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31090349-0321nirvana_nevermindNirvana – Nevermind – Geffen, 1991

 

 

1990년대의 ‘기념비적 앨범’의 위험한 리스크

“곡 전체가 F5 – Bb5 – Ab5 – Db5 라는 단순한 코드 진행으로 이루어진 악구를 가지고 있고, 템포의 변화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거의 이펙트가 걸리지 않은 기타의 인트로가 넌지시 시작되다가 느닷없이 강력한 디스토션을 먹은 기타가 드럼과 베이스의 뒷받침을 받아 파괴적인 사운드를 난사한다. 그리곤 다소 잠잠해진 뒤 리드믹한 보컬이 버스(verse) 부분을 장식한다. 그리고 다시 코러스(chorus) 부분에서는 인트로 후반부와 유사하지만, 이제는 절규하는 목소리까지 더해진 난폭한 사운드가 듣는 이의 귀와 몸을 두들긴다. 간주의 기타 솔로도 현란한 속주가 아니라 보컬의 멜로디 라인과 동일한 단순한 연주이지만, 묘한 불협화음 속에서 피드백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긴장감을 유지한다.”

[얼트 문화와 록 음악 1](한나래, 1996)이라는 책의 76쪽에 나오는 “Smells Like Teen Spirit”에 관한 ‘해설’이다. 그런데 왠지 이런 평은 이제 맥빠지지 않는가. 이 곡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가 그렇다. 이런 앨범의 경우 할 말이 너무도 많고 그와 동시에 특별히 할 말이 별로 없다. 언더그라운드 그런지의 에지(edge)와 메인스트림 하드 록의 매끄러운 프로듀싱을 절묘하게 조화시켰다는 ‘사운드 감식’이나, 혹은 물과 기름 같은 헤비 메탈과 틴 아이돌 팝을 접속시켰다는 ‘장르 해설’로 충분한 듯하지만 무언가 미진함을 떨칠 수는 없다. “Lithium”, “In Bloom”, “Polly”에서 들을 수 있듯, 펑크 록에서 음악적 정체성을 추구하면서도 ‘쓰리코드주의’와는 거리가 멀게 변화무쌍한 코드 진행을 사용했다는 업적도 새삼스럽게 들춰내기 멋적다. 앞의 인용문에서 말한 셈이지만 시종일관 몰아붙였던 1980년대 하드코어의 선배 밴드들과 달리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는 ‘스톱 앤 스타트’의 진행, 시끄러운 노이즈의 와중에 존재하는 선명한 멜로디의 훅(hook), 순수주의 펑크인 “Territorial Pissings”부터 감상적 발라드 “Somethinmg In The Way”에 이르는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 등도 이 음반의 ‘기념비적 가치’에 따라붙는 설명일 것이다.

‘메시지’는? 이 앨범이 ‘세대의 의식을 일깨우려는 사명감’으로 가득차 있다는 지적은 커트 코베인의 이후의 운명을 고려한다면 함부로 지껄일 말이 아니다. “Smells Like Teen Spirit”이 ‘너무 지루해 하지만 자기확신에 빠져 있는’ 당대의 세대의 냉담과 무관심을 꼬집고, “In Bloom”이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행태를 문제삼고, “Come As You Are”가 실제의 행동과 사회의 인식 사이의 괴리를 섬세하게 지적하고, “Breed”가 한 청년이 성장하여 미국 주류사회의 덫에 걸리는 과정을 노래한다… 운운하는 것은 어디서 나온 자료를 참고한 뒤 시어(詩語)에 가까운 가사를 열심히 음미한 다음에야 어렴풋이 드는 생각일 뿐이다. “Lithium”이 신경쇠약에 걸려 독백하는 사람을, “Polly”가 유괴 당하여 고난을 겪는 소녀를, “Something In The Way”가 집에서 쫓겨나서 다리 밑에서 사는 본인을 각각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이렇게 무겁고 시끄러우면서도 신나고 유쾌한 음악’, ‘처음 들을 때 낯설면서도 들을수록 친숙해지는 음악’, ‘연주하기는 쉬우면서 창조하기는 힘든 음악’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아직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비틀스(The Beatles) 이래 다시 한번 전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로큰롤 드림’을 꿈꾸게 만든 것이 이 앨범의 또 하나의 ‘글로벌’한 업적일까. 불행히도 ‘따라하기는 쉬워도 만들어내기는 힘든 음악’이라는 너바나 음악의 가치가 충실하게 전파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결코 아닌 것 같다. 리스크를 걸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고, 그렇게 리스크를 거는 사람들 중에는 제 명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인생의 비밀이니까. 20011030 | 신현준 homey@orgio.net

10/10

수록곡
1. Smells Like Teen Spirit
2. In Bloom
3. Come As You Are
4. Breed
5. Lithium
6. Polly
7. Territorial Pissings
8. Drain You
9. Lounge Act
10. Stay Away
11. On A Plain
12. Something In Th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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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h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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