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sa – Dzhaz(Jazz) – Rec records, 1996 ‘사이비 재즈’에 실은 고독한 넋두리 알리사(Alisa)와 꼰스딴찐 낀체프(Konstantin Kinchev)가 어떤 인물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 앨범을 듣고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앨범 타이틀마저도 ‘재즈’라서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것이다(영어 알파벳으로 ‘Dzhaz’라고 이상하게 표기된 단어가 바로 ‘재즈’라는 뜻이다). 앨범 표지만큼은 여전히 성난 얼굴이 그려있지만 음악은 ‘이지 리스닝’이기 때문이다. 어쿠스틱 기타의 애잔한 간주로 시작하여 바이올린이 거들어주는 첫 곡 “Teatr”의 “나의 극장은 나의 광상곡… 내 콘서트 홀에는 나 홀로 있지”라는 가사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 이런 ‘광대’의 감상은 “나는 깨진 쇼윈도를 모아 유리조각을 팔지. 나의 꿈과 나의 연기에 몰두하네”라는 다음 곡 “Slyozy Zvezd(별들의 눈물)”로 이어진다. 12/8 박자의 더욱 처진 분위기의 노래다. “그러나 나는 옳지 않았지 / 이상한 일이야”, “누군가 해내든(성공하든) 괜찮지 뭐”, “길을 잃었어, 달리기에는 지쳤어”라고 읊조리는 세 번째 곡 “Perekrestok”은 더욱 이상하다. 러시안 록의 지존이라는 보리스 그레벤쉬꼬프마저도 씹어댔던 낀체프가 이렇게 자신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셔플 리듬을 담은 이 곡이 ‘정말 재즈 같네’라는 생각은 나중에야 떠오를 뿐이다. 알리사의 곡 중에서는 이례적으로 베이스주자 뾰뜨르 사모일로프(Pyotr Samoilv)가 보컬을 맡은 “Poezd(Train)”도 마찬가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기차를 타고 가는 이야기인데, “어느 방향이 옳은지 모르겠네 /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라는 가사가 축축 처지는 보컬에 담긴다. 아코디언과 바이올린도 방향없이 이리저리 흔들려댄다. 다시 낀체프가 보컬을 맡은 “Dozhd”에서도 “숨쉬기가 어렵고, 잠드는 게 두려워 / 물을 갈망하며 하늘에 손을 뻗쳤더니… / 비가 오기는 왔는데 천둥까지 몰아치네”라는 섬약한 남자가 발견된다. 아코디언이 등장해서인지 자끄 브렐(Jacques Brell) 같은 샹송의 음유시인이 부르는 오래된 노래의 멜랑콜리가 전해진다. 가을의 정취를 묘사하다가 “나는 이제 늦은 것 같아(Kamnepad(Fall))”라고 독백한다든가 “나는 전장에서 연주하네 / 기다리느라 지친 사람들을 위해(“Ya Igrayu V Voinu(나는 전장에서 연주하네)”라고 자조하면서 앨범은 슬픈 관조를 이어간다. 스타디움에서 거친 사자후를 토해내서 공연장 밖의 경찰(그리고 경비견!)을 긴장시켰던 알리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에 교외의 허름한 카페에서 연주하는 오래된 재즈 밴드가 들어선 것 같기만 하다. 낀체프의 실제 나이와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자세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손목에 난 상처도 군복무를 거부하기 위해 자살하는 과정에서 칼로 그은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전후 정황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그는 1960년을 전후하여 태어난 듯하다. 그렇다면 그도 이제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거칠기만 했던 인생 역정을 반추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이야 어떻든 한국식 표현을 빌면 이 앨범은 ‘서정적 발라드에도 강한’ 알리사와 낀체프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정작 음악 이야기를 안 한 듯하다. ‘이게 무슨 재즈야’라고 흥분할 재즈 팬이 많겠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록 밴드의 편성에 피아노와 아코디언, 바이올린 등의 현악기, 색서폰 등의 관악기, 하모니카 등이 적절하게 재지한 무드를 만들어낸다. 물론 “Ya Igrayu V Voinu”와 “Kolybelnaya(Cradle)”에서는 기존 팬들을 위해 하드 록의 리프를 슬쩍 삽입하고 있지만. 러시아 뿌리로의 회귀가 ‘유행’이었던 시기에도 이런 시류에 편승하지 않았던 알리사였지만 “Lunnyi Bals(달의 월츠)”에서는 슬며시 타협(?)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이 음반은 별로 말이 필요없는 작품에 속한다. 듣다 보면 그냥 취해 드니 말이다. 한국의 FM 라디오에서 틀어줄 만한 곡도 꽤 많은데… 아차,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 되지. 20011115 | 신현준 homey@orgio.net 8/10 * 박일경 nikcuf@hanmail.net의 도움으로 씀. 수록곡 1. Teatr(Theater) 2. Slyozy Zvezd(Tears of Stars) 3. Perekryostok(Intersection) 4. Kartonnyi Dom(Fragile House) 5. Poezd(Train) 6. Dozhd(Rain) 7. U Istokov Goluboi Reki(Springs Have Blue Rivers) 8. Vecher(Wind) 9. Kamnepad(Fall) 10. Ya Igrayu V Voinu(I Play In War) 11. Nochnye Okna(Night Windows) 12. Lunnyi Bals(Lunar Waltz) 13. Kolybelnaya(Cradle) 14. Koda(Coda) 관련 글 그 곳에도 ‘록의 시대’가 있었네(6): 1990년대의 카오스… 그리고 록 커뮤니티의 와해 – vol.3/no.22 [20011116] Alisa [Energia(Energy)] 리뷰 – vol.3/no.20 [20011016] Alisa, [Blok Ada(Blockade)] 리뷰 – vol.3/no.21 [20011101] Alisa, [Chernaya Metka(The Black Mark)] 리뷰 – vol.3/no.22 [20011116] 관련 사이트 Alisa 공식 사이트 http://www.alisa.ru Alisa 비공식 사이트 http://www.inse.kiae.ru/~stivv/alisa Alisa에 관한 바이오그래피, 디스코그래피, 음원(영어) http://russia-in-us.com/Music/Rock/Alisa Alisa [Dzhaz(Jazz)] 전곡 mp3 다운로드 사이트 http://omen.ru/music/mp3/albums/AlisaDjaz.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