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115113457-davidbowie_allsaintsDavid Bowie – All Saints – EMI, 2001

 

 

사라져가는 노병의 자기 증명

[All Saints]는 신곡 하나 없는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그것도 애초엔 데이빗 보위(David Bowie)가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개인적으로 선물하기 위해 마련한 앨범이었다가, 뒤늦게 대중들 앞에 공개되었다. 그런데 이미 발매된 여러 종류의 보위 관련 컴필레이션과는 달리, 본 앨범은 오직 인스투르멘틀 넘버들만 수록된 조금은 독특한 작품이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수록곡 중 “Warszawa”나 “Subterraneans”(모두 [Low] 앨범에서 뽑아옴)의 경우는 데이빗 보위의 보컬을 들을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조그만 돌출은 ‘인스투르멘틀 모음집’이라는 앨범의 기본 포맷에 치명적인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즉 대세에 지장이 없다는 뜻이다.

수록곡들을 보면 알 수 있듯, [All Saints] 앨범에 담긴 노래들 대부분은 1970년대 중반 보위가 베를린에서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토니 비스콘티(Tony Visconti)와 합심하여 만든 이른 바 ‘베를린 3부작’ 중 1, 2탄인 [Low]와 [Heroes]에서 추출되었다. 인스투르멘틀 컴필레이션이라는 명제 아래, 위 두 앨범에서(LP 기준) B면의 ‘앰비언트 메들리’에서 대거 뽑힌 것이다. 나머지 수록곡들은 TV 미니시리즈의 사운드트랙인 [Budda Of Suburbia](1995), 근작 앨범인 [Hours…](1999) 등에서 나왔다. 또한 “Some Are”는 필립 글래스(Philip Glass), 브라이언 이노와의 합작인 [Low Symphony](1992)에 담겼던 곡이다. “Abdulmajid”, “All Saints”, “Crystal Japan”은 예전에 공개된 적이 없는, 이번 앨범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연주곡들이다(물론 이러한 사실로 보아 ‘신곡’들이 포함된 게 아니냐는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 앨범의 부제가 ‘Collected Instrumentals 1977-1999’인 것으로 보아 이 곡들은 새로운 노래들이라기보다는 ‘예전에 공개된 적이 없는 트랙(previously unreleased track)’들로 보는 게 더욱 정확할 것이다).

이미 알려졌다시피, [Low]와 [Heroes]에서 데이빗 보위의 앰비언트 탐구는 당연히 브라이언 이노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창출된 것이다. 그러나 도무지 지루함을 견딜 수 없는 브라이언 이노의 앰비언트 세계와는 달리, 보위의 그것은 고요하고 명상적이면서도 극적인 구성을 아울러 갖추고 있어 듣기에 심심치는 않다. 대부분의 연주곡들이 1970년대에 만들어졌음에도, 3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날 들어보아도 전혀 낡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없다. 이것은 데이빗 보위와 브라이언 이노의 실험이 시대를 한참이나 앞질러 갔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고, 또한 오늘날의 대중 음악(특히 록)이 예전에 비해 그다지 ‘진화’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오늘날 대중 음악의 ‘첨단’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떠오른 포스트록이나 일렉트로니카라는 장르들이, 사실 헤아려 보면 1970년대 크라우트 록이나 앰비언트를 기본 바탕으로 하여 21세기 식 녹음 기술의 때깔을 입힌 결과물이라 거칠게 정의 내려도 커다란 무리가 없다고 볼 때, 이 앨범은 이들 첨단 장르의 ‘원조’ 내지는 ‘선구자’임을 만방에 공표하려는 데이빗 보위의 숨겨진 야심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수년간 집안에서만 돌아다니던 ‘가족 선물’이 하필이면 이때 시장에 유출되었겠는가?

이러한 관점에서, [All Saints]는 데이빗 보위의 아직 끝나지 않은 영향력과 선구성을 증명해주는 작은 선물이라 할 것이다. 물론 [Low]나 [Heroes]가 후세에 끼친 업적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러한 위업을 세월의 흐름 속에 망각해 버릴 수 있다. 그렇게 잊혀질 만하면, 백전의 노장이며 교활한 늙은이가 되어가는 어제의 용사들은 ‘컴필레이션(박스 세트 포함)’이나 ‘리마스터링 재발매’라는 술수를 동원하여 크건 작건 주위를 환기시키고는 한다. [All Saints]는 데이빗 보위가 21세기 실험 록계에 띄우는 소박하나 굳건한 자기 존재 증명의 도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라는 포효가 담긴. 그러나 다만 사라져 갈 뿐인 자신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건 정말 힘겨운 노릇일 것이다. 그것이 삶의 순리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20011112 | 오공훈 aura508@unitel.co.kr

6/10

수록곡
1. A New Career In A New Town
2. V-2 Schneider
3. Abdulmajid
4. Weeping Wall
5. All Saints
6. Art Decade
7. Crystal Japan
8. Brilliant Adventure
9. Sense Of Doubt
10. Moss Garden
11. Neukoeln
12. The Mysteries
13. Ian Fish, U.K. Heir
14. Subterraneans
15. Warszawa
16. Some Are (From “Low Symphony”)

관련 글
David Bowie [Hunky Dory]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Diamond Dogs]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Young Americans]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Station To Station]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Low]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Heroes]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Let’s Dance] 리뷰 – vol.3/no.22 [20011116]

관련 사이트
David Bowie 공식 사이트
http://www.davidbowie.com
http://www.davidbowie.co.uk
Bassman’s Bowie Page
http://www.algonet.se/~bassman
Bowie at the Beeb
http://www.bowieatthebeeb.com
A Cyberspace Oddity
http://home.no.net/tr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