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31093415-0321huckleberryfinn허클베리 핀 – 나를 닮은 사내 – 쌈넷, 2001

 

 

볼륨을 낮추고 풍성하고 매끄럽게

#1. 밴드 허클베리 핀을 떠올리면 그들의 음악보다는 먼저 전 보컬이었던 남상아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이것은 물론 그만큼 그녀의 이미지가 강렬했거나, 그만큼 한국에서 주목할 만한 여성 뮤지션이 드물(었)다는 현실의 반증일 것이다. 어쨌든 허클베리 핀의 1집 [18일의 수요일]에 대한 인상은 강한 사운드에 상징적인 단어들을 나열함으로서 ‘느낌’보다는 ‘맥락’을 중시하는 듯한 것이었다. 듣는 순간의 직접적인 감상보다는 몇 번 반복해서 들어보며 되새기는 재미가 있었다는 뜻이다.

#2. 1집이 발표된 것이 1998년, 2집 [나를 닮은 사내]가 발표된 것은 2001년. 그동안 보컬과 기타를 맡았던 남상아와 드럼을 맡았던 김상우는 3호선 버터플라이로 옮겨갔고, 기타와 베이스를 맡았던 이기용이 홀로 남아 허클베리 핀이라는 이름으로 3개의 데모 음반을 제작, 공연장을 통해 판매하기도 했다. 2000년 4월에 제작한 데모(버전2.0) 테이프부터 이소영(보컬), 김원구(베이스)와 함께 허벅지밴드, 이발쑈 포르노씨, 슈퍼 스트링을 거친 김윤태(드럼)가 등장했다. 하지만, 김윤태와 같은 허벅지 출신인 바이올리니스트 강해진과, 비올라의 김구영을 발견한 것은 제법 의외였던 기억.

#3. 허클베리 핀의 2집 앨범은 데모 음반들의 곡을 추려서 만든 앨범이기도 한데, “고양이”와 “Em” 같은 곡은 원곡과는 편곡이 조금 달라져 수록되었다. 1집이 디스토션의 기타 사운드와 강한 드럼 비트, 베이스의 구성으로 그런지(grunge)한 펑크 사운드를 표방했다면, 2집은 바이올린과 비올라와 같은 현악의 배치로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물론 이 느낌은 현악의 고유한 특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개별 곡들 안에서 현악이 배치되는 상황에 의한 것이다. “사막”이나 “Em”에서의 바이올린/비올라는 기타 리프와 보조를 맞추어 진행되는 방식으로, “길들여진 개”나 “Somebody To Love”에서는 기타와는 별도로 배치되어 곡의 서정적인 아우라(aura)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사용된다는 뜻이다. 게다가 “희망이 다 살해되기 전”이나 “난 미쳤어 넌 차를 내와”라는 식으로 상징적이거나 때론 무의미하기까지 한 가사와, 현악의 사용으로 보다 명확해진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충돌은 묘한 감흥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 외에 전형적인 스카(ska) 리듬의 록앤롤인 “Oz”나 그런지 사운드의 “고양이”는 1집의 감수성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필할 듯하다.

#4. 허클베리 핀의 2집은 매끈하게 잘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는 ‘가요’처럼 들린다. ‘가요처럼 들린다’는 말은 구리다는 뜻이 아니다. 서양의 악기와 사운드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무언인가 바다건너 ‘그들’의 음악과는 다르게 들린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한국적 정서라 부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이 느낌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이러한 ‘다름’이 의도적인 것인지 우연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도 궁금한데, 이것은 그냥 서양에서 건너온 사운드가 (한국에서) 걸러지는 방식에 대한 궁금증이라고 해두면 좋을 듯하다. 그것이 ‘환경’에 의한 것인지 ‘조건’에 의한 것인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가요 같다’는 느낌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은 너무 개인적인 것일까? 어쨌든, 앞서 얘기한 맥락으로, 허클베리 핀 2집에 대한 이야기들 중에서 이소영의 음색이 남상아와 비슷하다 아니다라는 논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보태며 마무리하자. 20011030 | 차우진 djcat@orgio.net

6/10

ps. 이 앨범은 b-side network라고(그들이 명명한?), 일종의 통신판매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이 방식은 하나의 앨범에 많은 회사가 투자해서 그들이 각각 독자적인 유통망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한다. 소비자로서는 앨범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로 국한된다는 얘기고, 뮤지션/회사의 입장에서는 내로우 마케팅(narrow marketing)을 통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새로운 시도가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 낼 수 있기를!

수록곡
1 사막
2 Somebody To Love
3 A
4 길들여진 개
5 훌라
6 Shaker
7 Em
8 Oz
9 길을 걷다
10 고양이
11 Silver

관련 글
허클베리 핀 [18일의 수요일] 리뷰 – vol.2/no.24 [20001216]

관련 사이트
허클베리 핀 공식 사이트
http://www.huckleberryfin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