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Bowie – Station To Station – EMI, 1976 차갑지만 세련된 [Young Americans]를 통해 미국시장 진출에 성공한 데이빗 보위(David Bowie)는 이곳에서 자신의 입지를 더욱 굳히기 위한 두 개의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하나는 니콜라스 뢰그(Nicholas Roeg)의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The Man Who Fell To Earth)]를 통해 스크린 데뷔를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작 앨범 및 그에 동반할 새로운 페르소나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 두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긴밀한 연관 속에서 추진되었다. 새 앨범에 수록될 작품의 일부가 영화음악으로 사용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계획은 현실화되지 못했고 두 프로젝트는 각각 별개의 것으로 진행되어야만 했다. 아마도 SF라는 표면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스 뢰그과 데이빗 보위가 각각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이 서로 이질적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추정된다. 니콜라스 뢰그의 영화가 외계인의 존재를 통해 타자의 문제를 탐구한 현실비판 드라마였던 것에 비해 데이빗 보위의 앨범이 추구했던 비전은 프리츠 랑(Fritz Lang)의 고전 [메트로폴리스(Metropolis)]에서 영향받은 기계지배와 전체주의에 관한 디스토피아였다. 데이빗 보위가 새 앨범의 페르소나로 개발한 씬 화이트 듀크(Thin White Duke)도 당연히 [메트로폴리스]의 극중 인물 중에서 선택되었다. 그가 모델로 삼은 것은 메트로폴리스의 파시스트적 지배자 요 프레더센(Joh Fredersen)이었다. 그는 영화 속 요 프레더센의 이미지에 냉정한 완벽주의자의 성격을 강화해 씬 화이트 듀크의 페르소나를 완성했다. 그의 이러한 선택은 파시즘에 깊이 매혹되어 있던 당시 그의 정신적 상황을 반영한다. 그는 초기 작품인 [The Man Who Sold The World]에서 이미 니체(Nietzsche)의 초인사상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약물에 절어 있던 당시의 그는 자신의 이러한 관심을 대중에 대한 경멸과 전체주의 지도자에 대한 동경이라는 극단에까지 몰고 갔다. 실제로 이 시기에 나타났던 그의 언행(런던 빅토리아 역에 운집한 팬들에게 ‘하일 히틀러’ 사인을 보낸 것이나 “영국은 파시스트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는 인터뷰 발언 등)은 극우 인종주의자 에녹 파웰(Enoch Powell)을 지지함으로써 물의를 빚은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그것과 더불어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록 운동(Rock Against Racism Movement)’을 촉발하는 주된 계기가 되었다. 이 앨범은 영화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차갑고 어둡고 기계적이다. 그러나 이 앨범이 [메트로폴리스]의 주제의식을 전적으로 따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데이빗 보위는 현실과 희망 그리고 비인간과 휴머니즘에 관한 이 영화의 변증법적 내러티브를 씬 화이트 듀크의 파시즘적 시각에서 본 일원론적 서사로 재구성한다. 이에 따라 프리츠 랑이 영화 전반에 걸쳐 반명제로 깔아놓은 휴머니즘의 모티브는 크게 약화되고 오직 기계에 의한 인간의 전일적 지배라는 테마만이 앨범의 규정적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미래에 관한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이전에 발표된 [Diamond Dogs] 앨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Diamond Dogs] 앨범에서 다룬 있는 미래가 전쟁으로 황폐해진 불모지였다는 점에서 테크놀로지의 문제를 전면화한 이 앨범과는 차이를 보인다. 테크놀로지에 관한 문제의식에 걸맞게 이 앨범에서 우선 귀에 들어오는 것은 고도의 기술적 완결성이다. 이제까지 발표된 데이빗 보위의 어떤 작품에서보다 이 앨범에서는 연주상의 기교와 사운드의 세련미가 중시되고 있다. 이런 접근은 자칫 표피적이고 값싸게 들리기 쉬운데 그는 극단적인 감정의 배제를 통해 이런 위험을 극복한다. 치밀하게 계산되고 빈틈없이 정교한 사운드에 싸이보그를 연상케 하는 그의 무표정한 보컬은 감상적 멜로드라마의 여지를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을 연상케 할 정도로 헤비한 리프의 타이틀 트랙 “Station To Station”은 레드 제플린의 뜨거운 열정을 결여하고 있고, 포스트 펑크와 인더스트리얼을 예견하는 “TVC15″에서는 기계적인 싸늘함마저 느껴진다. “Stay”의 강력한 훵크나 “Golden Years”의 고급스러운 디스코는 흑인 음악을 모태로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고유한 영혼은 깃들어 있지 않다. 이 앨범이 발매되었을 당시 해외에서 가장 인기를 모았던 작품은 유일한 톱 10 진입곡 “Golden Years”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디미트리 티옴킨(Dimitri Tiomkin)의 1957년작 발라드 “Wild Is The Wind”가 소수의 데이빗 보위 팬들 사이에서 각별한 주목을 받았다. 여기서 그는 빙 크로스비(Bing Crosby) 이래 저음가수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창법을 통해 이 곡에 현대적인 감각을 불어넣는데 성공하고 있다.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곡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폐허의 황량함 속에서 허무와 고독을 반추하는 씬 화이트 듀크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곡과 함께 이 앨범의 기계적인 분위기에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작품은 또 하나의 발라드 “Word On A Wing”이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신의 구원을 갈구하는 내용의 이 곡은 영화 속 등장인물 마리아(Maria)의 기도 장면에 대응한다. 다소 진부한 멜로디 라인이 귀에 거슬리는 감도 없지 않지만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인간의 온기를 느끼게 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곡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20011105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8/10 수록곡 1. Station To Station 2. Golden Years 3. Word On A Wing 4. TVC 15 5. Stay 6. Wild Is The Wind 관련 글 David Bowie [Hunky Dory]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Diamond Dogs]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Young Americans]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Low]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Heroes]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Let’s Dance]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All Saints: Collected Instrumentals 1977-99] 리뷰 – vol.3/no.22 [20011116] 관련 영상 “TVC 15” ([Letterman Show] 중) 관련 사이트 David Bowie 공식 사이트 http://www.davidbowie.com http://www.davidbowie.co.uk Bassman’s Bowie Page http://www.algonet.se/~bassman Bowie at the Beeb http://www.bowieatthebeeb.com A Cyberspace Oddity http://home.no.net/tr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