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rvana – In Utero – Geffen, 1993 자궁 속으로 근원으로 회귀하려는 욕망을 표현할 때 사람들은 흔히 자궁을 거론하거나 찬미하곤 한다. 특히 섬약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그것도 모성을 동경하는 (여성적) 남성이 자궁 예찬론자가 되기 쉽다. ‘자궁 속으로’라고 외침으로써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새로운 탄생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분출해왔던가. 그런데 이런 욕망을 표현하는 것은 그 사람이 바로 지치고 곤경에 처한 상태라는 것을 토로하는 다른 방식이 된다. 너바나의 마지막 정규 앨범이 된 [In Utero](앨범 타이틀이나 커트 코베인이 커버 아트에 참여한 앨범 커버를 포함해)도 역시 이런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10대의 분노는 모든 대가를 다 지불했다 / 난 지겨워졌고 나이가 들었다”는 첫 곡 “Serve The Servants”나, “난 매우 지쳤어 잠들 수 없을 정도로”라고 탄식하는 낙태 여성의 목소리 “Pennyroyal Tea”는 그의 지친 정신상태를 반향하는 것도 같다. “All Apologies”에서 ‘변명/사과’ 혹은 ‘매장’이라는 어휘는 이상하게도 유서와 같은 인상을 준다. 이처럼 이 앨범은 죽음과 분리시키려 해도 이와 중첩된다. 물론 이것들을 은밀한 암시로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사후적인 것이며 인상비평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앨범 슬리브의 사진에 실린 코베인의 ‘맛이 간’ 예사롭지 않은 눈빛처럼, 그즈음의 그가 위태롭고 혼미했던 건 사실이지만. 이 앨범을 발표할 당시 너바나, 특히 커트 코베인은 주류 연예계의 상업성과 언더그라운드의 순수성이 격돌하는 복잡한 존재가 되자 급속도로 지쳐갔는데, 급기야 마약에 빨려들어 위험한 순간을 노정한 그의 모습이 종종 목도되었다. 록 음악과 비즈니스가 맺는 복잡한 관계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그에게 돌아왔던 것은 자기 혐오라는, 가장 무서운 극약처방이었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증오, 이로부터 비롯된 죽음에 대한 욕망’은 그의 위험한 상태를 보여준다. 원래 이 앨범은 ‘I Hate Myself, And I Want To Die’를 타이틀로 삼으려 했지만 ‘단지 농담일 뿐’이라는 그(들)의 의도를 다른 이들이 이해할 리 없었고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 뻔해 삭제했다. 그러나 그의 ‘농담’은 결국에는 ‘진담’인 셈이 되었다. 언더그라운드의 순수한 자궁으로 돌아가려는 듯한 몸부림은 이 앨범이 담지한 펑크적인 에토스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이를 조련한 이는 1980년대 노이즈 록 밴드 빅 블랙(Big Black)의 거두(巨頭)이자 인디 록 프로듀서로 명성을 날린 스티브 앨비니(Steve Albini)다. 혼돈스런 노이즈와 강렬한 날 것이 휘감은 이 앨범과 비교한다면 [Nevermind]는 상대적으로 정제되고 미끈하게 들린다. 크리스 노보셀릭(Chris Novoselic)의 베이스와 데이브 그롤(Dave Grohl)의 드럼 역시 원초성을 배가시킨다. 단순한 코드로 진행되는 “Very Ape”와 무의미한 단어들로 절규하는 “Tourette’s” 같은 곡은 2분이 채 되지 않는다. “Radio Friendly Unit Shifter”에서는 혼돈스런 노이즈가 재생된다. 파트릭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 영감을 받은(극도로 예민한 후각 때문에 사회에서 살 수 없게된, 커트 코베인이 동일시할 만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Scentless Apprentice”는 강한 ‘중금속’ 리프와 우악스런 절규가 돋보인다. 그와 같은 절규 속에 “Milk It” 같은 곡은 ‘stop-and-start’의 그런지식 연주 패턴을 고수한다. 또한 “Rape Me” 같은 곡은 너바나의 정공법인 고요한 전반부와 폭발하는 후반부, 너바나식 코드 진행을 보여준다. 의외로 첼로 연주가 포함된 “Dumb” 및 “All Apologies”나, 서정적인 읊조림으로 시작하는 “Pennyroyal Tea”도 매력을 발산한다. 한편 이 앨범에서도 역시 그에게 딜레마인/였던 가족이나 결혼 문제가 등장한다. “내가 성장하면서 그들은 상처를 주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부정했지만 “대신 내가 아빠가 되었다”는 “Serve The Servants”의 노래처럼 가족의 사슬은 아이러니컬하게 이어진다. 또한 1992년 레딩 페스티벌에서 딸 프랜시스와 커트니 러브에게 바친 “All Apologies”는 “난 결혼했어 매장되었지”라고 고백하는데 ‘결혼=무덤/매장’이라는 도식이 통상적이면서도 섬뜩하게 들린다. 너바나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명했던 성 정치의 메시지 역시 심화되어 설파되는데, “All Apologies”에서는 “모든 사람이 게이”라고 외친다. 또한 강간과 낙태와 같이 성과 관련된 제문제들이 다뤄진다. “Pennyroyal Tea”는 낙태성분이 든 약초 패니로열로 만든 차를 마시는 여자를 소재로 삼아 낙태 문제를 등장시켰고, “Rape Me”는 한 소녀를 강간한 남자가 감옥에 들어가 역시 강간당한다는 강간의 악순환을 이야기한다. 전자의 경우 코베인은 페니로열 티를 마시는 행위를 청결함/정제의 욕망과 동일시했고, 후자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녹음 이후 코베인도 역시) ‘퍽 더 미디어’ 송가로 받아들였다. 미디어/상업주의에 대한 분노는 헐리우드에서 희생된(커트 코베인이 자신의 딸 이름을 따기도 했던) 여배우 프랜시스 파머(Frances Farmer)와 동일시되며 진행된다(“Frances Farmer Will Have Her Revenge On Seattle”). 그러나 자궁이라는 시원(始原)으로 회귀하는 것은 사실은 불가능하다. 죽음으로써만이 가능하다면 또 모를까. 고로 자궁은 탄생이자 죽음의 상징이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실패’와 ‘낙오’에 대한 이들의 음악은 발매 1주만에 차트 정상에 올라 ‘성공’했다. 반면 커트 코베인은 분열적인 증상이 악화되었고 파멸로 치달아 갔다. 그래서일 것이다. 어떤 단어도 어떤 문장도 만들지 않고 그저 아무런 의미없이 소리만 질렀다는 “Tourette’s”가 궁지에 몰린 그의 절박한 외침으로 들리는 것은. 20011029 | 최지선 fust@nownuri.net 9/10 수록곡 1. Serve The Servants 2. Scentless Apprentice 3. Heart Shaped Box 4. Rape Me 5. Frances Farmer Will Have Her Revenge On Seattle 6. Dumb 7. Very Ape 8. Milk It 9. Pennyroyal Tea 10. Radio Friendly Unit Shifter 11. Tourette’s 12. All Apologies 관련 글 Nirvana [Nevermind] 리뷰 – vol.3/no.21 [20011101] 그런지 폭발 10주년에 부치는 초라한 정리 – vol.3/no.21 [20011101] Mudhoney [Every Good Boy Deserves Fudge] 리뷰 – vol.3/no.21 [20011101] Soundgarden [Badmotorfinger] 리뷰 – vol.3/no.21 [20011101] Soundgarden [Superunknown] 리뷰 – vol.3/no.21 [20011101] Pearl Jam [Ten] 리뷰 – vol.3/no.21 Pearl Jam [Vs.] 리뷰 – vol.3/no.21 [20011101] Pearl Jam [Vitalogy] 리뷰 – vol.3/no.21 [20011101] Alice in Chains [Dirt] 리뷰 – vol.3/no.21 [20011101] Melvins [Stoner Witch] 리뷰 – vol.3/no.21 [20011101] 관련 영상 “Serve The Servants” Live 관련 사이트 너바나 웹 아카이브 http://www.ludd.luth.se/misc/nirvana 디지털 너바나 http://www.digitalnirvana.net 너바나 비공식 사이트 http://www.geocities.com/Hollywood/Movie/6821/thecobain.html http://tonykurtsandy.homestead.com/Nirvana.html