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115112022-davidbowie_lowDavid Bowie – Low – EMI, 1977

 

 

‘예술가’로서의 첫 발걸음이자 정점

LA에 체류하는 동안 데이빗 보위(David Bowie)는 영화와 음악 양쪽에서 모두 예상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게다가 약물과 이혼 등 사생활의 문제가 얽히고 설켜 그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유명인으로 팬들을 상대해야 하는 그곳 생활에 환멸을 느꼈고 이 모든 것으로부터의 고립과 은둔을 절실히 원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이를 위해 가장 이상적 도시인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겼다. 여기에서 그는 한창 앰비언트 록을 실험하고 있던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합류했고 이노는 당시 독일 밖에서는 생소하기만 했던 크라우트 록의 세계로 그를 인도했다. 데이빗 보위는 기계적이고 정밀한 반복적 시퀀스를 통해 생성되는 사운드의 세계에 열광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에 근거하여 소위 베를린 삼부작이라고 불리는 앨범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이를 통해 이제까지의 쇼맨의 이미지를 벗어 던지고 스스로를 진지한 뮤지션 또는 조류의 첨단을 걷는 예술가로 재정립하려는 야심을 세웠다.

데이빗 보위의 베를린 삼부작은 순수히 음악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가 지닌 창조력의 정점을 나타낸다. 그 중에서도 첫 작품인 [Low]는 그가 음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보여준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은 오리지널 LP를 기준으로 A면과 B면이 확연하게 구별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A면에는 아방가르드 팝 또는 아트 펑크 소품들이 배치되어 있고 B면에는 보다 실험적이고 추상적인 앰비언트 연주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상의 특징은 이어지는 앨범 [Heroes]에도 공통되는 것이지만 [Low]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더욱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LP의 A면에 해당하는 CD 전반부의 수록곡들을 들어보면 전작 [Station To Station]에 비해 그 사운드가 훨씬 밝고 활기에 넘쳐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활기는 기본적으로 당시 그의 마음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앨범의 사운드적 특성에서 유래하는 측면도 크다. 기술적 완성도를 추구했던 전작이 극도로 세련되고 빈틈없이 치밀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던 반면 이 앨범은 사운드의 투명한 짜임새와 느슨한 조직을 통해 미묘한 감정의 전달에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사운드적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은 바로 이 앨범의 대표적 트랙인 “Sound And Vision”이다. 포스트 글램 시기의 데이빗 보위가 내놓은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만한 이 곡은 하모나이저를 이용해 튜닝된 스네어 드럼과 내추럴 톤의 전기 기타 그리고 미니멀리즘적 악기 편성을 통해 1960년대 초기 섀도우즈(The Shadows)나 머지비트 사운드(Merseybeat Sound)와도 같은 신선함과 생동감을 만들어낸다. 아트 펑크 스타일의 “Breaking Glass”와 아방가르드 팝 “Be My Wife” 그리고 이기 팝(Iggy Pop)이 우정출연하고 있는 “What In The World” 등도 이 앨범의 전반부에 감춰져 있는 보석들이다. 특기할만한 사실은 이 앨범이 펑크가 막 등장한 1977년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포스트 펑크적인 음악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여기서 들려주는 음악은 매거진(Magazine)이나 154 시절 와이어(Wire)의 음악과 가깝지만 시기상으로 보면 오히려 이들을 조금 앞서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앨범을 포스트 펑크 작품으로 분류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단지 그가 당시의 일반적 조류에서 한 발 앞서 있었음을 입증하는 증거 정도로 보는 것이 무난할 듯싶다.

앨범 전반부에 대한 일반적 호평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후반부에 수록된 연주곡들로 인해 그 평가가 양분된다. 브라이언 이노의 노선에 따라 만들어진 앰비언트 취향의 이 곡들은 무조적인 화성과 극소화된 선율 그리고 무한 반복적인 리듬을 통해 대중음악에 대한 통상적인 관념을 파괴한다. 음악으로서의 형태와 구조를 모두 결여한 이 곡들은 마치 겹겹이 쌓인 전자음들의 흐름 또는 덩어리로 들린다. 음악은 흐름을 타고 진행되는 것 같으면서도 변화 없이 제자리에 멈춰 서 있고 한 곳에 고정된 듯하면서도 새로움을 추가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의 이러한 음악적 실험은 당시 그의 많은 팬들을 당혹스럽게 했고 현재까지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수록된 곡들은 사실 이 계열의 음악 중 그다지 어려운 축에 속하는 작품들은 아니다. 마음을 편히 갖고 음악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몰입하거나, 첼로나 실로폰 등의 자잘한 디테일에 집중하여 감상한다면 이 곡들은 의외로 커다란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20011105 | 이기웅 keewlee@hotmail.com

10/10

* 참고: [Low]의 표지 프로필은 보위가 주연하고 니콜라스 뢰그 감독이 만든 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의 한 장면이다. (오공훈 씀)

수록곡
1. Speed Of Life
2. Breaking Glass
3. What In The World
4. Sound And Vision
5. Always Crashing In The Same Car
6. Be My Wife
7. A New Career In A New Town
8. Warszawa
9. Art Decade
10. Weeping Wall
11. Subterraneans

관련 글
David Bowie [Hunky Dory]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Diamond Dogs]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Young Americans]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Station To Station]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Heroes]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Let’s Dance] 리뷰 – vol.3/no.22 [20011116]
David Bowie [All Saints: Collected Instrumentals 1977-99] 리뷰 – vol.3/no.22 [20011116]

관련 영상

“Be My Wife”

관련 사이트
David Bowie 공식 사이트
http://www.davidbowie.com
http://www.davidbowie.co.uk
Bassman’s Bowie Page
http://www.algonet.se/~bassman
Bowie at the Beeb
http://www.bowieatthebeeb.com
A Cyberspace Oddity
http://home.no.net/tr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