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sa – Chernaya Metka(The Black Mark) – Moroz, 1994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면서 부르는 레퀴엠 1990년대 초반 러시아의 정치·경제 상황은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지만, 밴드로서 알리사(Alisa)의 경력은 승승장구하는 것이었다. 새롭게 출범한 옐친 정권도 밴드의 프론트맨 꼰스딴찐 낀체프(Konstantin Kinchev)에게 ‘소비에트 자유수호상’이라는 상을 줄 정도로 호의적이었고(낀체프는 이 상을 뒤에 반납한다), 그가 펴낸 몇 권의 책과 공연실황 비디오의 성공 등은 그들을 새로운 시대 록 음악의 대변자로 자리매김시켜 주었다. 그러나 악재는 밴드 안에서 터져 나왔다. 1993년 2월 13일 기타리스트 추므이치낀(Igor Chumychkin)이 약물 복용 상태에서 창 밖으로 몸을 던져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고, 뒤이어 키보디스트 까롤례프(Andrei Korolev)마저 돌연 밴드를 떠난 것이다. 전에 없던 휴식기를 갖게 된 알리사는 새로운 멤버의 영입 없이 세상을 떠난 멤버에 대한 진혼곡의 성격을 갖는 앨범을 제작하게 된다. 그 계기야 어찌 됐든 [Chernaya Metka]는 전작들에 비해 한층 무겁고 어두운 느낌을 가지고 있다. 밴드 결성 이후 최초로 기타, 베이스, 드럼, 보컬이라는 정상적인 록 밴드의 라인업을 갖추게 된 것도 내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그들의 대표곡들이 포스트펑크/뉴 웨이브에 기반한 음악이었다면, 본 앨범의 곡들은 ‘헤비 메탈’에 근접한 스타일로 변했다. 물론 여기에는 약간의 상업적 성공에서 뒤따른 금전적 지원이라는 조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타이틀 트랙 “Chernaya Metka(검은 마크)”는 알리사 스타일의 전형이라고 할 만한 곡이다. 단, 이제 더 이상 플루트, 바이올린, 키보드의 도움 없이 스스로 멜로디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부담과 책임감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안드레이 샤딸린(Andrei Shatalin)의 기타는 실력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일각에서의 걱정을 기우로 만든다. 이어지는 “Paskuda(Dirty Man)”는 알리사 앨범 전작을 통틀어 가장 ‘헤비’하고 빠른 곡인데, 제목 또한 “비열한 인간”이라는 뜻의 속어라서 이들의 ‘애티튜드’를 확인시켜 준다. 저음부가 좀 더 강조되었다면 외국시장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쓰래쉬 넘버가 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들의 달라진 면모를 과시하기에는 충분하다. “Chernaya ROCK’N’ROLL Mama (Black ROCK ‘N’ROLL Mama)”는 이 앨범에서는 이례적으로 경쾌한 감각이 살아있는 곡으로, 중간에 랩을 시도한 것도 이색적이다. 물론 알리사 특유의 음울함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8분 39초에 달하는 “Durak(Fool)”은 이후 이들의 라이브 공연의 레퍼토리에서 빠지지 않게 된 곡으로 극적인 구성이 인상적이다. 서정적인 관악기 선율로 시작되어 태양이 보이지 않는 황량한 들판의 상실감을 읊조리던 노래는 중반 이후 격정적 반전을 거쳐 “바로 그거야, 웃을 수밖에!”라는 자조적 슬픔으로 승화된다. 이 곡이 “Moyo Pokolenie(My Generation)”, “Krasnoe Na Chernom(Red In Black)”과 같은 다른 곡들과 나란히 밴드의 송가로 자리잡은 것을 고려해보면, 1980년대에 행동을 촉구하던 낀체프의 가사의 변화는 1990년대 러시아 록 팬들의 정서의 변화를 나타낸다는 생각이 든다. “Zhigi-Gulyai(Light And Walk)”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러시아에 있었던 흘리스트(Khlyst)라는 종파의 수도자의 자기학대를 통한 구원을 노래한 곡이다. 그들은 교회의 신비주의나 권위, 직업적 승려를 부정하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매질하고 다녔다고 한다. “나를 혹사시켜! 검게 그을릴 때까지, 심장에는 고통만을 남겨둘 뿐”이라는 독설적 냉소는 “Ateist(Atheist)”와 “Umeret’ Molodym(Dying Young)”에서도 계속되고 특히 이 두 곡에서의 목소리는 매우 위악적이다. 어떻게 보면 이 앨범은 스튜디오에서 제대로 레코딩된 최초의 앨범이다. 육중하고 속도감 있으면서 프로듀싱이 잘된 사운드는 하드 록을 추구하는 록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욕심을 낼 만한 것이다. 게다가 기타와 드럼의 연주력이 받쳐 준다면 더욱 더. 그 점에서 이 음반은 ‘메탈 밴드’ 알리사의 데뷔 앨범인 셈이다. 그렇지만 이는 국제적 및 국내적 트렌드를 고려할 때 그리 적절한 선택은 아니었던 듯하다. 이후 앨범들에서 낀체프의 가사와 멜로디가 가다듬어진 스타일로 회귀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 20011115 | 박일경 nikcuf@hanmail.net 8/10 수록곡 1. Chernaya Metka (Black Mark) 2. Paskuda (Dirty Man) 3. Chernaya ROCK’N’ROLL Mama (Black ROCK ‘N’ROLL Mama) 4. Belaya Nevesta (White Bride) 5. Durak (Fool) 6. Zhigi-Gulyai (Light And Walk) 7. Ateist (Atheist) 8. Umeret’ Molodym (Dying Young) 9. To Li Pro Lyubov’, To Li Pro Bedu (To Love, Or To Misfortune) 관련 글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6): 1990년대의 카오스… 그리고 록 커뮤니티의 와해 – vol.3/no.22 [20011116] Alisa [Energia(Energy)] 리뷰 – vol.3/no.20 [20011016] Alisa, [Blok Ada(Blockade)] 리뷰 – vol.3/no.21 [20011101] Alisa, [Dzhaz(Jazz)] 리뷰 – vol.3/no.22 [20011116] 관련 사이트 Alisa 공식 사이트 http://www.alisa.ru Alisa 비공식 사이트 http://www.inse.kiae.ru/~stivv/alisa Alisa에 관한 바이오그래피, 디스코그래피, 음원(영어) http://russia-in-us.com/Music/Rock/Alisa Alisa [Chernaya Metka] 전곡 mp3 다운로드 사이트 http://omen.ru/music/mp3/albums/AlisaChernMetk.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