이 앨범이 그런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확신은 점점 더 굳어져만 간다. 키모 포효넨의 음악은 솔직히 스타일의 세련미나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있어서 토오터스(Tortoise)나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 같은 영미계열의 실험주의 음악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전통적인 장인 뮤지션의 음악에서만 접할 수 있는 듬직함과 깊이를 지니고 있다. 비록 다소 거칠고 둔탁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음악 속에서 단순한 사운드 조작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그의 존재는 달착지근한 음악에만 둘러싸인 오늘날의 음악환경 속에서 신선한 청량제처럼 느껴진다. 20011125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10/10

수록곡
1. Anastaja
2. Kalmukki
3. Emboli
4. Saatto
5. Kirkuna
6. Kova
7. Silmays
8. Kielo
9. Sirpale
10. Ammoin
11. Koruna

관련 사이트
Kimmo Pohjonen 아티스트 프로필
http://www.rootsworld.com/rw/finland/kimmo.html
Kimmo Pohjonen과 핀란드 음악
http://www.hoedown.com/html/kimmo.htm
Kimmo Pohjonen 인터뷰
http://www.rootsworld.com/freereed/2000/kimmo1.html
앨범 [Kielo]를 구입할 수 있는 곳
http://www.cdroots.com/pohjonen.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