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31113931-0321pearljam_tenPearl Jam – Ten – Epic/Sony, 1991

 

 

얼터너티브 록의 상업적 대성공의 흐릿한 기억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알쏭달쏭해진다. 그때 난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왜 모두들 거기에 그토록 열광했었지? 당시에는 꽤 그럴듯한 이유와 명분이 있었겠지만 세월 앞에는 결과를 제외한 모든 것이 흐릿하게 지워진다. 벌써 10년이나 지난 얼터너티브 록에의 열광의 기억도 희미하다. 무엇보다 지금 내 앞에 놓인 펄 잼(Pearl Jam)의 데뷔 앨범 [Ten]의 놀라운 성공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글을 쓰기 위해 오랜만에 집어든 음반은 많은 것을 얘기해주지 않는다. 여전히 독특한 분위기를 담고 있지만, 세월이 흘러서인지 전체적으로 듣기에 무겁고 답답한 느낌이다. 특히 간주부의 날카로운 기타 솔로는 어쩐지 부담스럽고, 에디 베더(Eddie Vedder)의 목소리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 투박하게 들린다. 한편 의도적으로 프로듀싱의 손길을 배제한 믹싱은 초기 그런지의 ‘의도된 조잡함’을 보여주긴 하지만 귀에는 낯설다. 게다가 부클릿을 펼치면 한 눈에 들어오는 멤버들의 하이파이브 모습이라니. 이들의 장기인 생생한 현실을 묘사한 가사야 어차피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이에겐 간접적으로만 경험될 뿐이니 이는 제외하자. 혹시 이후 수많은 아류 밴드들이 ‘특히’ 펄 잼의 스타일을 많이 모방하여 나의 귀가 무디어진 까닭은 아닐까?

좀더 생각을 집중해보자. 1980년대 중후반 이래 컬리지 록/로컬 인디 씬의 지속적 성장과 분출의 결과? 댄스 음악 중심의 주류 팝과 LA 메탈의 득세에 싫증을 느낀 대중들의 취향의 변화? 보수/냉전의 이데올로기의 퇴조와 더불어 등장한 새로운 감성의 세대 출현? 이런 설명이 너무 일반적이라면 비슷한 시기 발표된 너바나(Nirvana)의 [Nevermind]의 놀라운 성공으로 인한 시애틀 씬의 급부상은? 하긴 초반 저조한 앨범 판매고로 고전하던 이들이 일약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게 된 데는 너바나의 성공이 결정적이었다. 아니면 노동자들의 양심적 대변인이라는 오랜 록 전통의 페르소나를 이들이 구현했다는 점은? 사회의 부조리에 침묵하지 않으면서 스타처럼 거들먹거리지 않는 록의 영웅상은 미국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미국인의 일반적인 취향에 근거해 말한다면 언제 터질지 모를 위험한 너바나보다는, 약물에 찌들어 비틀거리는 엘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보다는, 거장의 카리스마로 충만한 사운드가든(Soundgarden)보다는 아메리칸 하드 록의 전통을 충실히 이어받은 이들이 상대적으로 친숙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이처럼 당시 풍경들이 하나둘 기억에 불려지면서 이들의 음악도 그 생명력을 조금씩 회복해가기 시작한다. 스톤 고사드(Stone Gossard)와 마이크 매크리디(Mike McCready)의 당당하고도 번뜩이는 기타 소리가 인상적인 “Even Flow”, “I, I, I’m still alive”하는 가사가 귓가에 맴도는 “Alive”, 뮤직 비디오와 가사가 적지 않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던 “Jeremy”,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힘있는 사운드로 담아낸 “Why Go”, 몽환적으로 아름다운 발라드 “Black”, 그리고 유일하게 멤버 전원이 작곡에 참여한 장대한 클로징 넘버 “Release” 등등. 무엇보다 아직 성장중인 에디 베더와 밴드의 실질적 리더였던 스톤 고사드의 재능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이었다.

어쨌든 당시는 모든 면에서 얼터너티브 록의 전성기였다. 20011029 | 장호연 bubbler@naver.com

8/10

수록곡
1. Once
2. Even Flow
3. Alive
4. Why Go
5. Black
6. Jeremy
7. Oceans
8. Porch
9. Garden
10. Deep
11. Re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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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영상

“Jeremy”

관련 사이트
http://rakkan.com/pearljam
한 팬이 만든 펄 잼 사이트. 가사에 대한 해석을 담은 것이 이채롭다
http://www.fivehorizons.com/index.shtml
펄 잼의 팬진으로 콘서트에 관한 자료와 아티클 모음이 볼 만하다
http://www.freechal.com/pearljam
펄 잼 한국 팬 사이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