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115113252-davidbowie_hunkyDavid Bowie – Hunky Dory – EMI, 1971

 

 

데이빗 보위 판 ‘화이트 앨범’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네 번째 앨범 [Hunky Dory]는 그의 전성기 작품 중 유일한 팝 앨범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수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 앨범에 수록된 음악은 전통적인 팝의 어법과 사운드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앨범은 굳이 그의 팬이 아니더라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일반적 어필 때문에 오히려 그의 열렬한 팬들 사이에서는 이 작품을 함량미달로 평가하는 경우마저 종종 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이 앨범은 겉모습과 달리 수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음악적 생애와 그가 오늘날의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모두 이 앨범 안에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앨범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데이빗 보위가 이 작품을 통해서 최초로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명확하고도 체계적인 형태로 정립했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그에게 있어서 록은 단순한 음악의 영역을 넘어서는 예술적 표현의 종합 패키지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감독 존 랜디스(John Landis)는 그에 대해 “음악을 예술의 관점에서 접근한 최초의 록 아티스트”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접근과 관련해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카멜레온이라고 불릴 정도로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 이미지 변신이었다. 헝키 도리(Hunky Dory),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 알라딘 세인(Aladdin Sane), 씬 화이트 듀크(Thin White Duke) 등 그가 채택했던 다채로운 페르소나는 여러 차례의 음악적 변신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변함없이 유지했던 닐 영(Neil Young)이나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같은 뮤지션들(심지어 30년 동안 한번도 헤어스타일을 바꾸지 않은 브라이언 메이(Brian May) 같은 뮤지션도 있다)로부터 그를 결정적으로 구분짓는 특징이다.

전기 [일명 데이빗 보위(Alias David Bowie)]에 따르면 그의 이런 카멜레온적 성향은 당시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다 병원에 수용된 그의 형 테리 번즈(Terry Burns)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이 앨범에 수록된 “The Bewlay Brothers”라는 곡은 이 사실에 대한 암시로 읽을 수 있다. 이 외에 테리 번즈를 소재로 씌어진 작품들로는 “All The Madmen”과 “Aladdin Sane” 등이 있다). 그러나 무의식적 성향이 예술적 비전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별도의 계기가 필요했다. 그는 이러한 계기를 앤디 워홀(Andy Warhol)에서 발견했다. 그가 앤디 워홀의 작품을 통해 도달한 것은 이미지와 정체성에 관한 모호한 구분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개인의 고정된 정체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체성은 곧 이미지이며 이미지를 바꿈으로써 정체성 또한 바꿀 수 있다. 결국 이를 통해 개인은 자기가 되고싶은 대로 얼마든지 스스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데이빗 보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는 마돈나(Madonna)이다. ‘Material Girl’에서 ‘Sex Goddess’로, 다시 자애로운 어머니로 시시각각 변해온 그녀의 이미지는 그에 대한 적극적인 벤치마크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데이빗 보위의 변신이 명시적인 예술적 주장이었던 반면 마돈나의 그것은 다분히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의도가 강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아티스트는 “스스로를 재창조하라!(Reinvent Yourself!)”는 명제가 오늘날 소비 자본주의의 대표적 슬로건으로 자리잡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Hunky Dory]는 데이빗 보위의 음악 생애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다. 이것은 그의 첫 마스터피스로서 그가 1960년대의 에피고넨 시대를 마감하고 1970년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로 발전하는데 전환점이 되었던 작품이다. 이 앨범이 전작들과 구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여기서야 비로소 그가 음악적 자신감과 확고한 비전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의 데뷔앨범 [David Bowie]는 본인 스스로 자신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지워버렸을 정도로 미숙한 아류작이었고 두 번째 앨범 [Space Oddity(또는 Man Of Words, Man Of Music)]는 뒤늦게 유로 팝과 싸이키델릭 포크에 뛰어들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작품이었다. 그의 전작 앨범 중 유일하게 주목할만한 작품이었던 [The Man Who Sold The World]에서도 그는 자신의 색깔을 찾지 못하고 믹 론슨(Mick Ronson)의 음악적 주도권에 휘둘리는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네 번째 작품인 이 앨범에서 드디어 개성적이고 예술성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이 앨범에서 데이빗 보위가 중점을 둔 것은 새로운 비전에 근거하여 자신의 음악을 재정립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이 앨범은 크게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앨범의 도입부에는 릭 웨이크먼(Rick Wakeman)의 어쿠스틱 피아노를 앞세운 스탠다드 팝 튠이 수록되어 있고, 중반부에서는 그가 과거에 다뤘던 음악 장르들에 대한 재탐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결말부에서는 자신의 영웅들에 대한 경의가 표해지고 있다. 특기할만한 것은 자신의 음악적 자산이 총체적으로 재점검되는 가운데서도 전작 [The Man Who Sold The World]의 하드 록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작의 음악이 하드 록에 대한 그의 애정의 산물이기보다는 당시의 유행과 믹 론슨의 영향에 휘말린 결과였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반면 초기 앨범들인 [David Bowie]와 [Space Oddity]는 여기서 적극적인 재검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그의 음악적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암시하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그 음반들이 그것을 다룬 방식에 대해 그가 깊은 불만을 품고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앨범에서 그가 자신의 과거를 반추하는 트랙은 모두 네 곡이다. 비프 로즈(Biff Rose) 작곡의 브로드웨이 쇼 튠 “Fill Your Heart”와 토속적인 영국 자장가를 모델로 한 “Kooks”는 데뷔앨범의 음악적 성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곡들이며 염세주의적 포크 록 넘버 “Quicksand”와 분열적 싸이키델리아 “The Bewlay Brothers”는 [Space Oddity]의 음악 스타일을 반복하는 작품들이다(“The Bewlay Brothers”가 앨범의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된 것은 이 곡이 테리 번즈에 대한 트리뷰트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작 앨범들에서 이들 장르의 규칙에 얽매여 그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 그는 독자적인 시각을 통해 각각의 음악 스타일에 대한 비판적이고 의식적인 재해석을 수행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이들 장르에 고유한 낡은 감각을 걷어내고 보다 참신하고 개성적인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데이빗 보위가 이처럼 음악적 급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그가 새롭게 발견한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음악이 있었다. 이전까지 앤소니 뉴리(Anthony Newley)나 자끄 브렐(Jacques Brel) 등의 전통적이고 유럽적인 음악의 영향권에 한정되어 있던 그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와의 조우를 통해 현대적이고 예술적인 음악의 비전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 앨범은 이러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영향이 최초로 표명된 작품이다. 이 앨범을 통해 데이빗 보위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을 발견하고 그 영향을 자신의 음악에 적극적으로 통합한 최초의 메인스트림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는 이를 통해 완전히 잊혀질 운명에 처해 있던 이들의 음악을 일반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1970년대 초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 공연에 초청 받아 갔던 루 리드(Lou Reed)는 데이빗 보위가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자신의 노래 “White Light/White Heat”을 부르는 것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도 있다. 오늘날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영향이 논하는 것 자체가 진부할 만큼 흔하게 될 수 있었던 데는 이 앨범이 그 기폭제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 앨범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영향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곡은 유일한 록 트랙으로 수록된 “Queen Bitch”이다. 그는 여기서 팝과 포크 일색인 앨범의 일관성을 다소 희생해가면서까지 이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Queen Bitch”는 이 앨범의 또 다른 수록곡 “Song For Bob Dylan”과 함께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오마주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오늘날 이것은 대중음악의 흔한 창작방식으로 정착했지만 창조적 아티스트와 독창성의 신화가 위세를 떨치던 당시의 음악계에서 이는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타인의 음악을 빌어올 경우 그것은 철저히 자기화되어야 한다’는 불문율에 따라 당시의 팝/록계에서 타인의 음악에 대한 참조는 오직 스탠다드 넘버를 개성적으로 소화하는 리메이크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는 이 앨범에서 자신의 음악을 의도적으로 타인의 스타일에 의거해 만듦으로써 이러한 신화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My Way”를 패러디 한 “Life On Mars?” 그리고 “Martha My Dear”를 살짝 뒤틀어놓은 “Oh! You Pretty Things”와 함께 대중음악의 포스트모던적 전환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이 앨범이 발표될 당시만 해도 데이빗 보위는 [Space Oddity]로 음악적 시효를 다 한 반짝 스타로만 기억되었다. 소속 음반사 데람(Deram)과 머큐리(Mercury)는 연이어 그를 해고했고 결국 이 앨범은 소속 음반사 없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정황은 이 앨범의 음악적 선택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음악적 야심을 드러내놓고 추구할만한 처지가 못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야심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그것의 톤을 다소 낮추었을 뿐이다. 이 앨범에서 그는 자신의 비전을 대중에게 친근한 음악적 스타일을 통해 표현하는 안전한 접근을 취한다. 이러한 접근이 취해진 대표적인 사례는 앨범의 도입부에 실린 세 곡의 팝 튠 “Changes”, “Oh! You Pretty Things” 그리고 “Life On Mars?”이다. 이 곡들은 각각 유로 팝, 캬바레 튠, 그리고 스탠다드 팝 발라드 스타일의 전통적인 어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는 이 곡들에 초현실주의적인 감각을 불어넣음으로써 장르 고유의 통속성을 지양하고 새로운 차원을 부여한다. 이 새로운 차원은 이 앨범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가장 다채로운 이 앨범을 피상적인 장르의 나열이나 스타일간의 어색한 부조화를 넘어서는 자신의 화이트 앨범으로 만들 수 있었다. 20011105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10/10

* 참고: 훗날 데이빗 보위는 줄리언 슈나벨의 첫 번째 영화 [바스키아](1996)에서 앤디 워홀 역을 맡았다. (오공훈 씀)

수록곡
1. Changes
2. Oh! You Pretty Things
3. Eight Line Poem
4. Life On Mars?
5. Kooks
6. Quicksand
7. Fill Your Heart
8. Andy Warhol
9. Song For Bob Dylan
10. Queen Bitch
11. The Bewlay Br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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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David Bowie 공식 사이트
http://www.davidbow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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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sman’s Bowie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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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wie at the Be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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