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115110434-0322reviewakvarium-russkiiAkvarium – Ruskii Albom(Russian Album) – Triarii, 1991

 

 

추락한 변방의 록 지존의 새 출발과 뿌리찾기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의 시기는 보리스 그레벤쉬꼬프에게 영광과 굴욕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이 시기 그는 ‘러시아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팝 스타의 지위에 올랐지만, 그와 동시에 CBS(현 소니)에서 영어 앨범 [Radio Silence]를 발매하여 ‘셀링 아웃’이라는 비난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밴드 멤버들 사이의 불화와 아끄바리움의 최종적 해체로 이어졌다. 1990년 빅또르 쪼이의 사망도 그에게는 남다른 아픔을 주는 사건이었고,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라는 역사적 사건은 정신적 혼돈을 가중시켰다.

이 앨범은 ‘비참한’ 상황에서 보리스 그레벤쉬꼬프가 새로운 멤버들을 모아서 레코딩한 음반이다. 따라서 이 앨범이 ‘아끄바리움의 4년만의 신작’이라는 사실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보리스 그레벤쉬꼬프는 이전부터 아끄바리움이 뮤지션들의 그룹을 넘어 ‘사운드’이자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주장을 펼쳐 왔지만, 그의 옛 동료들에게는 보리스 그레벤쉬꼬프의 전횡으로 여겨지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보리스 그레벤쉬꼬프는 이 앨범을 발매하기 전에는 새로운 라인업을 ‘BG 밴드(The B.G. Band)’라고 불렀기 때문에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아끄바리움의 모든 앨범들 중에서 최고급에 속할 뿐만 아니라 ‘러시안 록의 나이든 파수꾼’의 새로운 전범을 제시한 음반이다. 이제 러시안 록은 소비에트 록이 아니었고 따라서 새롭게 출발해야만 했다. 소비에트 록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사라지고 국내에서는 록 커뮤니티가 와해되는 상황에서 보리스 그레벤쉬꼬프는 너무나도 신속하게 자신을 추스렸고, 그 결과는 ‘록의 감성이 살아있으면서도 에스닉하고 어쿠스틱한 음악’으로 나타났다.

악기편성은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아코디언,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 오보에, 트럼펫 등 오래된 악기들을 그때그때 첨가하여 간결하게 이루어져 있다. 예외가 있다면 명상음악 같은 분위기의 첫 트랙과 마지막 트랙, 그리고 비교적 로킹한 사운드를 담은 “Burlak(볼가 뱃사공의 노래)”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쿠스틱한 소품들은 지루한 느낌을 주지는 않게 정갈하게 편곡되어 있다.

가사를 모른 채 사운드만 듣다가 뭔가 신비적이고 ‘중세적’인 느낌을 받았다면 제대로 들은 것이다. “리아잔의 니끼따”, “제비”, “늑대화 까마귀”, “궤주(潰走)하는 말들” 등의 노래 제목은 러시아와 동유럽의 동화나 우화로부터 소재를 찾아서 가사를 붙인 것들이다. 특히 기타와 첼로의 협주에 플루트와 오보에가 더해져 동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Gosudarniya(귀부인)”이나 기타 소리나 영롱하면서 트럼펫의 신묘한 분위기가 어우러진 “Sirin, Alkonost, Gamayun”은 이탈리아의 싱어송라이터 안젤로 브란두아르디(Angelo Branduardi)를 연상시킨다(안젤로 브란두아르디의 히트곡인 “Confessioni Di Un Malandrino”는 본래 러시아 민요다). 그렇지만 안젤로 브란두아르디의 목소리가 순수한 동심을 표현한다면, 보리스 그레벤쉬꼬프의 목소리는 보다 원숙하고 현명하다. 그래서 기타의 두 대의 협주와 구슬픈 바이올린 솔로가 수놓고 있는 “Volki i Vorony(늑대와 까마귀)”와 “Koni Bespredela(궤주하는 말들)”에서의 목소리는 절제를 가하면서도 분노를 완전히 삭일 수 없는 비장한 목소리가 등장한다.

이런 ‘러시아적 전환’은 이미 1989년 발표한 아끄바리움의 가장 대중적 히트곡 “Poezd v Ogne (Train in Fire)”(http://www.aquarium.sama.ru)에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이는 서방에서 ‘록 스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깨달은 뒤 그가 얻은 교훈으로 보인다. 이는 또한 국제적 스타덤 뿐만 아니라 전국적 스타덤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로컬 영웅이 팝 스타로 머무르지 않는 길은 메인스트림 록을 거부하고 자신의 내면과 모국 러시아의 내면을 보다 깊숙이 추구하는 지향으로 나타난 것이다. 물론 러시아의 내면을 추구한다는 것은 신생 자본주의 러시아의 찬양과는 거리가 멀다. 힘찬 기타 스트러밍 위에서 슬프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Nikita Ryazanskii”의 가사를 음미하면서 1990년대 초 그의 환멸 속의 갈구를 느껴 보자. 한 나라를 대표하는 ‘록 베테랑’이 모두 이럴 필요는 없겠지만 이런 사람이 한둘 정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여 보소서. 요새를. 요새로부터 나오는 공포를 / 우리는 당신 손안의 자식들입니다 / 당신을 볼 수 있도록 가르쳐 주소서 / 모든 불운 속에서도 당신을 볼 수 있도록 / 주여, 이 빵과 포도주를 가져 가소서 / 주여, 나락으로 우리가 빠져들 때 지켜봐 주소서 / 물 속에서도 숨쉴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시옵소서”

주: 니끼따의 리아잔이란 러시아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못 하나 없이 도시를 건설하고, 그 뒤에 신을 찾아 도시를 떠나는 인물’이라고 한다. 뮤직 비디오는 여기를 눌러 보길. http://win.unitel.spb.ru 20011115 | 신현준 homey@orgio.net

9/10

수록곡
1. Arkhisratig (Orchestrating)
2. Nikita Ryazanskii (Nikita of Ryazan)
3. Gosudarniya (Milady)
4. Lastochka (Swallow)
5. Volki i Vorony(Wolves and Ravens)
6. Zapovednaya Pesnya (Wilderness Song)
7. Sirin, Alkonost, Gamayun (Sirin, Alkonost, Gamayun)
8. Koni Bespredela(Stampeding Horses)
9. Elizaveta (Elizabeth)
10. Burlak (The Volga Boatsman Song)
11. 25-i Den’ Luny (25th Day of the Moon)

관련 글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6): 1990년대의 카오스… 그리고 록 커뮤니티의 와해 – vol.3/no.22 [20011116]
Akvarium, [Akustika(Acoustics)] 리뷰 – vol.3/no.18 [20010916]
Akvarium, [Radio Afrika(Radio Africa)] 리뷰 – vol.3/no.18 [20010916]
Akvarium, [Den Serebra(Day Of Silver)] 리뷰 – vol.3/no.18 [20010916]
Akvarium, [Ravnodenstvie(Equinox)] 리뷰 – vol.3/no.18 [20010916]
Akvarium, [Snezhnyi Lev(Snow Lion)] 리뷰 – vol.3/no.22 [20011116]

관련 사이트
Akvarium 사이트들
http://www.planetaquarium.com (러시아어)
http://www.aquarium.ru (러시아어)
http://www.planetaquarium.com/eng (영어)
http://www.dharmafish.org (영어)
[Ruskii Albom(Russian Album)] 전곡 mp3 다운로드 사이트
http://aquarium.sama.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